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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Mar 18. 2024

유튜브를 시작하는 마음

이글이 성지순례 글이 되길 바라며


직장인의 3대 허언이었던가. '퇴사한다!'에 이어 '올해부터 진짜 유튜브 시작한다'라는 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나도 오 년 정도 된 것 같다. 나만의 유튜브를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했던 것이. 실제로 그때 채널명을 정하고 몇 개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금방 포기하고 말았는데 편집이라는 장벽이 생각보다 너무 단단했기 때문이다.


나름 10년 넘게 방송 일을 했던 사람이다. 기획안, 보도자료, 촬영구성안, 편집구성안, 내레이션원고, 자막 등 방송작가의 업무는 다양하지만 결국 글이었다. 하지만 편집실에서 피디와 밤을 새워가며 영상을 뜯어고치는 일도 지겹도록 했다. 대충 어깨 너머 배운 실력으로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역시 앉아서 손가락만 놀리면 되는 글쓰기가 내 천직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유튜브의 꿈은 서서히 내 기억에서 잊혔다. 그러다 작년 말,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나의 다섯 번째 책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가 세상 밖으로 나오고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나의 책을 서점에서 발견했다며 카톡 인증샷을 보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최푸딩 PD. 그녀는 내가 한창 방송 일을 할 때 함께 작업했던 또래 피디로 얼굴을 보지 못한 지 10년이 다 되어 갔다. 내가 책을 낼 때면 가끔 먼저 안부 연락을 주곤 했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오래간만에 출간을 핑계 삼아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유튜브를 해보고 싶은데 마땅한 콘텐츠가 없다며 고심 중이라고 했다. '작가님은 유튜브 생각 없어요?'라는 물음에 '관심은 늘 있는데 편집을 못하겠더라고요.' 하며 과거의 경험을 고백했다. 그랬더니 자신과 함께 유튜브를 해보자는 게 아닌가! 최푸딩이 누구인가, 프로그램 안에서 작가들에게 신뢰를 받는 실력 있는 PD 아니었던가.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분야는 나의 캐릭터를 살려 글쓰기와 독서로 정했다. 촬영 장소는 우리 집. 그가 시간씩 걸려 오는 만큼, 최대한 분량을 뽑아야 했다. 나는 괜히 허세를 부리며 '그날 5편 찍읍시다!'고, 는 '난 괜찮은데 작가님이 힘들걸?' 하면서 씨익 웃다.


마음먹었을 때 바로 시작하지 않으면 변덕이라는 놈이 '이때다' 싶어 고개를 내미는 것을 안다. 다음 원고 수정도 잠시 미뤄둔 채 유튜브 원고를 쓰는 집중했다. 주제나 키워드만 잡아놓고 떠들어대기엔 내공이 부족하니까. 거의 방송대본처럼 문장으로 썼다. 오래간만에 방송 일을 하는 것처럼 흥분됐다. 매일 혼자서만 일하다가 얼마만의 협업인가. 가성비 조명과 트라이포드, 오디오 장비도 구매했다. 드디어 촬영 날.


나는 준비한 원고를 바탕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강의를 풀어냈다. 중간에 옷도 갈아입으며 나름 출연자의 예의를 갖췄다. 기가 막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출연자를 챙기고 원고를 쓰던 사람이, 몇 년 후 스스로 앞에 나와 촬영을 하다니. 아는 사람 앞에서 정색하고 떠들어대려니 말도 못하게 쑥스러웠지만 철판을 깔아야 한다.


너무 공들여서 하면 지치고, 그러면 오래 하지 못하니 가볍게 하자고 했던 우리. 막상 유튜브를 시작하자 뜻대로 되지 않았다. 촬영 후 편집이며 섬네일, 상세정보, 자막 하나하나 의논하느라 밤낮 할 것 없이 카톡을 나누기 시작했다. 조금씩 피곤해졌다. '아, 이 기분. 전생에서 느껴본 것 같은데. 내가 왜 방송을 그만뒀더라...'


첫 번째 영상을 올리고 하루 동안 구독자수 7명이 늘었다. 물론 지인이다. 갈 길이 멀다. 올해 안에 구독자 수 1,000명을 채우는 것이 목표다. 물론 그러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제발 중도 포기하지 않기를. 언제 봐도 적응이 되는 얼굴과 목소리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나는 왜 사서 고생, 유튜브를 하려는 것일까.


1. 안 해본 것에 미련

해봐야지, 언젠가는 꼭 해봐야지 했던 유튜브. 그것을 함께하자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여기서 시작하지 않으면 내가 그동안 유튜브를 하고 싶다고 말한 것은 모두 거짓말이 된다. 앞으로도 도전할 일이 없을 것이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2. 독자와의 만남 / 책 홍보

책을 다섯 권 냈고, 앞으로도 계속 면서 살게 될 것 같다. 독자보다 시청자의 수가 훨씬 많은 만큼, 내가 책에 썼던 지식과 정보를 영상으로도 제작해 더 많은 사람에게 닿게 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어? 글쓰기가 나랑 그렇게 먼 이야기가 아니구나'하고 깨닫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책이라는 매체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또, 내 책을 좋아하는 기존 독자와도 좀 더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싶다. 예를 들어, 댓글로 질문을 주고받는다거나, 원하는 영상을 만들어보는 방식으로. 신간이 나왔을 때는 가장 먼저 내 채널에 홍보도 하고 싶다.  


3. 말하기 훈련

남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을 꺼렸는데, 책을 낸 뒤로 강연을 다니면서 제법 말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 부족함을 알고 있다. 반복적으로 쓰는 단어불분명한 발음, 불편해 보이는 표정과 제스처를 유튜브를 하면서 고쳐 보고 싶다. 그러면 평소 말을 할 때도 더 조리 있게 하게 될 것이고, 나아가 글 쓰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말과 글은 결국 연결돼 있다.



자, 이렇게 도망치지 못하도록 브런치 글에 선언까지 했으니, 좋댓구알(좋아요 댓글 구독 알림) 좀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채널명이 뭐냐고요? 안 알랴줌.




매력적인 브런치작가님들과 함께 꾸려왔던 공동매거진 <일상을 살피는 마음> 연재는 이번주로 마무리합니다. 새해 첫날 시작해 어느덧 봄이 문 턱까지 찾아왔네요. 저희 여섯의 글이 독자님들의 일상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작은 불씨가 되었길 바라며. 그동안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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