근교 여행하기 05. 첫째 날, 토사 데 마르에서 1박을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발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토사 데 마르에 꼭 다녀왔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너무 힐링이 되었던 도시였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에도 바르셀로네타 해변이 있고 근교 시체스도 가고 남부 여행에서 말라가도 가기 때문에 충분히 해변가에서 쉴 수 있는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토사 데 마르(Tossa de Mar)는 잘 몰랐던 곳이어서 갈 생각을 못하기도 했고 말이다. 토사 데 마르에 대해 알게 된 건 바르셀로나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여행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우연히 피드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간이 되면 가고 아님 말고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가끔씩 토사 데 마르가 생각이 나서 당일치기로 다녀오면 되겠다고 결정했다. 시기는 5월 중순 날씨 좋을 때로. 남부 여행을 다녀와서 말라가 해변에서 너무 좋은 추억을 쌓고 왔기 때문에 마지막 근교인 토사 데 마르가 더욱 기다려졌다.(이 때는 바달로나에도 갈 거라고 생각을 못했다.) 말라가에서 바다 수영을 못한 게 조금 마음에 걸려서 토사 데 마르에서는 바다에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그렇다면 당일치기는 무리이지 않을까 싶어서 하루 묵을 호텔을 급히 찾았다. 이왕이면 수영장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수영장이 꼭 있는 곳으로.
토사 데 마르는 약 1시간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도착할 수 있다. 버스는 Estacio del Nord 역에서 타면 된다. 나는 혹시 몰라서 미리 버스 티켓을 인터넷으로 예매해뒀다. 미리 해두긴 했지만 성수기가 아직 아니기 때문에 사람이 많을까 싶었는데 중국인 여행객들이 진짜 엄청 많았다! 한국인은 아예 못 봤고 중국인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인기 있는 여행지인 것 같다.
현장 구매를 할 경우 티켓은 2층 "C"라고 적힌 곳에서 사면되고 버스는 1층에서 타면 된다. 온라인 구매를 한 후 시간이나 버스에 대해 문의가 있다면 Info에 물어보는 것보다 버스 기사님께 물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Info에서 알려주는 정보와 버스 기사님이 말하는 것이 달라서 생각보다 도움이 되진 않는 것 같다.
이른 아침이라 교통이 막힐 것 같지 않았는데 조금 막힌 모양인지 15분 정도 더 소요된 것 같다. 도시가 굉장히 작기 때문에 토사 데 마르 버스정류장에서 호텔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가면 됐고 호텔에서 해변까지도 넉넉히 10분 정도 걸어가면 도착할 수 있었다. 호텔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발코니에서 해변이 보였던 것은 아니지만 앞에 건물과 야자수가 너무 예뻤고 고개를 내밀면 해변가가 조금은 보여서 만족스러웠다. 방도 깔끔하고 웰컴 초콜렛도 맛있었고. 그러나 오늘 날씨가 좋지 않아서 좀 걱정스럽긴 했다. 1박밖에 못하는데 오늘 비가 온다면 바다에서 수영은 아예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동행을 구했기 때문에 동행들이 도착하길 기다리며 대충 짐을 풀고 주변 산책을 하기로 했다. 동행들이 도착하기까지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먼저 해변도 앉아있다가 토사 데 마르 성곽(Muralles de Tossa de Mar)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해변으로 걸어가며 구경한 거리는 바르셀로나와 확실히 다른 느낌을 주었다. 바르셀로나의 근교들은 하나같이 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느낌이다. 흐뭇하게 천천히 걸어가며 해변에 좀 앉아보려고 했더니 웬걸. 역시 날이 흐리더니 빗방울이 한두 방울 내리기 시작했다. 점점 굵어지는 비 때문에 더 이상 비를 무시하고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성벽을 산책하려고 자리를 옮겼다. 성곽을 오르는 동안 더 거세지는 비와 바람 때문에 우산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오늘 하루를 이렇게 보내야 할까봐 우울해졌다. 이렇게 짧게 묵고 가는 도시는 날씨가 진짜 영향을 주는데 하필 또 비가 오고 바람이 부니 춥기도 하고 제대로 힐링하고 가지 못할까봐 걱정되었다. 제발.. 절대 안 돼!
