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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 엄마 Jan 25. 2022

엄마, 내가 세 살 때 엄마가 나한테 처음 화냈었잖아.

그때 내가 마음이 많이 아팠어.

2022년. 새해가 밝았다. 아이는 나와 함께 지낸 지 햇수로 만 4년이 되었다.

아니, 이제 몇 달 후면 여섯살이 되니 만 5년 동안 나와 함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고 있다.  

요즘 아이는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다양한 감정들을 몸소 겪어내느라 짜증과 신경질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이는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자신의 감정을 엄마인 나와 아빠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더욱이 재작년부터 시작되어 올해 마무리된 '공부하는 엄마'를 견뎌내느라 그동안 참고 억눌러왔던 모든 감정들을 한 달 내내 쏟아내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엄마! 놀자!!"를 외치며 나와 함께 매 순간 놀고 싶어 하는 아이는, 자정이 될 때까지도 끊임없이 엄마를 찾으며 '엄마'라는 존재에 목말라하고 있다.


오늘도 느닷없이 아이의 짜증이 폭발했다. 나는 말이 나온 김에 아이와 장장 두 시간에 걸쳐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아이가 울먹이며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내가 세 살 때 엄마가 처음으로 나한테 화를 냈잖아"

"그걸 어떻게 기억해?"

"나는 모든 걸 다 기억해. 나는 그런 기억들이 오랫동안 기억나."

"엄마가 규하한테 그동안 몇 번 화를 냈었지만, 화낸 적 말고도 엄마가 규하한테 잘해준 게 얼마나 많은데, 그걸 기억해주면 안 될까?"

"그치만 내가 기억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런 기억들은 계속 생각이 나."


울먹거리는 아이를 바라보며 숨이 턱 막혔다.

그랬구나. 너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그런 엄마가 계속 떠올랐구나.

화들짝 놀란 나는 고개를 숙이려는 아이의 가슴에 손을 얹고 슬퍼하고 있는 아이의 영혼을 향해 진심으로 사죄했다.

"미안해, 규하야. 엄마가 규하에게 화를 내서 정말 미안해. 용서해줘."


아이가 클수록 엄마인 나는 화가 많아졌다. 대체 이 화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아이를 재우고 멍하니 앉아 TV를 보다 눈물이 뚝뚝 흘렀다.

이해되지 않는 아이의 모습에 지쳐 참다 참다 화를 내는 내 모습은 사실은 이 아이가 혹여나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받지는 않을까, 상처받지는 않을까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화가 아니라 걱정이다. 그러나 감정 표현이 서툰 엄마는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을 화라는 감정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부족한 엄마이다.



아이들은 '감정'을 사용하는 방법을 부모로부터 배운다. 놀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역할놀이에서 아이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말들은 부모를 비롯하여 자신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과 빼곡히 닮아있다. 자신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이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바라보며 비슷한 상황에서 모델링하며 '자기화'한다. 부모 또한 자신을 쏙 빼닮은 아이의 부족함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아이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나는 '화'라는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며 살아오곤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화를 내는 순간은 인연에 대한 마지막을 뜻하곤 했다. 그만큼 화라는 감정은 나에게 익숙치 않았다. 혼자일 때에는 잘도 숨겨왔던 내가 나와 기질이 정반대인 아이를 키우며 '화'라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점점 불가능하곤 했다. 나는 그제야 건강하게 화를 내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화'라는 감정을 회피하기만 했었던 나약했던 엄마는 이제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건강한 방법으로 화를 낼 수 있는지를 공부하며 몇 번이고 아이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나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예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서투르고 어색하기만다. 그런 나에게 찾아온 아직은 작고 여리기만 한 이 아이는 그런 나를 엄마로 만들어주기 위해 온 몸으로 악을 쓰며, 애를 많이 쓰고 있다. 그러니 나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 그것도 '건강한 엄마' 말이다.

미래에 또 다른 아이의 부모가 될 이 아이가 떠올리는 엄마라는 기억이 '건강한 엄마'가 될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아이가 아파한 만큼 아주 조금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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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작가 by. 키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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