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는 질문 몇 가지
“뭐야, 저거 말도 안 돼!” 드라마 속 자신의 직업이나 직장을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 업계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렇게 말해봤을 것이다. 나는 회사원은 아니지만 텔레비전을 보면서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 외부 사람들이 회사 사무실에 너무 쉽게 들어가는 것이다. 주인공의 여친이나 남친은 극적인 장면을 위해 백 번 양보해서 봐주겠는데 동네 이웃까지 막 회사 사무실에 들이닥친다. 심지어 회장실까지 거침없이 들어간다. 회사원인 남편에게 저럴 수 있는 거냐고 물어보면 “못 들어가.”라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선생님이 주인공이거나 학교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드라마가 적지 않다. 보면서 ‘와, 저건 진짜 말도 안 된다!’ 싶은 장면이 꽤 많다. 그중에 하나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나온다. 교생 선생님이 교실에서 학생인 우영우의 뺨을 때린다. 진짜 말이 안 된다. 그 행동 자체가 해서는 안 될 일일 뿐 아니라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교생이? 선생님이? 학생을? 교실에서? 때려? 차라리 학생이 교생이나 선생님을 때리는 것이 요즘 세상에는 어울리겠다. 교생이 학생을 때린다면 교사로 임용되는데 문제가 될 것이다. 때린 사람이 교사였다면 학교에서 그 교사에게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다. 학부모도 해당 교사에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며 무엇보다 그 현장에서 아이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학교를 몰라도, 아무리 드라마라도 저런 장면을 넣다니! 현실과 너무 다르다. 저러니 사람들이 학교에 대해 안 좋은 편견과 오해를 가지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드라마가 재밌었고, 극 중 교생이 학교를 너무 몰라서, 또는 그 교생이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을 거라고 봐주고 넘어가기로 한다. 이건 드라마 얘기고 현실에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사소하지만 사람들이 의외로 모르는 것들이 있다.
교대 다녔다고 하면 전공이 뭐냐고 묻는다. 그럼 나는 초등교육이라고 말할 때도 있고 영어교육이라고 말할 때도 있다. 교육대학교는 초등교사 될 사람을 양성하는 곳이라서 들어오면 전공이 초등교육이다. 애초에 교대에 지원할 때 '영어교육과' 이렇게 지원하지 않는다. 교대에 입학한 후 입학생을 초등교육과, 국어과, 수학과, 사회과, 과학과, 영어과, 음악과, 미술과, 실과과, 컴퓨터과, 체육과, 도덕과 등으로 나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과목으로 나누어진 과에 학생을 배치하는 것이다.
그중에서 나는 영어교육과였다. 전공이 초등교육이라고 말할 때가 있고 영어교육이라고 말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그때 상황이나 기분에 따른다. 초등교사로서 전문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거나 대충 대답하고 넘어가야 할 때는 초등교육 전공이라고 말한다. 대화를 나눌 시간적 여유가 있거나 순간적으로 ‘내가 영어과였지’라는 생각이 들면 전공이 영어교육이라고 말한다. 영어교육과였다고 하면 보통 사람들 반응은 “와, 영어 잘하겠다”이다. 그래서 영어교육과라고 잘 말하지 않는 편이다. 영어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보여줄 필요가 없을 때 영어교육과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느 과를 나왔는지 말할 때 시간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교대 지원과 입학에 대해 의외로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지만 보충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보통 사람들은 교대에 지원할 때 ‘전주교대 초등교육과’, ‘전주교대 영어교육과’로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이 아니고 일단 교대는 과 지원 따로 없이 학부 총인원을 모집한다. 모두가 초등교육 전공으로 입학하게 되는 것이다. 입학을 한 후, 거기서 영어과, 국어과, 미술과, 등으로 내가 원하는 과를 1,2,3차로 써낸다. 보통 자기가 원하는 과에 배정이 되는데 인기가 많은 과는 성적으로 선발한다고 들었다.
