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네 도착
치앙마이에서 밤늦게 비행기를 타고 어제 아침 7시 반쯤 한국에 도착했다. 짐이 너무 많아서 들고 오느라 억척스러워졌다. 세 달 동안 나만의 보물을 많이 찾았기 때문이랄까.
사실 한국에 오면 팡하고 한국인이 되어야 하는데, 공백기동안 한국 전화를 살리느라 시골집에 있다. 그래서 전화도 못하고, 공용와이파이에 의지하는 상황에 처했다. 공항까진 괜찮았는데, 공항철도 타니까 skt, lg, kt에 소속된 고객들만 이용이 가능한 무료와이파이더라. 출근길에 껴서 그나마 앉아가는 것에 감사하며 서울역까지 잠들었다.
서울역에서 1호선으로 넘어가는 길이 고비였다. 캐리어 에스컬레이터를 3갠가 만들어 두고 오르막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무용지물이었다. 맥시멀리스트의 귀국길은 이렇게나 버겁다.
어찌어찌 영등포역에 도착했다. 동생이 서울에 살아줘서 고맙고, 영등포역 앞에 살아줘서 다행히 캐리어를 끌 수 있는 지척에 사는 것이 감사하다. 하지만 그는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에 살고 있고, 꼭대기 층이라 안간힘을 쓰며 올라갔다.
아침 시간이라 그는 높은 확률로 자고 있을 것이며, 난 핸드폰이 아무것도 되지 않아 그에게 마중 나와달라고 연락할 수 없었다. 역시 인생은 혼자이구나를 절실히 느끼며, 그나마 잠시 거처할 수 있는 혈육의 집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그것이 잔말 없이 나를 무수한 계단 위로 끙차끙차 모든 짐을 이고 오르게 했다. 다행이다. 그동안의 배낭여행과 순례길로 다져진 엄청난 끈기와 의지가 이럴 때 잘 쓰여서.
드디어 동생집 도착. 문을 여니 난장판이 따로 없다. 동생도 이제 나이가 서른인데, 청소의 기본은 배우지 못했다. 항상 어렸을 적 할머니가 우리 방을 치워주셨다. 치워주는 사람이 습관이 되어있으니 어지르는 것만 기본값이 되어있는 것이다.
엉망으로 해놓고 아침에 학교 갔다 오면 저녁에 깨끗해진 책상을 보고 할머니한테 화를 냈던 때가 떠올랐다.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것처럼 내 물건 어디 갔냐고 버럭버럭 버르장머리 없게 떼쓰던 때가 많았다. 할머니는 다시 물건을 찾아주었다. 할머니도 어디에다 정리하면서 둔 지 몰라서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어린 시절 어질러진 것을 치워지고 배웠던 것은 깨끗한 상태의 기분 좋음이었다.
안타깝지만 동생에게 천식환자는 이런 불결한 환경에서 살면 극도로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집을 치웠다. 하루이틀이지만 나를 위해서도 깨끗한 상태가 좋으니. 청소기를 돌리고, 스팀청소기를 돌리고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빨래 돌리고의 반복이었다. 지난번에 첫 책 만들 때 한 달 장기체류하면서 청소기와 스팀청소기를 사둔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안 그랬음 물티슈 여러 통을 다 쓰도록 온 바닥을 힘줘서 닦아야 한다.
점점 깨끗해지는 집을 동생에게 확인시켜 주면서 깨끗한 기분을 같이 느끼게 해 줬다. 근데 이렇게 깨끗하게만 치워두면 금방 다시 어질러진다. 물건의 위치를 정해주고 거기에만 두게 해야 하고, 쓰레기는 바로바로 버리게 습관을 들여야 한다. 계속 깨끗한 상태를 만들어주면서 동생도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겠단 의지가 생기길 기다릴 뿐이다.
그렇게 치우는 데 한 네다섯 시간이 걸렸다. 드디어 캐리어를 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동생집엔 향기가 필요하다. 태국에서 사 온 향초를 화장실에 하나, 방에 하나 설치했다. 그리곤 꾸질한 티셔츠를 입은 동생에게 넉넉한 티셔츠도 하나 줬다.
동생이 태국의 물건들에 관심 가졌다. 내가 준다고 하면 그건 피하고, 다른 걸 갖고 싶다더라. 바로 물에 넣으면 아메리카노가 되는 신문물을 가져가더니 커피를 타 마신다. 똠얌라면도 한 봉지 챙겨간단다. 조금이나마 동생도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에 흥미가 생기고 세계를 넓혀가면 좋겠다.
친구 만날 시간이 되어 신도림으로 향했다. 버스는 와이파이가 누구에게나 팡팡팡 터져서 쾌적했다. 친구는 내 까만 피부를 보고 놀랐다. 수다를 떨다가 또 다른 친구를 만나기 위해 신길로 걸어갔다. 신도림에서 신길은 걸어서 한 시간 남짓이다. 구름이 뭉게뭉게 예뻐서 모든 풍경이 아름다워 보였다.
한국은 봄의 끝자락과 여름의 초입이라 적당히 따스운 날씨더라. 반팔 반바지를 입고 거닐어도 땀이 나지 않아 기분 좋게 산책하기 좋았다. 오랜만에 만보를 채운 하루였다.
친구들과 저녁은 치맥을 먹고 후식으론 빨미카레를 먹었다. 역시 단짠단짠의 나라다. 내 까만 피부와 연락이 안 되는 핸드폰을 엮어 외국인이란 얘기를 들었다. 피부는 지내다 보면 원래 내 피부로 돌아올 것이며, 한국이라서 와이파이는 잘 터진다고 위로했다. 월요일인데도 귀국하자마자 시간 내어 만나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