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원책담 Aug 14. 2023

사랑이란......

이승우의 '사랑의 생애'를 읽고

글을 쓸 때 주의할 부분 중 하나는 동어반복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문장은 간결하게 웬만하면 단문으로 쓰라는 것이다. 동어반복이 많은 글은 지루해지고 글이 끊어지지 않고 길어지면 자칫 비문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승우의 독특한 문체는 동어반복도 많다. 특히 동어반복이 많은 문장은 다른 문장보다도 길다. 글을 쓰는데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면서도 글이 아름답다. 이것이 이승우의 필력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은 그 말을 듣는 사람만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도 겨냥한다. 더욱 겨냥한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말을 듣기도 하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은 듣기만 하는 사람이지만 하는 사람은 하면서 듣기도 하는 사람이다. 듣는 사람은 잘못 들을 수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말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는 어렵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해놓고 사랑하지 않기는 더욱 어렵다. 
 (...) 말의 함, 즉 주술일 뿐일까. 그것뿐일까. 주술사는 누구, 혹은 무엇을 향해 주술을 건다. 주술에 힘이 있다는 것은, 주술사가 겨냥한 그 누구, 혹은 무엇에 주술사가 의도한 어떤 현상이 결과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 하는 말이다. 그런데 주술사가 건 주술이 누구이거나 무엇이 아니라 주술사 자신에게 나타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p.131)

이렇게 '사랑'으로 시작하여 '말'로, '듣기'로 가다 다시 '사랑'으로, 급기야 '주술'이라는 단어로 이어진다. 마치 옆사람에게 전해지는 손수건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동어반복이 많아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같은 단어라도 점점 지나면서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 사랑한다고 말만 사람이 글을 읽다 보면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처럼 단어의 의미도 변한다. 이런 글은 이승우 글만의 색깔이다.


 '사랑의 생애'의 서사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주연으로 선희가 등장하고 현재 애인 영석과 예전에 선희가 좋아했던 선배이자 현재 선희에게 구애하는 형배가 등장하여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풀어낸다. 곁들여 조연으로 준호와 형배 부모의 사랑이야기가 곁들여진다. 그들의 심리 상태를 적나라하게 파헤치면서 소설이 진행된다.

사랑으로 유발되거나 사랑으로 가기 위한 여러 가지 감정인 자격, 도피, 실연, 키스, 애무, 질투, 우월감, 두려움, 연민, 끌림, 생존, 기적등을 다룬다. 이렇게 다각도로 사랑을 들여다보고 파헤친다. 이제까지 가졌던 사랑의 감정을 투영하기도 한다. 이 소설은 내내 사랑을 낱낱이 해부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자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p.285)며 이제까지 읽은 독자를 허탈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랑을 하나로 정의한다는 것이 무모할 수 있다. 사람마다 사랑의 방법은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도 상대에 사랑도 달라질 수 있고 때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형배가 가진 상대에 대한 우월감은 사랑이 될 수 없으며 사랑이 이루어질 듯하다가도 깨질 수밖에 없다. 연민은 사랑이 될 수 있으나 우월감은 사랑이 될 수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안의 타자, 타자 속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