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원책담 Sep 04. 2023

선량하지 않은 '선량한 사람'

'더티 워크'를 읽고 (소원책담 독서모임 - 담쟁이 독서회)

 소원책담에는 여러 독서모임이 있는데 모임마다 색깔이 다르다. 그중 매월 첫 번째 토요일 모임은 '담쟁이 독서회'이다. 소원책담 바로 앞집 담에 있는 담쟁이가 예쁘기도 하고, 소원책담과 담쟁이가 어울리는 단어여서 '담쟁이 독서회'로 지었다. 그런데 담쟁이라는 이름과 다르게 '담쟁이 독서회'에서 다루는 주제는 약간 무겁다. 그리고 9월의 책은 한겨레 출판사에 펴낸 이얼 프레스의 '더티 워크'였다. 

이웃집 담벼락에서 바라본 소원책담, 그리고 '더티 워크'로 담쟁이 독서회를 진행한 모습

 '더티 워크'는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을 이야기한다. 특히 비윤리적인 노동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3D와는 좀 다른 의미이다. 예를 들어 정화조 청소는 하는 일은 불결할 수 있으나 그 일이 비윤리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노동은 꼭 필요하고 노동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더티 워크'는 누구나 하기 꺼리는 일이지만 누군가는 그 일을 하고 있고, 일을 하는 사람을 오히려 비난하기도 하는 일을 말한다. 


  책에서 '더티 워크'로 소개된 직종은 교도소 안의 정신병원 교도관, 살상용 드론 조종사, 도축 노동자, 시추선 생존 노동자를 이야기한다. 덧붙여 실리콘 밸리 이야기를 곁들였다. 노동자나 주위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문제점을 이야기하는데 미국 이야기여서 정확히 우리나라 현실에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약간만 바꾸면 우리나라 상황에도 충분히 적용되는 사례일 것이다. 


 모든 '더티 워크'는 일반인들이 꺼려하는 일이다. 정확히는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일 또는 수면 아래로 들어가 있어 드러나지 않아야 하는 일이다.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누군가 소나 닭을 죽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동물들을 죽이는 일을 굳이 알고 싶지 않다. 그 결과물만 취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다 잔혹하게 도살하는 장면이 매스컴에서 이슈화가 되었을 때 도축노동자는 수면 위에 드러나고 우리는 잔인하다고 도축노동자를 비난한다. 필요하여 일을 하나 그 일을 한다고 비난받는 일, 이것이 '더티 워크'이다. 


 이런 '더티 워크'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보수는 형편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하층민이나 이주민이 이 일을 담당하게 된다. 이때 일이 터지면 위에서처럼 노동자가 비난을 받게 된다. 문제를 제대로 고치려면 시스템을 손을 대야 한다. 하지만 힘이 없는 말단 노동자를 비난하는 것으로 우리는 모든 일을 끝낸다. 그런 우리를 책에서는 '선량한 사람들'이라고 칭한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를 뽑으라면 '선량한 사람들'을 뽑을 것이다. '선량한 사람들'은 문제가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는 수면 아래에 있어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교도소 내의 정신병원에서 죄수를 가혹하게 다룬 것이 문제면 해당 교도관만 짓밟으면 된다. 왜 그들이 점점 가혹해졌는지 알 필요가 없다.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면 된다. 이런 '선량한 사람들'의 해법으로 문제는 점점 밑으로 파고들어 수면 위로 드러나지도 않고 악화만 된다. 이런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선량한 사람들'이 만드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선량한 사람들'은 바로 우리를 가리키고 있다. 게다가 '선량한 사람들'은 결코 선량하지 않다. 오히려 위선적이고 무심하다. 그 무심함이 '더티 워크'를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선량한 사람들'은 언제든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이히만일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섬뜩함을 느꼈는데 그 이유는 나를 향해오는 칼날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