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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미 May 15. 2020

천사와 악마의 귀여운 로코? <Good Omens>

2019 상반기 Amazon 6부작

*스포일러 있음

*<북유럽 신화>의 저자 닐 게이먼이 동명 원작 저자다! (드라마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

*BBC 스튜디오


신화, 전설, 민담, 동화 같은 옛이야기를 멋지게 현대식으로 풀어낸 드라마를 보면 감탄스럽다. 약간의 질투심도. 특히 서양은 성경을 변형한 이야기가 많다. 조금 핀트가 다를 수도 있지만 한국의 경우 조선왕조실록 같은 역사서에서도 많이 아이디어를 받고. <굿 플레이스>는 철학서를 드라마로 풀어낸 케이스라고 볼 수 있고, <마스>는 Stephan Petranek의 'how we'll live on mars'라는 과학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꼭 소설처럼 이야기가 완비되어있는 레퍼런스가 아니더라도 다큐든 잡지든 자기 계발서든 원작 소스를 드라마화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오래된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겠으나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양념을 친 이야기가 아무래도 신선한 쾌감을 준다. 가볍고 촐싹 맞은 이야기는 모던하고 깔끔하게, 무게감 있고 장엄한 이야기는 블랙코미디를 섞어서 풍자적으로. 꼭 이렇게 일대일 대응이 아니라도 생각지 못했던 분위기나 장르를 끌어와 각색하면 '이미 아는 이야기가 주는 친숙함'에 '신선함'이 더해져 재미가 배가 된다.


<멋진 징조들(Good Omens)> 역시 성경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드라마다. '아마겟돈'을 막는 이야기인데,

이렇다고 한다.


예언은 anti- christ의 운명을 타고난 아이가 11살이 되는 날 이 세상에 종말을 불러올 것이며 최후의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600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며 인간세상에 정이 든 천사 아지라파엘과 악마 크롤리가 이중 스파이처럼 이 종말을 막아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이야기다. 아이에게 악마적인 생각을 불어넣는 것이 임무인 악마 크롤리. 그는 천사 아지라파엘에게 넌지시 자신을 방해하라고 힌트를 준다. 둘 다 자신의 임무를 하는 셈이니 본부에서 문제 삼을 건 없잖은가. 선과 악이 균형을 이뤄 아이가 평범하게 자랄 수도 있다. 그 길로 둘은 각자 그 집의 유모와 정원사로 취직한다.



[셀링 포인트]

귀여운 선과 섹시한 악의 버디무비

티격태격 콤비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거의 재밌다. 여러 유형 중에서도 서로를 업신 여기는 새침하고 귀여운 모범생과 막 사는(?) 능글능글 날라리 콤비는 스탠더드. 이럴 땐 악마 쪽 캐릭터의 매력이 특히나 중요한데, 데이비드 테넌트는 섹시함으로 세계 1위 수준이니 말할 것도 없다.

오른쪽이 크롤리. 이 분 어디서 봤나 했더니만 <해리포터와 불의 잔>에서 바티 크라우치 역이셨다. 나무 위키를 보니 이건 새발의 피고 엄청난 삶을 사셨다.... 재밌으니 읽어보시길

능글능글한 크롤리에게 '난 천사고! 넌 악마야!'라고 소리치는 아지라파엘의 모습은 거의 로망스급. 둘의 우정이 너무 귀엽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거대한 본부에서 임무를 하달받지만, 현장에서 만날 때마다 땡땡이치자고 아지라파엘을 구슬리는 크롤리가 웃음 포인트. '악은 선을 막고 선은 악을 막아야 하니까 그냥 우리 고생할 것 없이 둘이 싸웠다 퉁치자'든지 '아예 싸움터로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동전 던지기 해서 서로의 일 몰아주기 하자'든지...


6000년 간 어찌나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는지 나중에는 크롤리가 서로를 천국 편, 지옥 편으로 보기보다는 '우리 둘 편'이라고 말하는 로맨틱한 모습까지 보인다. 크롤리가 나쁜 짓을 저질러도 그걸 기록해 줄 천사가 없다면 그의 존재도 의미 없다는 걸 안다.



마녀의 손녀와 마녀 사냥꾼의 손자

그런가 하면 운명을 거스르고 사랑에 빠진 콤비도 있다. 중세시대에 이미 아마겟돈을 예언한 마녀의 손녀 아나테마와 마녀 사냥꾼의 손자 뉴턴. 둘은 태생적으로 쫓고 쫓기는 운명을 타고났다. 손녀 집안은 예언에 따라 애플 주식을 사서 엄청난 부잣집이고, 손자는 조상이 폭발로 죽어서 그런지 전자기기에 손만 댔다 하면 전부 폭발해버린다. 그래서 직장에서 쫓겨나고 운 없는 우울한 삶을 산다.

예전에 엄청 행운이 따르는 여자와 뭘 해도 불운한 남자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런 필연적으로 서로를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콤비를 짝짓는 것도 재미있는 설정인 것 같다.



anti-christ의 동기

중요하게 다뤄지진 않았지만 anti-christ로 나오는 애덤 영의 이야기도 특이했다. 그가 종말을 일으키려는 동기는 기후위기다. 명확히 그 하나의 이유라기보다는, 인류가 갈 때까지 갔기 때문에 새로 시작하는 수 밖에는 답이 없다는 것이다. 타노스 같은 안티 히어로가 또 나온 거다.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해 세계 각국 사람들이 빼앗긴 미래의 환경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고, 나아가 소송까지 한 상황을 고려하면 아포칼립스를 이렇게 사회적으로 엮어낼 수 있겠다 싶다.



내레이션

<셰이프 오브 워터>는 동굴처럼 깊은 목소리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깔끔하게 귀에 꽂히는 성우의 목소리 덕에 순간적으로  이목이 집중된다. 베드타임스토리처럼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고 이제 나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겠군, 하는 생각에 마음을 맡기게 된다. <멋진 징조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외부적인 힘에 의지해   빠르고 정확하게 이야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있는 것이다.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신화, 민담, 전설에 기반한 이야기는 진입장벽이 느껴질 수 있으므로 내레이션을 사용하면 쉽게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것 같다. '나만 믿고 따라와!'하고 멱살 잡고 끌어들이는 느낌.


다만 1인칭과 3인칭이 주는 느낌은 다르다. 둘 다 쉽게 시청자의 관심을 리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3인칭 시점의 나레이션은 약간은 신랄한 블랙코미디에서 효과적인 것 같다. <위기의 주부들>정도? 반면 <너의 모든 것>의 경우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내레이션이 들어가서 훨씬 주인공과 밀착된 기분으로 극을 감상할  있었다.



사실 5화부터는 좀 유치해진다.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치트키를 쓰고, 아나테마가 예언에 따라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척척 아는 등 우리 편이 다 이겨 먹어 버리는 게 유치함을 높이는 요인이다. 또 처음에 꽤나 많은 부분을 할애한 야바위 설정도 끌고 가지 않아서 아쉬웠다. 애를 세명이나 바꿔치기한 게 극 전체에 피상적인 의미밖에는 없었다. 아주 완성도 높은 드라마라고 할 순 없지만 설정과 캐릭터, 특히 천사 아지라파엘과 악마 크롤리의 케미가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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