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ddie Kim Jul 12. 2023

바르셀로나에서 두 달 살기 #24

단골 카페에서 작업하며 빈둥거린 어느 날 오후



밀린 글을 쓰고 그림 그리기 위해 오늘은 카페에서 빈둥거리며 한 곳에서 오래 앉아있었다. 밀린 것들이 너무 많았고 앞으로 남은 일정 동안에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이제는 정리를 좀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며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한동안 카페에서 맥주를 자주 마셨는데 최근 들어 오렌지 주스를 자꾸 찾게 된다. 스페인 오렌지가 맛있어서 바로 착즙해서 주스로 만들면 적당히 상큼하고 적당히 달다. 


아침에는 너무 귀찮았는데. 막상 밖으로 나와 젤라또 하나 먹으면서, 이제는 어느새 익숙해진 길거리를 기웃거리며 단골 카페로 걸어가는 길이 기분 좋다. 상큼한 주스 한 잔과 라자냐를 먹으면서 오늘 해야 할 to-do 리스트를 써내려 갔는데 정말 막막하다. 한국에서 계획했을 때는 이번 두 달이라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 비장하게 아이패드, 그림노트, 드로잉 펜, 크레파스 등 준비를 잔뜩 해가지고 왔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정말 제대로 작업한 게 손에 꼽을 정도다. 사실은 브런치도 매일 쓰고 싶었고 매일 가벼운 드로잉을 하려고 했는데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일기를 보거나 사진을 보면서 작업해도 되는 걸 당시의 기분 그대로 남기고 싶어서 매일 하겠다고 결심했더니 괜한 부채감만 들어서 마음이 안 좋다. 마치 방학이 끝나가는데 숙제와 일기를 쓰지 않은 어린이가 된 것 마냥 해결하지 못할 답답함이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여행하다가도 문득 아 이거 남겨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제대로 즐기지를 못하는 경우도 생기게 됐다. 기억을 아카이빙하고 싶어서 기록을 하는 건지, 기록을 남기려고 이곳을 가는 건지가 애매해져서 결국 어차피 일기를 매일 쓰니 브런치는 정말 남기고 싶은 것들만, 그림은 낙서처럼 간단한 것들만 하고 제대로 된 펜 드로잉은 사진 보면서 한국에서!라고 나 자신과의 타협점을 찾았다. 적당히 욕심을 버리자 마음에 항상 남아있던 부채감이 약간은 가벼워진 느낌이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좀 더 재밌게 그림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아 오늘 작업을 참 많이 했다.


창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이제는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새삼 깨달았다. 두 달 살기 이후에도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긴 하지만 많이 정든 이 도시를 떠나야 하는 게 좀 아쉽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해 보고 더 많이 남겨놓을 걸. 계획하지 않은 것들을 하며 기분 좋은 적도 많았지만 계획했다가 안 한 것도 많은데. 빈둥거리며 보내려고 했는데 떠날 생각을 하니 살짝 우울해졌다.




정보 전달 목적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느낀 스쳐 지나가는 감정과 생각들을 아카이빙하는 지극히 사적이고 소소한 일상의 기록입니다. 당시에 느꼈던 모든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면 바스러져 가는 것이 아쉬워서 자기만족으로 작성하는 여행기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르셀로나에서 두 달 살기 #2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