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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Feb 06. 2021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

파도와 같은 문장들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



어느 아침, 요한네스라는 이름의 사내아이가 태어난다. 그리고 어느 저녁, 늙은 어부 요한네스의 고요한 죽음이 그의 딸 싱네의 시선을 통해 발견된다. 한 인물의 생의 시작과 끝, 각각의 하루. 소설은 단지 그 하루만을 조명했을 뿐인데 나는 요한네스의 보트 위에 올라타 그의 생 전체가 흐르는 바다를 건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평범하기만한 바다의 풍경과 그 위를 표류하는 생의 감정들은 이상하리만큼 가깝게 느껴졌다. 이 지점에서 옮긴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요한네스의 삶을 통해 응축된 삶의 형태(혹은 원형)를 마주하게 된다.



이제 아이는 추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혼자가 된다, 마르타와 분리되어, 다른 모든 사람과 분리되어 혼자가 될 것이며,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다,
모든 것이 제 안으로 무겁게 가라앉아 말하는 듯하다, 자신이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쓰였는지, 모든 것이 그 자신처럼 나이들어, 각자의 무게를 지탱하며 거기 서서, 전에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고요를 내뿜고 있다,



마침표가 찍히지 않는 문장들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닮았다. 처음에는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문장들이 낯설어 다소 허우적댔지만, 어느새 그 파도에 자연스레 몸을 맡긴 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이 소설만의 특별한 재미가 있다면, 매듭지어지지 않은 문장들 속에서 마침표가 찍힌 문장들을 찾는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브라운 치즈를 얹은 빵, 커피, 담배, 속을 게워내야만 비로소 괜찮아지는 아침 같은.



좋은가, 그곳은? 요한네스가 묻는다
좋은 것도 나쁠 것도 없어, 하지만 거대하고 고요하고 잔잔히 떨리며 빛이 나지, 환하기도 해,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기 다 있다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 페테르가 말한다



생의 마지막은 어느 날 문득, 주인공 요한네스처럼 인생의 선명한 기억들을 다시 걷다가 결국 스스로의 죽음을 자각하게 되는 과정일까. 그렇다면 내가 마주할 장면들은 무엇일 것이며, 산책의 끝에서 나는 그처럼 덤덤하게 죽음을 인정하고 떠날 수 있을까. 파도같은 질문과 생각들이 마지막 장을 넘기는 내 마음을 연거푸 적셔댄다.



행복의 느낌이 그의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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