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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Young Yi May 21. 2017

어반스케쳐스 런던 참가기

여행지의 사람들과 함께 그리는 즐거움과 짜릿함 

1. 어반스케쳐

런던에서 그리기 활동과 만들기 활동을 하겠다고 2달 일정을 잡고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제일 먼저 검색해 본 것 중 하나는 런던에서 열리는 어반스케쳐 일정이었다. 


도시의 모습을 현장에서 그리는 어반스케쳐들이 있다. 여행을 하며 드로잉을 하는 내 취지와 맞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있다는 뜻이다. 


*어반스케쳐스 사이트에는 다음과 같은 모토가 쓰여있다.  

우리는 실내외의 현장에서 직접 보고 그린다.

우리의 드로잉은 여행지나 살고 있는 장소, 주변의 이야기를 담는다. 

우리의 드로잉은 시간과 장소의 기록이다. 우리가 본 장면을 진실하게 그린다.

우리는 어떤 재료라도 사용하며 각자의 개성을 소중히 여긴다.

우리는 서로 격려하며 함께 그린다.

우리는 온라인에서 그림을 공유한다.

우리는 하나씩 그리며 세상을 보여준다.


런던에 도착한 이틀 후, 어반스케쳐스-런던에 참여했다. 어반스케쳐스-런던 홈페이지에서 일정을 미리 확인해 둔 터였다. 2016년 4월 16일, 영국왕립미술원이 있는 벌링턴 하우스. 




2. 벌링턴하우스(Burlington House) 

워털루에 있는 숙소를 출발해서 피카딜리 써커스를 지나 어반스케치 장소에 도착했다. 멋지게 장식된 철문 안으로 들어서면 ㅁ자로 사방이 둘러있는 건물 안쪽에 작은 안마당(courtyard)이 있다. 마당 한켠에 따뜻한 커피와 차를 파는 부스가 있어서 뜨거운 코코아를 주문하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기다렸다. 둘러보니 커다란 가방과 야외용 낚시의자 같은 것을 챙긴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어반스케쳐들. 딱 보니까 알겠네. 


날이 흐려서 좀 우중충했지만, 일반적으로 바깥에서 그림 그릴 때는 땡볕보다는 적당히 흐린 날씨가 훨씬 좋다. 문제는 흐린 날은 추위에 대비해야 한다는 건데, 너무 방심했다. 날씨예보를 보고 그저 우산만 챙겨 온 게 이 날의 실수다. 사실 런던에 오기 전에 이곳 사람들이 '정말 춥다'고 하는게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기는 어려웠다. 런던에서 머물 플랫(flat, 영국의 아파트)을 알아볼 때도 난방 얘기가 참 많이 있길래 난방이 잘 되지 않는 유럽식 건물 내부라서 추운가 보다 했었다. 하지만 실내만이 아니었다. 이날로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추운 런던의 날씨를 제대로 체감했다. 


11시가 되었고 모인 사람들은 약 30명쯤 되어 보였다. 오랫동안 어반스케쳐스-런던 모임을 이끄는 이는 캐더린(KatherineTyrrell)이었는데, 활동이 어려워져서 이번 모임부터는 제임스(Jame Hobbs)가 모임 장이 되었다고 한다. 제임스는 사람들에게 오늘의 일정을 설명해주었다. 2시간 후인 1시에 한 번 모이고, 점심 먹은 후에 다른 곳을 그리고 나서 3시 30분에 다시 모인다. 


이곳 벌링턴하우스(Burlington House)에는 영국왕립미술원(RA, Royal Academy of Arts)이 있다. 다들 이 건물의 안마당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았다. 나도 가운데 조각상 아랫단에 걸터앉아 피카딜리 대로가 내다보이는 곳을 향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내 흐리고 습기가 가득하더니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산을 꺼내어 왼쪽 어깨에 끼우고 계속 그림을 그렸다. 흐얼. 춥다. 너무 춥다. 장갑도 꼈지만 손도 얼고, 숙소에 두고 나온 핫팩이 계속 생각났다. 추울 때 사용하라고 친구가 챙겨준 것이었는데. 흑. 

이 날이 4월 16일이라, 이곳에서 추모 그림도 보냈다. 비와 추위 속에 완성한 그림. 

엄청난 그림실력과 수다실력을 보여주신 아주머니들


3. Lunchtime survivors 

첫 번째 모이는 시간인 1시가 되자 갑자기 해가 잠시 아주 반짝 나왔다.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서른대여섯 명의 어반스케쳐들이 추위를 견디고 살아남았다. 대부분의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서로 안면이 있어 보였고, 좀 젊어 보이는 이들은 처음 혹은 두세 번 참여했다고 한다.   