동행들과 내 기도가 통했는지 점심을 먹고 나오니 날은 여전히 흐렸지만 그래도 비는 멎어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함께 해변을 구경하고 다시 성곽을 오르면서 사진도 찍고 토사 데 마르에 대한 감상을 공유하며 함께 즐겼다. 파란 바다와 하얀 파도. 요트와 크루즈가 둥둥 떠다니는 여기. 마치 모래성으로 만든 것처럼 해변과 잘 어울리는 굳건한 성곽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성곽 위 탑에서 날리는 스페인 깃발이 눈에 띄었다. 성곽 안 쪽의 바닥은 자갈처럼 매끄러운 돌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히로나의 구시가에도 이런 비슷한 느낌의 바닥이 있어서 반가웠다. 그리고 진짜 제대로 힐링했던 프라이빗 해변. 성벽을 올라 반대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개구멍 같은 곳이 있다. 그곳을 통해 지나가면 눈앞에 펼쳐지는 작은 해변 Es Codolar beach가 나온다. (사실 성곽 밖으로 제대로 된 길을 통해 갈 수도 있으나 구멍을 통해 가는 게 너무 느낌 있다.) 해변 주위로 절벽이 감싸고 있어 굉장히 프라이빗한 느낌을 주었다. 처음에 봤던 해변인 Platja Gran은 큰 메인 해변이라 탁 트여 있어서 시원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줬다면 이곳은 정말 조용히 쉴 수 있을 것 같은 안정감을 주었다. 메인 해변의 바다는 파란 물감을 탄 것처럼 진한 블루였다면 여기는 살짝 그린색이 섞인 블루라 같은 해변이라도 색이 다른 게 신기했다. (좀 안 좋았던 것은 앞서 말했듯 중국인들에게 유명한 관광지인지 중국인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 구멍이 그들에게 유명한 사진 스팟인지 줄 서서 사진을 찍느라 지나가기 어려웠다는 것. 거기에 모여있는 중국 여행객들이 굉장히 많았고 한 팀당 사진을 너무 진심으로 찍어서 주변에서 지나가려고 서성거려도 비켜주질 않았다. 결국 우리가 지나가도 되냐고 물은 후에야 사진 찍는 걸 멈추고 비켜줬는데 이것도 되게 곤란해하면서 마지못해 비켜줬기 때문에 왜 저러나 싶을 수밖에 없었다. 이 또한 개인적인 경험이라 모두가 그렇단 건 아니지만.)
우리는 중간에 돗자리를 깔고 미리 준비해 온 과자와 맥주, 와인을 꺼내 들고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쉬기로 했다. 아쉽게도 바람이 많이 불어 파도가 심했고 바다가 굉장히 차가워서 수영은 못했지만 발은 담가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차가워서 발이 시렸는데 물속에서 좀 걷다 보니 기분 좋은 시원함에 뛰어들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나는 가져간 책을 읽다가 바다에 발을 담갔다가 다시 책을 읽다가 누웠다가 하며 이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며 보냈다. 내가 언제 또 이런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행복하게 보낸 토사 데 마르의 첫날이 저물어 간다. 다음 날은 일찍 일어나서 일출을 볼 생각이다.
+ 수영복을 챙겨 왔는데 꺼내보지도 못하고 가는 게 아쉬워서 호텔 수영장에 갔다. 날씨가 안 좋아서 저녁이라 그런지 수영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금 추웠지만 오랜만에 물속에 몸을 담그는거라 일단 들어가 보자는 심정으로 풀에 들어갔는데 와. 너무 좋았다. 혼자 있으니 마치 나만 쓰는 수영장인 것 같아서 더 좋았다. 사진도 찍고 수영도 하고 베드에 누워 책도 읽으며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주다가 더는 이 바람을 감당 못할 것 같아서 방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하루를 충만하게 보낸 것 같아 보람차다.
정보 전달 목적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느낀 스쳐 지나가는 감정과 생각들을 아카이빙하는 지극히 사적이고 소소한 일상의 기록입니다. 당시에 느꼈던 모든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면 바스러져 가는 것이 아쉬워서 자기만족으로 작성하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