나는 교대에 입학하면서 1학년 때 미술과를 선택했다. 그런데 1학년까지 미술과로 다니다가 2학년 때 영어과로 옮겼다. 전과한 것이다.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고 그림을 배우고 싶어서 미술과를 택했는데 졸업할 때 졸업 작품을 최소 6개 내야 한다고 했다. 그림뿐 아니라 조소 작품도 해야 한다고 해서 2학년 때 전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영어를 잘해서 영어과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전과할 때는 전과하고자 하는 과에 자리가 나야 가능하다. 영어를 잘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당시 영어과에 자리가 있어 영어과를 택한 것이었다.
과를 나누면 관련 수업을 더 많이 듣는다. 졸업할 때도 과마다 조금씩 다른데, 미술과는 작품 제출, 음악과는 졸업연주회, 나머지 과는 보통 논문을 제출한다. 영어과는 원어민 선생님이 두 분 계셨고 영어수업과 과제가 다른 과보다 많았다. 내가 느끼기에 교대는 무슨 과인가가 중요하지 않다. 교대를 졸업하고 현장에 나갔을 때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운다. 기분상으로는 교대 4년이 학교 현장 한 달과 맞먹는 것 같다. 학교에서 실제로 부닥치는 일들은 교대에서 거의 배우지 않았다. 교대에서 공부하고 시험 본 것과도 거의 상관이 없었다.
교사의 점심식사는 내돈내산이다. 학교에서 점심을 돈 주고 먹는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나도 처음에는 놀랐다. 아이들이랑 같이 먹는 것이니 아이들처럼 교사도 무상급식인 줄 알았다. 아니면 직원복지를 위해 무상으로 주거나. 교사는 급식을 먹겠다고 신청하면 월급에서 매달 백반 집 점심 메뉴 가격에 준하는 비용이 원천징수 된다. 점심식사비용으로 월급에서 얼마가 나오기는 한다. 교사는 직장에서, 즉 학교에서 커피도 선생님들이 돈을 모아 사서 마신다.
학교에는 각 학년 연구실이 있다. 회의도 하고 복사도 하고 학습 자료나 도구를 보관한다. 연구실이라는 곳이 없었던 적도 있었다. 발령받고 몇 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연구실이 생겼다. 그곳에 물 끓이는 포트를 놓고 커피나 차를 마신다. 예산이 있을 때는 연구실에 비치할 포트를 살 수도 있지만 대부분 선생님들이 자기 집에서 가져온 포트를 썼다. 간식 먹기 좋아하고 화기애애한 학년은 간식비에 돈을 꽤 쓴다. 한두 달에 5만 원씩 낸 적도 있다. 그런데 어떤 회사는 직원의 복지를 위해 커피와 각종 차를 구비해 놓고 어떤 곳은 인스턴트커피도 아니고 향기로운 커피 냄새를 풍기는 ‘내려먹는’ 커피머신까지 있다고 들었다. 탕비실이라는 곳에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과자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컵라면까지!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휘청했다. 그때의 충격이란……(올해 초 우리 학교 교무실에 커피머신이 생겼다). 학교 직원들이 회식을 할 때는 우리가 평소에 십시일반 모은 회비로 먹는다. 작게는 학년에서 각자 내고, 학교 전체는 친목회를 만들어 매달 친목회비를 낸다. 가끔 교장선생님이 쏘실 때도 있다.
아이들 가르치다 잠깐 쉬는 시간에 필요한 다방커피와 과잣값 좀 지원해 주시면 안 될까 가만히 제안해 본다. 교원 사기 진작에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공기관 직원들을 위해 다과까지 지원해 줘야겠냐고 누군가 꾸짖을지도 모르겠다. 국회의원들은 임기 내내 교통비와 통신비를 지원받는다. 국회의원들의 연봉 및 각종 수당과 혜택을 한 번 검색해 보시라. 입이 쩍 벌어진다. 어디 국회의원과 교사를 비교하냐고, 급이 다르지 않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지 않나. 정책입안자들이 항상 교육을 위해서 애쓰겠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무리한 억지는 아닌 것 같다.
