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타협의 산물
소원글방에서 글쓰기
나는 거울을 웬만해서 보지 않는다. 스스로 내 얼굴을 본다는 것이 괜스레 쑥스럽다. 화장실 세면대에 거울이 있어 보지 않으려 해도 볼 수밖에 없지만 빠르게 훑어간다. 그런 나이지만 아침에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고 일어난 머리가 얼마나 삐쳤는지 본다. 그런 후 물만 묻혀 가라앉히면 되는지 아니면 감아야 하는지 판단한다. 눈곱도 거울을 보며 뗀다. 거울을 보기 좋아하지 않지만 내 상태를 정확히 보려면 거울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도 거울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다시 내가 썼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상당히 민망하고 부끄럽다. 이미 쓴 글은 내 손을 떠났고 떠난 글은 내 글이 아니길 바랐다. 아침에 일어난 내 모습이 가관이듯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 본 내 글은 얼굴을 빨개지게 만든다.
짧은 글을 쓰더라도 곧바로 글이 나오지 않는다. 먼저 어떤 주제로 쓸 것인지 정하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낼까 대략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면 글쓰기가 시작되지 않는다. 구조가 정해졌다 해도 허술한 부분이 발견되면 갑자기 절벽을 만나게 되어 글쓰기가 막히게 된다. 처음엔 생각하지 않은 부분을 추가하기도 하고, 있던 부분을 생략하면서 막혔던 부분을 조금씩 풀어간다. 하지만 힘을 너무 쓴 탓에 쉬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다보면 글을 급히 마무리 하거나 마무리 하지 않고 글을 저장한다. 다시 그 파일을 열기도 하지만 한동안 열지 않는 묵혀둔 파일이 쌓인다. 글쓰기가 마냥 즐겁지 않아 펜을 드는 시간은 침대에서 뭉그적거리다가 일어날 때와 같다.
민망함을 무릅쓰고 처음 썼던 글을 다시 펼친다. 글을 다시 읽을 때는 눈으로 읽으면 안 된다. 빠르게 읽어도 안 된다. 소리 내어 읽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튀는 부분이 발견된다. 특히 제대로 된 조사를 쓰지 못하면 주어가 애매해지고 비문이 되기 쉽다. 이런 문장이 발견될 때 한심함을 느끼지만 얼마나 많은지 읽을 때마다 찾는다. 그 다음 버릴 습관은 동어 반복이다. 한 문장에 같은 단어를 여러 번 쓸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 빼버려도 된다. 이승우 작가는 동어반복을 그렇게 많이 해도 문장이 아름답다. 그것은 고수만이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밖에 ‘~할 것이다’처럼 자주 쓰는 구문이 있다. 반복되면 글이 지루해져 다른 말로 대체해야 하는데 다른 단어가 쉽게 떠오르지 않아 고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지금도 ‘~하는데’, ‘~하지만, ~다’투를 많이 쓰고 있다. 그런 것을 발견했다 해도 다른 말로 무엇을 써야 하는지 몰라 한참을 고민을 한다.
이렇게 퇴고를 하고 나면 글이 좋아져 그나마 볼 용기가 있을 줄 알았다. 다시 보면 볼수록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솟아난다. 글의 구조도 처음 그렸던 모습과 많이 다르고 단락이 넘어갈 때 개연성도 없어 보였다. 무엇을 덧붙이기도 애매하다. 단락을 옮겨보기도 하고 바꿔보기도 한다. 이전보다 좀 나아보이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쏙 들지 않는다. 이러다보면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최인훈의 『광장』도 6차례 개작했다. 정유정 소설가는 『28』을 다 쓰고 난 후 처음부터 다시 썼다. 대가들도 자기가 썼던 글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 쓰고 다시 썼을 것이다. 내가 몇 번 퇴고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점점 진이 빠져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에 도달한다. 이제는 글을 마무리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비굴하지만 적당하게 타협한다.
퇴고는 글만 퇴고하지 않는다. 제목을 미처 정하지 않았으면 정하기도 하고 바꾸기도 한다. 이 글도 처음에는 초고를 쓰고 첫 번째 퇴고하기 전까지 어려움을 쓰려고 했다. 그래서 ‘민망함을 이겨내고’라고 제목을 정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퇴고를 적당히 하려는 나의 게으름이 더 얄미웠고 무게중심이 그쪽으로 갔고 ‘적당한 타협의 산물’로 제목을 바꾸었다. 이처럼 퇴고를 하면서 처음 설계한 것과 결과물이 달라지는 경우는 흔하다. 설계도는 조금씩 변경되어 누더기가 되기도 하지만 그 설계도마저 없다면 글이 더 많이 튀고 이상해질 것이라 생각된다.
이제 적당히 타협하여 글을 마무리하고 샤워를 한다. 샤워를 하면서 수염을 깎는다. 거울을 보지 않고 손으로 얼굴을 만지며 수염을 깎는다. “아얏!“ 손에 피가 약간 비친다. 턱 아랫부분을 베었다. 역시 면도할 때는 거울을 봐야 했다.
( 혜화동에 있는 소원책담의 글쓰기 모임인 소원글방에서 글쓰기했던 글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