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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Jun 27. 2021

어수선한 생각의 발자국

결국, 어딘가로 수렴한다

01

마음이 계절의 애매함을 닮아간다. 불타오르듯 뜨겁다가도 돌아서면 세찬 비가 내리고, 물기를 머금은 채 축축 늘어지다가도 이따금 곁을 스치는 선선함에 다시 마음이 설렌다. 방향과 선명함을 잃은 채 시시각각 뒤바뀌는 고민과 관심사들. 이 불확실한 상태가 불안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다. 되려 불확실함이 두려워 고민 자체를 회피했던 이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매일 눈을 가린 채 매만지는 이 고민의 덩어리가 어떤 형태로 완성될지 가늠할 수 없지만, 내 안에서 그것이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02

요즘에는 시간을 짬 내어 디자인 강의를 듣고 있다. 회사에서의 업무는 대체로 ‘전략’과 ‘기획’이라는 범주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편인데, 늘 이 범주를 넘어서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나 캠페인의 컨셉 등이 디자인 작업을 통해 섬세한 '브랜드 경험'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탐구해보고 싶었다.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은 제한적이기에, 얼마 전부터 온라인 강의 플랫폼을 통해 브랜드 디자인 강의를 수강하기 시작했다. 강의를 듣다 보니, 생활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브랜드 경험 하나라도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세심한 고민과 배려가 담겨있을지 곱씹어 생각해보게 된다. 예전에 누군가 내게 이상형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는데, 다른 건 모르겠고 직업이 디자이너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디자이너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이야기겠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당시의 나는 그들의 섬세한 시선과 표현력에 대해 나름의 존경심과 동경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친구에게 요즘 디자인 강의를 듣고 있다 말하니, 혹시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거냐고 내게 묻는다.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디자이너들과 함께 브랜드의 좋은 경험을 만들어가고 싶은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고 대답했다.



03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우리는 예기치 못한 사소한 경험으로 무언가에 호감을 느끼게 된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순간의 경험을 위해 온전하게 마음을 담아 모든 경험의 접점에서 지긋하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올바른 브랜드의 시작이다.

임태수, <날마다 브랜드>


그의 문장을 옮겨 적으며, 방황하는 나의 생각들을 가다듬어 본다. 이곳 저곳을 오가던 이 발걸음도 결국엔 어딘가로 수렴하게 될 것이다. 어수선하게 뒤섞인 지금의 고민들은 결국 그처럼 담백하고 정제된 문장으로 정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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