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에도 고민은 계속된다.
20대에 입사한 회사를 11년 동안 다녔다. 파견직에서 계약직, 계약직에서 정규직까지 생각해 보면 그 기간에만 느낄 수 있던 온갖 쓸데없는 - TMI: MBTI INFJ - 감정들을 다 겪고 나름대로는 그 회사에서 인정받고 살아남았고, 그런 성취감으로 더 열심히 일하며 11년을 근속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 입사했을 때 10년 넘게 다닌 분들을 보면서 어떻게 한 회사에서 저렇게 오래 일할 수 있을까? 했는데 앞만 보며 전속 질주하다 보니 나도 어느덧 10년을 넘겼더랬다. 한 우물을 십 년 이상 파면 뭐라도 된다는 얘기도 뇌리에 박혀있기는 했으니 10년이 지나가면서 점점 더 내 고민도 깊어졌다. 뭐 나만의 고민은 아니고 이 세상 모든 회사원들의 고민이라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지.
십 년 동안 한우물을 파면 성공도 할 수 있다지만 십 년은 또 강산이 변하는 세월이기도 한지라, 세상이 많이 변했다. 아이를 낳는 초산연령도 더 높아지고, 그 사이 유튜브라는 새 플랫폼이 새로운 직업이, 돈벌이가 생겨났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도 점차 사라지게 됐다. 오죽하면 직장인의 3대 허언이 '나 퇴사할 거야!', '나 유튜브 할 거야!', '나 제주도 가서 한 달 살기 할 거야'라고 하겠나?
나도 그렇게 허언처럼 한 2년 정도를 더 연명했을까? 고민만 거듭하며 스트레스만 쌓여가던 때, 그렇지만 회사에서는 가장 인정받던, 승진 후 3달 뒤쯤 퇴사했다. 팀장님 자리가 공석이던 반년 정도 그 자리를 메우며 최선을 다해서일까 무언가 얻을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었을까, 나를 갈아가며 최대한 빈자리가 티 나지 않게 열일했던 일 년 정도를 보내고 나니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 들 이 회사는 내 것이 아니며, 내가 낸 성과와 회사의 의사결정이 꼭 연결되어 있지는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새삼스레 와닿았다.
한 우물의 기준점이 십 년이라는데, 십 년도 넘었잖아? 그동안 너무 열심히 달린 내게 보상이다. 갭이어야!라는 생각으로 퇴사를 결정하고, 처음에는 마치 그동안 여행을 못 다니기라도 한 사람처럼 매달 여행을 떠났다. 영상도 찍어보고 글도 써보던 내게 갑작스레 두 번째 아이가 찾아왔고, 그렇게 뭔가 무기력해져 버렸다. 일 년 정도 갭이어처럼 쉬며 이것저것 해보고 다시 취업을 해야지! 라던 내 생각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따른 무기력이었달까?
이제는 아이가 태어났고, 신생아 시절보다는 훨씬 많이 큰 4개월. 첫째보다 수월하고 확실히 순둥한 둘째를 키우며 꽃이 피어나고 모든 것이 생동하는 봄을, 봄 날씨를 마주하자니 무언가 의욕이 솟아오른다.
그런데 고민은 여전히 같다. 해결되지 않았다.
무언가를 쓰고 만들어내는 크리에이터가 된다고 해도, 무엇으로 지속가능하게 내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내가 진짜 무엇을 좋아하는지, 진짜 프리랜서가 되고 싶기는 한 건지, 회사를 다니면서 성장하고 싶은 건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거다. 중고등학생 때는 25세면 자차가 있을 줄 알았고, 30세면 멋진 인테리어의 내 집을 가질 줄 알았던 것의 연장선이라고 봐야 할까? 40대가 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내가 잘하는 일은 무엇인지 여전히 고민하는 삶이라니.
그래도 내 내면의 긍정아이를 굳이 끌어내보자면, 아직도 인생을 잘 살아보고자 하는 열정이 살아있다고 해야 할까? 어떤 일이든 주어지면 일이 되게 만드는 나, 어떤 일이든 평타 이상은 하는 나이지만 어떤 뾰족한 한 가지가 없는 것 같다. 나의 뾰족한 한 가지, 언제쯤 찾을 수 있는 걸까? 있는데 나만 모르는 건가?
확실한 것은 20대 보다 30대의 내가 더 좋았다는 것. 나는 주부의 삶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
그 회사를 퇴사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이직하지 않고 회사를 그만두어 자발적 백수가 된 것은 잘 한지 모르겠는데, 이 점마저도 잘한 것으로 만들고 싶다. 아직은 모르지만 30대의 나보다 더 마음에 드는 40대의 나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또 다짐해 본다.
질문만 해대는 물음표 살인마는 오늘도 흩어져있는 생각들을 주웠다 내려놨다 하며 어디 있는지 모를 정답을 찾아 헤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