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턱을 괴어보는 것만으로 세계가 다르게 보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온종일 집에만 머물러 있던 시기.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던 중, 책장에서 <디자인의 디자인> 10주년 기념판을 발견했다. 오래전 안그라픽스에서 진행한 브랜드/디자인 강연에서 받았던 것인데, 이미 오리지널 버전을 구매하여 몇 번이고 읽었던 터라 포장을 뜯지도 않은 채 간직하고 있었다. 몇 년 만에 비닐 포장을 뜯어내고 비로소 책의 새하얀 표지를 만졌을 때, 그 물성이 전하는 감각들이 모여 저자 하라 켄야의 이미지를 그려냈다. 진중하고 간결한 사람.
10주년 특별판은 표지뿐만 아니라 책의 서문에 국내 디자인 전문가들이 적어 내려 간 짧은 글이 추가되었다는 점에서도 오리지널과 차이를 보인다. <디자인의 디자인>을 통해 하라 켄야가 던진 물음을 받아 각각의 전문가들이 자신만의 시선으로 다가가 보는 '좋은 디자인'에 대한 고민. 임태수 작가의 <날마다, 브랜드> 서문을 떠올리게 하는 이러한 구성은 독자로 하여금 책의 주제의식을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사물을 보는 견해는 무한하며 그 대부분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하라 켄야의 디자인 사상은 '일상의 미지화'라는 개념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전혀 모르는 것으로 가정하고 그 실체에 도전해보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대상을 더 깊이 인식하게 만든다. 그리고 디자인이란, 이처럼 수없이 많은 보고 느끼는 방식을 일상의 물건이나 커뮤니케이션에 의식적으로 반영해가는 행위다. 그가 이야기하는 '일상의 미지화' 개념은 내가 속한 광고업계의 여러 전문가들이 내린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정의(이를 테면, 이질적 융합이나 낯설게 보기 등)와도 상당한 공유점을 지닌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창조성에 대한 하라 켄야의 관점을 구체적 실체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리디자인 - 일상의 21세기> 전시다. 일본 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32명의 크리에이터들에게 일용품을 '다시 디자인'해달라고 부탁했던 해당 전시는 사물의 재인식이 지닌 창조성의 위력을 잘 보여준다. 저항음을 내며 자원 절약의 메시지를 보내는 반 시게루의 '사각형 화장지'부터 커뮤니케이션의 씨앗이 담긴 사토 마사히코의 '출입국 스탬프', 그리고 구마 겐고가 만든 하나의 건축적 형태를 띈 '바퀴벌레 덫'까지. 이들의 시선으로 재인식된 사물들은 그동안 꽁꽁 숨겨져 있던 잠재성을 드러내며 머릿속에 선명한 느낌표를 선물한다.
취준생 시절, "뛰어난 것은 반드시 발견된다"라는 그의 문장은 매일매일 흔들리는 내게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취업을 한 뒤에도 꺼내어 읽는 그의 책은 여전히 깊은 울림과 함께 생각과 관점의 균형을 잡아가는 교정의 시간으로 다가온다. 그의 문장을 끊임없이 곱씹으며 매일의 일상을 새롭게 재인식하는, 사소한 생각의 근육을 길러나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