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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원책담 May 27. 2023

두 개의 야쿠르트

 예전 사진첩을 뒤적이다 두 개의 야쿠르트 사진을 보았습니다. 이제는 오지 않은 한 청년이 준 것인데요. 첫 만남은 불안했고, 지금은 오지 않아 한편으론 안도감이, 다른 한편으로는 미안함이 드는 청년입니다. 그 청년의 근황이 궁금하네요.


 처음은 어수선했습니다. 4월은 따뜻해도 반팔로 돌아다니기에는 이른 감이 있는 계절입니다. 그즈음 아침 독서모임이 있어 한창 토론을 할 때 심상치 않은 모습으로 그가 들어왔습니다. 윗도리는 메리야스를 입고, 양말도 없이 맨발에 슬리퍼를 끌고, 목에는 비닐봉지를 둘렀습니다. 마른 코피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고요. 보호자에게 전화를 하고 싶은데, 전화기가 없어 부탁한다고 했는데요. 솔직히 많이 당황했지만 전화기를 빌려주어 통화하게 한 후 돌아갔습니다.


 며칠 후 그가 다시 왔죠. 지난번과 똑같이 비닐봉지를 목에 두르고 와서 커피 한잔을 시켰습니다. 이곳에서 책을 읽고 가면 안 되겠냐고요. 우리 가게가 책 보며 커피 마시는 곳이니 거절할 이유는 없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리 내켜하지 않았지요. 일단 커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내가 내켜하지 않은 것이 미안할 정도로요. 그것도 잠시, 조금 있으니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의자를 딱딱 치기도 하고요. 말은 안 했지만 신경이 온통 그쪽으로 쏠렸지요. 싫다가도 미안하면서도 다시 짜증도 나고 온갖 마음이 어울려져 뒤죽박죽이었죠. 그러다 갑자기 뛰어나 거더니 외투를 챙겨 입고 왔어요. 그리고 고맙다면서 야쿠르트 두 개를 주었습니다. 고마움보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그리고 얼마나 창피하던지. 그 감상을 당시에 인스타그램에도 나누었습니다.


 그다음부터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오더라고요. 매장에 있는 중고책을 보기도 하고, 긁적임에 무슨 말인지 모를 글을 쓰기도 했지요. 흥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지휘 같은 것을 하기도 하고요. 여러 번 방문했지만 전혀 익숙해지지 않더라고요. 중간에 다른 손님도 왔지만 별 불평 없이 하던 일을 하시고 가셨어요. 모두 신경이 쓰였을 텐데 티를 내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제 속으로는 불안했습니다.


 이렇게 두어 달이 지났습니다. 그날은 바쁜 날이었어요. 테이블이 반 정도 찼을 때 그가 왔습니다. 큰 테이블에 자리 잡고 평소 모습 그대로 와서 흥얼거리며 지휘하는 흉내를 냅니다. 다른 날에는 손님이 적었지만 이날은 조금 많아 정말 신경이 쓰였어요. 행동을 제지할까 말까 고민도 했고요. 그런데 또 한 팀이 들어왔습니다. 마땅한 자리도 없어 그에게 자리 이동을 해달라고 요청했지요. 순간 얼굴이 굳어지더라고요. 그는 자리를 옮겨주었지만 불편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답니다. 그도 내 마음을 읽었을 것입니다. 내가 못마땅하다는 것과 초조했다는 것을. 그리고 조금 있다가 나갑니다. 평소에는 고맙습니다를 여러 번 한 후 갔는데 그날은 그냥 나갑니다. 불편한 감정을 말없이 이야기한 것이죠.


 그는 일주일, 한 달이 지나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날이 마지막이었던 것이었죠. 불안했던 마음이 없어져 홀가분하기도 했지만 미안하기도 했어요. 손님이 많아서 자리 이동 부탁이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전 알고 있어요. 자리이동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서로 본 눈빛이 문제라는 것을. 나도 그의 눈빛을 보았고 그도 제 눈빛을 보았을 테니까요.


 편견이 없도록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조건이 붙은 환대가 아니라 절대적 환대를 해야 합니다. 책을 읽으며 감동을 받기도 하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느낀 부분입니다. 하지만 실전은 복잡합니다. 머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당위를 말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장삿속 계산을 하고 있고, 돌발적 사고가 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섞여 복잡합니다. 그리고 한 번으로 끝날 일인지 오랫동안 안 야할 일인지도 생각해야 하고요. 남의 이야기였다면 그에게 잘해주어 훈훈한 미담이 되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눈앞에 닥친 내 모습은 평소에 내가 비판하던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었거든요. 따뜻함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인데 자꾸 머리로 데우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가 다시 온다면 어떻게 할까요? 비슷한 행동을 다시 한다면? 다른 손님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도록 마음 상하지 않게 제지할 것 같습니다. 저도 서툴러 감정적으로 그를 대해 맘 상하게 한 것 같거든요. 훈훈함도 연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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