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나는?
아이들은 오이, 무 자라듯 큰다는 어른들의 말을 이해하게 된 것은 첫째 아이가 넉살 쯤 되었을 때 였다. 어린이집을 보낼 때도 불안불안했던 그 아이가 어느새 이렇게 커서 유치원을 간다는지, 언제 이렇게 대화가 되고 또 어떤 때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말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지고 또 어떤 날은 말싸움이 되는 것 같은 느낌도 나는지?
그렇지만 둘째를 낳고 보니 첫째를 키울 때 얼마나 아무것도 모른채로 말그대로 키우기에 급급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 때도 백일의 기적이라는 말은 아마도, 남편과 둘만 살던 성인들의 인생에 아기라는 생명체가 끼어들어 새로운 가족이 된 데 익숙해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아이가 쑥쑥 자라나는 일이 얼마나 경이롭고 또 신비로운 일인지에 대한 감흥은 매우 적었다.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이겠지만.
첫째보다 둘째, 둘째보다는 셋째가 더 사랑이라더니 왜 그런 말들을 하는지 이해가 된다. 한번 두번 해봤기에 상대적으로 더 수월한 느낌이 있고 - 실제로 수월하기도 하고, 주변을 돌아보니 둘째들은 상대적으로 더 순한 기질의 아이들인 경우가 많은 듯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미 엄마였기에 엄마로서의 삶이 새롭지 않고, 예전에는 몰랐던 (혹은 잊고 말아버린) 신생아 시절의 소중함을 아는 경력직이라는 점이 차이를 만드는 것 같았다. 눈을 맞추고 씽긋 웃는 미소, 점점 힘이 생기고 튼튼해지는 다리에 아이가 얼마나 쑥쑥 자라는지, 내 경우에는 유독 체감이 달랐다. 인간이 커간다는 것에 대한 신비, 어떤 뜻 모를 감사함도 느껴지고.
그리고 첫째도 쑥쑥 크고 있다. 정신적으로는 너무 심하게 성장을 하고 있다고나 할까? 예전에 어디선가 3-4살때는 뭐든지 혼자 하겠다고 하던 아이들이 실제로 본인이 스스로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뭐든 부모에게 해달라고 하고 혼자 해보겠다던 의지가 사라진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는데, 이것은 사실이었다.
꾀가 늘고, 떼도 늘고, 짜증도 늘었다.
특히 지난 몇주는 부모의 인내심 테스트를 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꽤나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지금까지 크게 부모 말을 안 듣는 일이 없었던 아이라서 더 최근의 변화가 커다랗게 느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의 떼가 늘은 걸까 둘을 키우며 내 인내심이 바닥나가는 걸까 어떤 것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렵다. 첫째는 첫째라서, 둘째는 둘째라서 짠해보이는 부모의 마음.
그러나 와중에도 아이들은 자란다. 첫째는 늘 둘째에 대한 사랑? - 그 흔한 아기가 아기에게 귀여워! 너무 귀여워! 하는 모습 - 을 비추지만 그 기저에 알 수 없는 질투가 있음을 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 옆에서 무언갈 하고 싶다며 굳이 소파에서 종이도 오리고 색칠도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짠하다. 그 마음을 애써 숨기며 아빠가 오면 나도 동생처럼 트림시켜줘, 안아줘! 하는 아이가 그 와중에 세상 모든 것이 본인 위주로 돌아가지 않음을 배우고 있을 것이라 위안한다.
그러나 반면, 나의 성장은 모르겠다. 부모로서도, 아내로서도.
성장 강박이 있는걸까? 게으르지만 멈춰있거나 도태되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은 신생아를 유아로 키워내면서도 계속 전업주부로서 살아가는 삶은 나와는 맞지 않는 삶이라 생각한다.
이미 십여년 회사 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이해하게 된 어디를 가나 회사는 거기서 거기고, 내가 지키고 싶은 내 안의 밸런스와 그 회사의 장단점의 밸런스가 잘 맞는 곳이 있을 뿐이라는 것. 그럼에도 도둑질도 해본 사람이 할 수 있다고 지금으로서는 가장 쉽게 (예전만큼)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다시 직장인이 되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의 육아로 강제 주부 생활을 하면서 남편의 벌이와 관계없이 나는 적당한 바깥생활과 적당한 사회생활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이들의 등하원 시간에 방해받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인데, 요즘 세상에 수 많은 사람들이 떠드는 블로그로 월 천만원 벌기, 유튜브로 성공하기 등 마치 직장인의 3대 허언처럼 느껴질 뿐이다.
마흔이 다 되어 다시 만난 사춘기처럼 도대체 내가 좋아하는 것은, 잘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계속 고민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삶, 남편과 함께 하는 삶에 익숙해진 지금은 예전보다 나의 취향과 나의 선호가 더 흐려져 스스로도 잘 모르겠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무엇을 해야할까? 오늘도 고민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