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라는 사물을 대하는 태도
원작이 있다 하더라도, 매일 육체가 바뀌는 사람의 로맨스는 꽤 신선한 소재. 차분한 톤과 시크한 비주얼은 인상적이지만, 한편으론 충분히 역동적일 수 있는 이야기의 활기를 앗아가기도 한다. 감정적으로는 ‘인사이드’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표면에 머문다는 느낌.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오랜만에 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다시 봤다. 사람들과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꼭 이런 말이 나오곤 한다. "그거 뷰티 아웃사이드 아니야?"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평론가들이 이 영화에 대해 어렵게 써놓은 말들도 결국 같은 말이 아닐까. 분명 스토리적 한계가 존재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줄곧 이 영화가 생각이 나, 다시 보게 된다. 교훈 없는 일상이 사실은 현실인 것처럼 깊은 교훈을 주는 스토리만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니까.
가구를 좋아하는 나는 영화 속에서 사람들이 '가구'라는 하나의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관점이 좋았다. 한 사람만을 위한 가구를 만들고, 생활 습관에 대해 깊이 고민하여 가구를 고르며, 소재의 원산지에 대하여 상상해보는 마음. 그런 마음과 태도가 결국 좋은 물건을 만들고, 좋은 소비를 이끌어내는 게 아닐까. '알렉스'라는 브랜드를 만든 우진의 마음이 그렇고, 이수가 일하는 공간 속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다. <뷰티 인사이드>는 가구라는 사물에 담긴 애정 어린 마음과 따뜻한 시선을 잘 표현해주었다.
영화 중간중간 아름다운 장면들이 참 많다. 특히,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우진과 이수가 청음실에 들어가 <Amapola>라는 곡을 함께 듣는 부분이다. 곡도 너무 좋지만, 청명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나무 기타에 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은 이 장면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Giuseppe Torrisi라는 분께서 클래식 기타로 <Amapola>를 연주하는 영상이 있는데, 그들이 이야기하는 '나무가 전하는 아름다운 소리'를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영상이 아닐까 싶다. 한편, 음악이 울려 퍼지는 동안 서로에게 오가는 우진과 이수의 애정 어린 눈빛은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어느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매일매일 얼굴이 바뀐다는 컨셉에 맞춰 다양한 배우들이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우진의 모습을 연기한다. 그 수많은 우진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우진은 지금은 세상을 떠난 '김주혁' 배우가 연기한 우진이었다. 그의 절제된 대사와 표정 속에는 이수에 대한 우진의 마음이 잘 담겨있었다. "그 약도 이제 그만 먹고.. 감기 들겠다. 얼른 들어가." 눈이 내리면 이상하게 춥지 않다는 이수의 말처럼, 나는 이수와 우진이 겪는 이별의 순간이 차갑기보다는 되려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 의자는 사용된 목재가 조금 특별해요.
오래되거나 버려진 선박으로 만들어졌거든요.
참 신기하죠? 나무였다가, 배였다가 이젠 또 이렇게 의자였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