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추천책
여름방학 때 읽으려고 학교에서 책을 왕창 빌렸는데 나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고 아직 반절도 못 읽었다. 이제 겨울방학을 바라보는 시점인데... 안 읽을 거면 반납하겠다고 했더니 초등학교 1학년 막내가 이건 엄마도 읽어보라고 추천한 책 <일기렐라>.
아이들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내용이 직관적이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메시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보통은 일상-사건-다툼-화해-우정 이런 서사가 대부분인데 이 책도 그렇다. 우리가 학교 다니면서 한 번쯤 경험하고 느껴봤을 다툼, 질투, 시기, 우정, 화해가 주요 소재이다. 그것을 솔직하고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말 안 듣는 중학생 오빠나 주인공 아름이의 열등감이나 가볍고 쉽게 움직이는 반 아이들의 마음과 행동이 사실적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책에서 아름이는 민지를 질투한다. 아름이는 뚱뚱하고 외모에 자신이 없고 소심하고 친구도 민지밖에 없다. 그런데 민지는 예쁘고 친구도 많고 마음도 착하다. 내가 아름이라도 민지 같은 아이랑 같이 다니면 당연히 시기할 거다. 물론 그랬던 경험도 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이 다닌 친구는 우리 반 반장이었고 얼굴도 뽀얗고 나보다 키가 컸고 공부도 나보다 훨씬 잘했다. 나는 그 아이와 다니면서 남들 눈에 '쩌리'같은 포지션이었을 것이다. 같이 옷을 사러 갔는데 매장 직원이 나에게 '동생이냐'고 물었다. 그때의 치욕이란. 내가 좋아했던 선생님이 그 아이와 더 친해 보일 때는 몸이 부르르 떨렸었던가...... 안 그래도 질투의 화신인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 친구가 싫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 혼자 열등감을 느꼈던 것일 뿐. 그러면 공부를 열심히 하든지 뭐라도 하나 잘하는 것을 만들었어야지 자존심만 상해했던 것은 못난 짓이었다. 아, 자책은 그만하고.
나도 어렸을 때 딱 저랬는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다들 그랬구나' 하면서 내가 이상하거나 유별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조금 위로가 되기도 했다. '너만 그런 거 아니었고 다들 그랬어 괜찮아'라고 다독여주는 느낌이랄까. 다만 책과 나의 현실은 달랐다. 나는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서로 이해하며 훈훈하게 화해하지 못했다. 관계를 딱 잘랐다. 자존심이 상하면 말 안 하는 채로 친했던 친구를 모르는 사람처럼 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가 참 좋은 아이들이었다. 친구들을 그렇게 많이 잃은 것 같다. 아쉽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그 인연이라는 것이 그렇게 얇고 가는 것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친구도 나처럼 아쉽고 안타까웠다면 나중에라도 연락이 이어졌을 것이다. 내가 보여준, 늦었지만 분명했던 화해의 제스처를 상대는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문제가 있었지만 나만 문제는 아니었다는 것, 관계란 원래 그런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든 동료든 이웃이든, 좋았던 사이도 시간이 지나고 장소가 옮겨감에 따라 자연스레 멀어졌던 경험을 수없이 했다. 그러면서 자책하거나 관계에 집착하는 것을 멈추게 되었다. 사느라 바빠서 친구고 뭐고 생각할 틈도 없지만.
지금은 관계에 대한 집착이 거의 없지만 어렸을 때는 좋아 보이는 다른 친구사이를 보며 자책하고 질투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그랬던 것 같다. 아니 대학생 때까지도. 아니, 발령초기에 직장에서 친한 동료들끼리 놀러 가는 것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던 것 같다. 내 아이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친구관계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보낸 시간이 지금은 너무 아깝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정적 감정을 안고 있는 시간이 괴롭기 때문에 아이들은 감정과 관계를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지금 내 옆에 친구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것임을, 친구란 좋은 것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떠나갈 땐 떠나가더라도 끊어질 때 끊어지더라도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친절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게 말이 쉽지 아주 어렵지만 노력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아이들 책을 읽으면서 서툴고 미숙했던(여전히 그렇지만) 내 모습을 반추할 수 있어서 좋다. 또 현재 '내 아이들도 이런 감정을 느끼고 이런 관계 속에서 고민할 수도 있겠구나'하고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틈틈이 어린이 동화를 읽어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