교사라는 직업의 좋은 점이라고 알려진 것이 방학과 연금이다. 먼저 방학에 대해 말하자면, 방학 때 교사는 공식적으로 업무에서 벗어나 쉴 수 있다. 그리고 무려 월급을 받는다. 주변에서 이렇게 말한다. “월급 받으면서 쉬니까 얼마나 좋냐. 부럽다!” 내가 봐도 부러울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대놓고 우리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논다고 말하기도 한다. 교사들 방학 없애고 일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원래 남이 잘 되는 것을 보면 배가 아픈 것이니까. 교사가 방학 때 나가서 일하면 아마 월급을 더 많이 줘야 할 것이다. 방학 때 받는 월급은 1년에 받아야 할 금액, 즉 연봉을 12개월로 나누어 방학 기간에 지급해 주는 것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요즘은 교사들이 고생하는 것을 인정해 주는 분위기라 방학 가지고 타박은 덜 하는 것 같다.
방학 중에도 학교에서 부르거나 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출근하고 방학 때 연수도 많이 받는다. 2월에는 그 해 업무와 학급운영을 위해 거의 출근한다. 그래도 초등교사의 방학은 비교적 여유가 있다. 중․고등학교, 특히 고등학교 교사는 방학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옆에서 지켜보면 생기부 작성을 위해 방학 때도 학교에 나간다. 수업을 하기도 하고 상담하느라 자주 출근한다. 그래도 일반 직장인보다 휴가를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신 월급이 적지 않나. 그럼 연금 많이 받지 않냐고 한다. 나보다 5년 선배가 정년을 꽉 채워도 우리 부모님 세대가 받는 연금 액수의 반절을 겨우 넘는 정도 받는다. 교사의 연금은 월급에서 기여금이라는 명목으로 매달 원천징수 되는데 그냥 내는 만큼 받는 수준이다. 국민연금과 비슷한 것 같고 대기업 다니는 남편과 비교하면 더 못한 것 같다. 인플레이션까지 반영한다면 많이 받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선생님이 교실 청소도 다 하세요?”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있는 나에게 한 학부모가 물었다. 그렇다. 교실 청소와 쓰레기처리 및 쓰레기봉투 버리기 모두 교사가 한다. 아이들이 하교한 후 나는 매일 교실을 청소한다. 청소기와 정전기 부직포를 종종 쓰지만 내가 요즘 가장 애용하는 청소도구는 부드러운 빗자루와 쓰레받기이다. 책상과 의자 사이에 낀 먼지를 다 쓸어내는 데는 빗자루가 최고다. 쪼그리고 앉아 교실 의자와 책상다리에 낀 먼지 뭉텅이를 떼고 사물함 위 먼지도 닦는다.
각 반마다 청소하는 방법이 다르다. 반 전체 아이들이 다 같이 하거나, 청소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하기도 한다. 나는 주로 아이들이 하교한 후 혼자 조용히 교실을 청소한다. 아무래도 내가 교실 전체를 다 훑어야 개운하다. 혼자 조용히 청소하는 시간이 요즘엔 조금 즐겁기도 하다. '노동요 재즈'를 듣거나 부동산이나 법률 관련 유튜브를 틀어놓고 청소를 하는 것도 나에게는 중요한 일과 중에 하나이다. 청소하기 귀찮은 날도 있지만 다행히 청소하는 일이 싫지 않고 다 마친 후 깔끔해진 교실을 보는 것이 좋다.
하루 중 삼분의 일 이상의 시간을 교실에서 보낸다. 사람과 공간이 서로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가끔 청소하기 싫은 날은 꼭 들어야 하는 연수나 '운동할 때 듣는 음악' 같은 신나는 음악을 켜놓으면 그럭저럭 할만하다. 그리고 청소를 싹 마친 빈 교실에서 혼자 조용히 마시는 믹스커피는 정말 ‘커피 한 잔의 여유’다. 찬 공기가 돌 때쯤이면 그 맛이 두 배 더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