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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미 May 23. 2020

불꽃이 튀려다 만 디지털 사후세계<Upload>

2020 상반기 Amazon 10부작

*스포일러있음


[셀링포인트]

신선한 볼거리

신선한 기술들 덕에 보는 재미가 있다. 마트에서 영양상태 스캔해 먹을거리를 추천해준다든지, 자전거에서 내리면 알아서 파킹이 된다든지, 3D 프린터로 음식을 해 먹는다든지.

블랙 미러도 그렇고, SF 물은 그럴듯한 볼거리가 많아야 시청자를 붙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설정이라면 진짜 이런 모습일 수 있겠네?'같은 즐거운 상상력. 최신 과학기술 잡지 같은 거 읽으면 좀 도움이 되려나? 드라마 색감도 예쁘고, 설명충 캐릭터가 등판해 '우리 이런 기술도 생각했어~ 짱 멋있지?'라는 뉘앙스로 강조하지도 않아서 좋다.


초반에 주인공 노라의 회사 생활에 대해 살짝 힌트만 주는 것도 부담을 덜어준다. 세계관을 먼저 소개하고 서서히 캐릭터를 녹이며 강약 조절을 하는 느낌. ‘천국’에 가셨다, 혹은 '오늘 죽은 사람 업로드했어?' 등 몇 가지 대화를 통해 궁금증을 유발한다. 알고 보면 그녀가 다니는 '호라이즌'이라는 회사는 죽은 사람들을 위해 가상현실 서비스를 제공한다.

죽기 직전 사람의 뇌를 업로드하면 가상현실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다. 호라이즌의 각 직원이 업로더를 몇 명씩 할당받아 담당하며 '천사'로 불린다. 주인공이 멋있는 회사 대표가 아니라 뺀질거리고 시크한 일개 직원이라 더 마음에 들었다. 친근하면서도 제약이 많아 갈등 상황이 생길 여지가 많다.



분위기를 급 반전시키는 약간의 미스터리

또 다른 주인공 네이선은 1화에서 급작스러운 교통사고로 호라이즌 시스템에 업로드된다. 죽음에 대비하지 못했던지라 혼란스럽고 슬프지만 의외로 좋은 시설에 놀라는, 평화로운 가상현실 생활이 시작된다.

잘 적응하며 앞집 남자와 대화하던 중, 느닷없이 그의 사고가 고의적 살인일 수 있다는 힌트가 등장한다. 전혀 그럴 분위기가 아니어서 약간 루즈하게 느껴지다가 '자네, 살해당했군.'이라는 대사가 나오면서부터 긴장감이 확 생긴다.

전혀 그렇지 않은 듯하다가 갑자기 추리/스릴러의 요소가 등장할 때의 쾌감을 잘 노린 듯하다.



죽어서도 벗어날 수 없는 계급의 벽

레이크뷰는 호텔 층마다 계급이 있다. 부의 기준은 데이터다. 호화시설 사용은 물론 먹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온전한 몸이 있는 것까지 전부 데이터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어느 부자 할아버지는 호텔 방 문을 열면 커다란 정원과 대저택이 펼쳐진다.

그런가 하면 가장 밑바닥 층에는 '2기가'들이 산다. 현실에서 돈을 대줄 사람이 없어 데이터를 살 수 없는 사람들. 지낼 곳은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방뿐이다. 주어진 데이터 2기가를 다 써버리면 한 달간 냉동 상태로 굳는다. 책도 체험판이라 5페이지까지 밖에 없고 기본 옷이나 심지어 먹을 것은 어느 식당에서 실험용으로 후원하는 음식들이다.


 

[개선점]

보다시피 셀링포인트는 전부 설정들이다. 강력한 플롯이 없고 캐릭터도 뭉툭하다. 화려한 설정의 SF라면 단순 로맨스 외에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텐데 아쉬웠다.


로맨스의 생명은 장애물

지금처럼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울 거라면 좀 더 강력한 장애물이 있어야 했다. 살짝 영화 <동감>의 미래 버전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시스템 밖 노라와 인터넷 상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네이선의 닿을 수 없는 로맨스라면 좀 더 애틋하고 긴장감 생기지 않았을까? 노라가 VR고글만 쓰면 바로 네이선을 만날 수 있고 슈트 입고 만질 수도 있어서 장애요소가 거의 없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네이선의 여자 친구 잉그리드는 누가 봐도 비호감이니 더더욱. 둘이 사랑하라고 멍석을 제대로 깔아놓은 데다가 두 캐릭터의 성격도 그냥 무난하고 착해서 긴장감이나 설렘이 거의 없다.


메인 플롯이 메인 배경에서 일어나지 않아 동력을 잃었다

네이선이 죽은 이유를 밝혀내는 미스터리도 깊이가 없다. 자신이 공동 대표로 있는 회사가 자금을 빼돌리려 뒤통수를 쳤다는 식의 내용인데, (뒤에 가서는 아주 살짝 비틀긴 하지만 거의 미미한 임팩트) 셀링포인트로 내세운 가상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보니 이야기들이 물과 기름처럼 둥둥 떠있다. 게다가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방식도 영리하지 않다. 주인공의 사촌동생이라는 사람이 별 동기도 없는데 계속 의심하면서 사건을 쫓을 뿐이다. 극의 중심이 로맨스라 미스터리는 그저 잠깐 혹할만한 기능적 요소에 그쳐 아쉬웠다.


메인 플롯으로 극대화할 수 있는 불씨들

얼마 전 김초엽 작가가 SF를 쓸 때 '이 기술 때문에 소외당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춘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이 드라마에도 발전시킬만한 여지가 있었다. 노라의 아버지는 업로드 대신 자연 죽음을 택하려는 사람이었다. 그의 아내는 시스템이 개발되기 전 죽었기 때문이다. 신이 만든 진짜 천국에서 아내를 만날 수 있으리라 믿으며 담담히 죽음을 준비하는 아빠의 이야기는 충분히 행동의 동기가 될 수 있다.


2기가 사람들도 당연히 소외된 집단이므로 이들을 중심으로 투쟁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도 있고, 혹은 업로더들 전부가 소외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언뜻 천국에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현실세계에서 돈을 대주는 이들에게 묶여있기 때문이다. 네이선은 워낙 급박하게 업로드해서 여자 친구 잉그리드의 계좌에 연결되어 있는데, 자기가 잉그리드 심심할 때 들르는 장난감 같다고까지 말했다. 사생활도 없고 잉그리드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 가상현실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시즌 2에서 본격적으로 깊은 이야기를 다룰지는 모르겠으나 시즌 1은 10화 내내 배경 설명 말고는 알맹이가 없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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