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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Oct 14. 2023

권태기

권태기가 아닌데.

하는 일에 감사함도 지긋지긋해지는 시점이다. “다음 달이면 여기에서 일한 지 1년이에요. 원장 선생님은 너무 좋은데 얘들 때문에 힘드네요.” 이렇게 말하는 내게 동료 선생님이 권태기가 온 것 아니냐고 했다. 권태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건만.


아이들의 수업 태도는 사실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다. 이제는 수월하다. 초반에 비하면 지금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아무 일도 아니다. 학원 끊을 거라며 어디 한번 나한테 매달려 보라는 친구들, 조그만 일에도 욱해서 종이를 찢거나 울먹거리는 아이들, 학업 스트레스를 원장님한테는 못 말하고 강사들한테 푸는 아이들. 이런 태도들은 수없이 지난 1년 동안 경험해 왔지 않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학원에서 제일 걱정이 많은 몇 친구들이 통지표나 수행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온다. 전체적으로 마이너스 없게만 가르치고 있고 수업태도가 좋아야 공부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으니 태도에 관해서도 관여를 많이 한다. 수업 태도 하나하나로도 1:1로 대화하고 학생 입에서 ‘씨…’한번 나와도 바로 소환해 앉혀 놓고 얘기하니 모르겠다. 나아진 수업태도가 좋은 점수가 됐다.


그래도 무거운 바위를 억지로 끄는 것도 한계에 치달았는지 퇴사각을 노리고 있다. 눈치 빠른 원장님은  흔들리는 동공에서 퇴사의 기운을 읽은  같다.  


여태 이렇게 좋은 분이 있을까 싶다. 그러니 이 아이들을 이렇게 오랫동안 정으로 이끌어오셨지.


학원 가기 전 미국에 있는 언니에게 ‘언니는 삶에 권태기가 오면 어떻게 해?’라는 문자를 보냈다.


언니는 일찍 일어나 조깅을 시작했다. 뛰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을 거 같아 답답한 마음만큼 뛰었고  뛰고 나면 일부러 최애 카페에 가서 비싼 커피를 시켜 먹었다고 했다. 루틴을 벗어나 보는 게 어떠냐고 들었다.


그 말에 주말에 부산이라도 내려왔다올까도 생각했지만 두 정거장 가는 길에도 아 집에 갈까 가방이 무겁네라고 생각하는 성정에 바로 접었다. 아마 부산에 내려가는 길에 지쳐서 아빠한테 데려오라고 전화할 거 같아 두 번 생각해도 여행은 아니기에 접었다.


그래도 언니와 통화하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가 전화를 4번 만에 받았다. 내가 죽을 거 같아 엄마의 귀찮음을 모른척하고 계속 걸었다. 엄마는 오랜만에 일상을 벗어나 골프장에 가는 길이었다. 엄마 주위가 친구분들의 수다로 떠들썩했다. 내 최근 고민을 얘기하니 언제부턴가 모두들 조용히 내 독백을 듣고 있었다. 맞아 엄마는 항상 소리음량을 크게 해 놓지.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항상 뭔가 바쁜 것 같아 연락하기도 미안한 친구다. 역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죽을 것 같아 바빠 보이지만 만나자고 했다. 근데 뭐지. 이 친구도 퇴사각을 노리며 뭔가 배우고 있다. 넌 팀장이잖아. 부장까지 갈 줄 알았는데.


다들 일상에서 다른 돌팔구를 찾아 벗어나려는 것 같다. 나만 힘든 게 아니지만 그래도 위로가 안 돼. 역시 그만둬야 하나. 그만 애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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