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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원책담 Oct 18. 2023

~일 것이다

feat. 식물적 낙관,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김금희의 『식물적 낙관』을 읽다가 재미있는 장면이 있다. 


옅은 노란색과 푸른색 그리고 흰색으로 마치 누군가 개성 있게 칠한 유화 같은 일을 보여주는 무늬 싱고늄은 그간 빨래 건조대에 걸려 있었다. 그러다 건조대가 망가지는 바람에 바닥 생활을 시작했는데 전보다 훨씬 더 잘 자라고 있다. 잎도 많아지고 무엇보다 이 식물의 가장 큰 특징인 변이 잎이 늘었다. 그래서 건조대를 고치고 나서도 그냥 바닥에 둔 채로 기르고 있다. 좁은 발코니라 걸을 때 혹시 잎을 밟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아직까지는 무늬 싱고늄도 나도 서로 잘 피하고 있다. 햇볕을 잘 받으라고, 공기 중에 있으면 통풍이 잘될 거라고 걸어두었건만 그게 오히려 더딘 성장의 원인이었다니. (식물적 낙관 p.150)


작가가 싱고늄을 배려하여 한 행동이 결과적으로 싱고늄에게 도움이 그리 안 되었다. 작가는 이런 싱고늄을 보고 세상의 많은 일들이 내 지각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일 것이다'라고 예상을 하지만 결과는 엉뚱하게 나오는 것이 허다하다.

우리는 항상 미래를 예상한다. 그리고 그 예상은 대체로 맞는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이유는 우리가 원하는 버스가 정차해 타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보통은 그렇게 버스를 탄다. 만약 버스가 정차를 하지 않고 지나친다면 우리는 당황하며 화도 난다. 사람들의 관계도 비슷하다. 상대가 당연히 '~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일을 진행했는데 나중에 아무것도 안되어 있거나 엉뚱한 일처리가 되어있을 때 어처구니가 없다. 나와 상대가 그리는 전체의 모습도 다르기도 하고 일의 순서도 다를 수 있고 상식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에 대한 기대와 실제 행위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차이는 오해를 낳기도 하고 다툼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그래서 처음 같이 일을 할 경우 용어의 정의부터 일의 절차까지 세세히 조율해 나아가는 것이 안전하다. 그래도 상황이라는 것이 덧붙여져 나의 '~일 것이다'라는 예상이 여지없이 박살 날 경우는 흔하디 흔하다. 오랫동안 만난 사이라 하더라도 예상이 틀릴 경우도 있다. 이때는 '아직까지 나를 모르나'하는 섭섭함까지 덧붙여질 수 있다. 


각자의 예상은 각자가 가지는 상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예상하는 바가 다를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많은 사람이 다르게 예상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틀렸다고 볼 수 없다. 많은 사람의 예상이 적중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나의 예상이 자주 어긋난다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껴야 한다. 그 잘못됨을 인식하지 못하면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예상치와 맞지 않을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 부분이 모여 오해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나를 돌아보고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틀릴 수 있다고 느끼면 상대에게 더 너그러워질 수 있다.


반면 예상이 어긋나는 것이 화가 나고 트러블만 내는 것은 아니다. 예상이 어긋나는 것은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 펼쳐진다는 것인데 오히려 쾌락이 될 수 있다.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만들어내는 영화의 결말은 반전이라는 쾌감을 느끼게 해 준다. 어린아이 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생각하지 못한 따뜻한 미소는 마음을 사르르 녹인다. 무거운 짐을 옮기려는데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도움을 준다면 엄청난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일 것이다'가 틀어진 경우라 하더라도 부정적이기도 하고 긍정적이기도 하다. 


최근에 읽은 황선우, 김혼비 작가가 같이 쓴『최선을 다하면 죽는다』에서 반전이 있었지만 쾌감이 아닌 황망함을 느낀 경우도 있었다. 당근마켓 사건인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선생님의 지인이 큰마음을 먹고 당근마켓에 올라온 81만 원짜리 가방을 샀다고 해요. 그렇게 고액이 오가는 거래는 무조건 직거래로 해야 안전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게시물이 올라오자마자 채팅이 5개가 걸린 상황에서 그중 선입금자에게 가방을 팔겠다는 판매자의 말에 다급해진 A 씨는 덜컥 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발송했다고 진작 연락이 왔어야 할 판매자에게 이틀간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해도 연락이 끝까지 닿질 않아 A 씨는 중고거래 사기로 신고했고, 그로부터 한참 후에 경찰을 통해 그 판매자가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라는 걸 듣게 되었습니다. 사정을 안 유가족 중 한 분이 곧 그 가방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는 말과 함께요.(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p.98)


우리가 생각한 '~일 것이다'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그 틀림이 우리를 화나게 하기도 하고 싸우게 한다. 기쁘게 하기도 하고 슬프게 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예상이 틀리기에 살아가는 맛이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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