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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댓글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콘텐츠쟁이의 고민

by 탱탱볼에세이

오랜만에 수진이를 만났다. 수진이가 지난주에 내 블로그에 댓글로 안부인사를 전해주었기 때문. 수진이는 내가 마케터로 처음 일하던 시절 같이 일하던 콘텐츠팀 친구다. 이따금씩 쓰는 나의 일기 같은 글이 반갑고 뭔가를 시도할 힘이 되었단다.


생각해 보면 나는 매일매일 시시콜콜하게 일상을 나누는 친구는 없다. 그보다는 혼자서 나만의 고민에 빠져 사는 편이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서로가 잘 지내는지 궁금하고 반가운 시점이 되면 자연스레 만나자고 약속을 잡는다.


언제나 할 말이 많은 수다쟁이로서, 깊은 인연일수록 얼굴 보고 만나서 시간 제약 없이 수다 떠는 게 좋다. 그런 만남이었기 때문에 그동안의 안부를 줄줄이 소시지처럼 주고받았다. 카페 마감시간이 10시였는데, 10시 30분이 넘도록 떠들 정도로.


사장님 속도 모르고 다양한 대화주제들로 서로 생각을 전하느라 즐거웠다. 손님이 우리만 있던 건 아니지만, 퇴근시간을 늦추게 만들어서 대단히 죄송했음. 다음엔 카페마감시간 10분 전에 알람을 맞춰야겠다.


한참을 떠들고도 이대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쉬워서 끝내 경복궁역에서 시청역까지 같이 걸어왔다. 수진이는 왜 그럴까에 대해 고민하고 표현하려 하면 생각이 깊어지는 게 힘들어서 표현을 잘 안 하려고 하는 게 가장 큰 고민이라고 했다. 나는 평소에 어떻게 생각을 섬세하게 표현하는지 방법을 궁금해하더라.


각자의 방법이 있겠지만은 내게 도움이 된 것은 그냥 내가 본 대로 기록하고 내 방식대로 편집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내가 촬영한 사진을 사진첩에 남겨두면 그냥 쓰레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며. 그 사진을 찍었던 시점의 내 생각을 솔직하게 담아 콘텐츠로 발행해야 의미 있다고 연설했다.


크게 공 들이지 말고, 낙서하듯이 일단 해보는 습관을 가져보자고 독려했다. 남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글은 내가 제일 많이 본다. 그러니 내가 만족하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나.


말로는 한다고 했던 일을 계획대로 못했다고 자책하지 말자고 다독였다. 나도 매번 마음먹은 것들을 정해진 기한 안에 해내는 것을 어려워하고 못해낸 일들이 많다. 후일에 돌아보면 짧은 과거의 한 줄이라도 작성한 시점과는 분명 다르게 읽히더라. 최선을 다하기보다 최악이라도 최소한 적어두면 나만의 역사가 될 것이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오늘의 대화를 돌아보니, 열정에 기름붓기해 줄 누군가의 존재가 있었으면 바랐다는 수진이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항상 발전에 목마른 열정적인 사람이 옆에 있으면, 너무 삶이 피곤하지 않겠냐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묵묵히 응원해 주고 혼자 하기엔 용기와 끈기가 부족해서 같이 하자고 제안했을 때 응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게 더 좋겠다고 답했다. 열정에 기름붓기를 할 환경은 의지만 먹으면 쉽게 만들 수 있고, 그 열정에 기름을 부을 사람은 나 자신이 되는 게 어떻겠냐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부터는 수진이와 카톡방에 매일 글 하나씩을 나의 채널에 올리고 인증해 보자고 선언했다. 바로 흔쾌히 승락한 수진이에게 고맙다. 나도 연말을 맞이하며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에너지를 줄이고, 하던 일을 하나씩 정리하고 갈무리하는 시점임을 깨닫고 의지를 다잡고 싶더라. 정리해야겠단 마음만 쌓아두고, 막상 실행엔 엄두를 못 내는 상태에서 벗어나야지.


블로그 댓글이 쏘아 올린 작은 공으로 편안한 대화를 통해 나의 상태를 자각하게 되어서 의미 있는 저녁이었다. 결국 서로에게 열정에 기름을 부어주기 위해 만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 올해 안에 해보자고 오랫동안 생각한 일들을 더 늦기 전에 하나씩 시도해 보고 마무리의 결실을 맺는 연말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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