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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Oct 02. 2022

난독증인가

6개월의 법칙

작년 11월부터 국어 맞춤법 책을 공부했다. 물론 나는 이직을 위해 이 책을 완독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 한국 사람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한 페이지를 넘기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여러 번 읽어도 무슨 말인가 싶었다. 스터디 모임 사람들이 요약한 책 포스팅을 보고 나서야 한 챕터를 이해하게 됐다.


‘이직을 할 거다’라고 똑순이같이 말했지만 나는 엄청 쫄아 있다.


이직 시험을 앞두고 새삼 수능과 토플시험을 보기 전 날이 떠올랐다. 수능 며칠 전에 감자탕집에서 밥을 먹다가 통곡을 하며 울었는데 아빠는 모른 척하며 밥을 드시고 엄마는 ‘왜 그래, 괜찮아’하며 등을 두드려주셨다.


토플 보기 전날은 말해 무얼 할까. 잠을 자다가 긴장감 때문에 베개에 얼굴을 박고 질질 짜고 있으면 어느 날은 언니가 자다 깨서 위로를 해 주고 어느 날은 남동생이 선풍기를 들고 와서 머리 위로 바람을 쐬 줬다. 내 흑역사를 기억하는 피를 나눈 형제.


<나는 무조건 합격하는 공부만 한다>의 저자 이윤규 변호사도 변호사 시험 치기 전에 불안함 때문에 무서워서 세수하는 척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말한다.


몇 개월 뒤 나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도 글을 쓰면서 맞춤법을 신경 쓰고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하고 있는지 습관처럼 검토하는 걸 보면 뭐 어떻게든 되겠다 싶다.

 

구독 중인 서울대 출신 공부 유투버는 6개월만 꾸준히 어려운 과목에 몰두하면 눈이 틔일 거라고 했다. 맞춤법을 공부한 지 6개월이 지나고 본 영상이었는데 진작 봤으면 좋았을 뻔했다. 내가 공부를 잘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풋이 0이었으니  평균으로 끌어올리는데 드는 시간이 있는 건데 너 이 공부에 소질이 없는 거 아니냐는 마음의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버텼다. 초반부터 공부를 깨끗이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내 나이 3N인데 포기라니.

두 번째 맞춤법 책


고등학교 때 수학 통계를 공부하자마자 수포자가 되기를 결심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언니는 첫째 조카가 다른 과목은 다 잘하는데 유독 수학엔 관심이 없어서(신기한 일이다. 언니도 수학은 잘한 데다 형부는 수학과까지 나왔는데) 지나가는 말로 수학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인생에 수학이라는 과목을 포기하면 진로의 폭이 굉장히 좁아진다. 도시락 싸들고 말리기보단 수학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달라졌을지 모르는 내 인생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기만 했다. 그렇게 언니와 ‘내가 -을 했더라면’을 서로 주고받으며 조카의 수학 공부는 사수됐다. 내 조카 절대 지켜.


아무튼 외우고 까먹기는 공부하는 자의 숙명. 끝없이 외워야 하는 맞춤법 공부에 질려버려선지 두 달은 거들떠도 안 보고 다른 공부에 매진했다.


 대략 6개월을 공부한 셈인데, 같이 스터디하는 사람들과 자가 테스트를 보고 나니 뭐든 어떻게든 붙잡고 있으면 되는구나를 알게 됐다. 영원히 풀릴 것 같지 않은 난제도 6개월이 지나면 풀리는 건가. 효율적인 공부 방법이 기본으로 탑재되긴 해야 될 테지만.  


살면서 종종 눈앞이 캄캄한 것들을 마주한다. 하긴 낯설어서 그렇지 시작하면 별거 아닌 일이 참 많다.


실전반에서 받은 피드백

난 열심히 했는데 ‘대체로’가 왜 붙은 거지 하고 의아했는데 잘못된 사전을 참고하고 있어서였다. 뭐 실전 투입하기 전에 알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도 과제 마감 제출 때문에 토요일 아침 10시에 자고 오후에 늦게 일어났다. 27살 이후로 밤새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난데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선택하고 싶은 진로도 없어선지 매일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다. 소름 끼치게도 공부에 재미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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