4. Hatchard Bookstore 

따뜻한 점심으로 몸을 녹인 후에 여기저기 상점들을 구경하다가 Hatchard라는 오래되어 보이는 책방에 들어갔다. 위층에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는 곳보다, 지하층 계단 아래 숨어있는 듯한 이 공간이 아늑했다. 



4. Finish  

다시 모여서 각자 그린 그림들을 펼쳐놓고 구경했다. 서울에서도 종종 야외드로잉 이벤트에 참가하기도 했고, 누구나 각자의 그림이 있는 거라고 나에게도 남에게도 누누이 얘기해왔건만, 일관되지 않고 다양한 기법들과 자유로운 그림들은 충분한 자극이 되었다. 그동안 안주했던 내 그림들에 반성도 했다. 그래. 역시 이런 자극을 위해 이번 여행을 오기로 했지. 미술관에만 걸려있는 작품이 아닌, 영국인들 생활 속의 예술을 경험하고 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살아있는 그림들. 

점심 이후에 돌아간 사람도 있고 이후에 합류한 사람도 있어서 인원에 좀 차이가 나나보다. 어쨌든 마지막에 모인 사람들은 40명이 넘는다. 나도 그간 서울에서 야외드로잉 이벤트에 참여도 했고, 한옥드로잉이나 사생대회 등의 모임도 만들어봤지만 하루에 두 번이나 그림을 그리는 빡센 일정은 생소하다. 이 하루를 온전히 바깥에서 그림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과 함께 해서 즐거웠다. 다들 추운데 고생 많았다. 




5. 카페에서 뒤풀이 


이렇게 오늘의 행사가 끝나는 줄 알았으나...  근처 카페에 차 마시러 몰려 가서 참가자들의 드로잉 노트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의 드로잉 노트를 구경하는 재미는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오늘 현장에서 그린 그림들보다 훨씬 멋진 작품들을 실컷 볼 수 있었다. 막연히 상상했던 것보다 더 다양하고, 자유로웠다. 내 그림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데, 이제 여행 시작이라 새 노트를 가져온 바람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없는 게 아쉽기도 하고 주눅이 들려고도 한다. 


서로 자기소개도 하고 좀 더 얘기 나누다 보니, 이런저런 곳에서 드로잉이나 미술 수업을 하고 있는 이들이 꽤 많았다. 예술대학을 다니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아. 너무 긴장하고 주눅 들지 않아도 되는 건가. 오늘 모임의 장이 되어준 제임스 홉스는 국내에도 번역된 어반스케쳐스 책에도 실려있는 유명한 어반스케쳐였다. 마커펜으로 굵은 선의 그림들을 그리는데 어둡거나 지저분하지 않고 힘 있고 자유롭다. 


여러 가지 자극을 동력으로 삼아, 그동안처럼 되는 만큼만 해보는 것보다, 조금은 더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거침없이 자유롭게, 내 세상을 만들어야겠다고.  


공식 블로그에 올라온 이 날의 후기:  

http://urbansketchers-london.blogspot.kr/2016/04/around-piccadilly-team.html 





6. 전세계 도시에서 열리는 드로잉번개, 어반스케쳐에 참여하기


여러분도 여행하며 그림을 그리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혹은 특별한 여행의 경험을 원한다면, 전세계 도시에서 열리는 어반스케쳐에 참여해봤으면 한다. 혼자 그리는 것도 좋지만 여럿이 직접 보고 기록한 그림들을 서로 공유하는 경험은 짜릿하다. 함께 그리면 더 즐겁다. 

여행지에서 드로잉 이벤트가 열리는지 확인해보면 된다. 구글 사이트에서 'urbansketchers + 가고 싶은 도시'로 검색하면 각 도시의 어반스케쳐 블로그나 커뮤니티가 나온다. 여행 일정에 맞춰 이벤트에 참여하거나, 흥미로운 이벤트가 있다면 여행 일정을 조금 조정해보는건 어떨지. 참가신청을 할 필요도 없고, 만나는 날짜와 시간, 장소를 확인하고 드로잉 도구들을 들고 모이면 된다. 당신의 여행 혹은 여행드로잉의 경험을 더욱 컬러풀하고 입체적으로 만들어줄 계획은, 각 지역별 어반스케치를 검색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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