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났을 때 평소와 다른 낯선 기운을 느낄 때가 있다. 매일 똑같은 침실에서 자는데도 눈을 뜨자마자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하는 생각이 화들짝 들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생각해 내려 애써야 하는 그런 때 말이다. 3월은 유독 그런 날이 많은 달이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온몸의 긴장이 한 번에 풀리면서 옷도 못 갈아입고 침대에 쓰러진다.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한 시간쯤 뒤에 눈을 뜬다. 출근 시간인 줄 알고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다가 아직 저녁인 걸 확인하고 옅은 한숨을 내쉰다. 이렇게 2주를 보냈더니 어느새 3월 중순, 이쯤 되면 적응할 법도 한데 여전히 몸은 천근만근에 머리는 깨질 듯 아프다. 피부는 푸석하고 기분은 가라앉는다. 새 학기 증후군은 아이들에게만 찾아오는 게 아닌가 보다.
우리 집 네 식구는 모두 같은 날 새 학기를 맞이했다. 애들은 애들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긴 겨울방학을 끝내고 맞이한 새 학기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럴 때는 엄마 아빠가 모두 교사인 게 아이들한테 미안하기도 하다. 아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더 신경 써주고 싶은데, 엄마 아빠도 바빠서 평소보다 소홀해지기 때문이다. 오늘도 유치원에서 대출한 도서가 연체된 걸 뒤늦게 발견하고 가방에 넣어줬다. 미안한 마음을 길게 느낄 겨를도 없다. 그럴 시간에 계획서 하나라도 더 써야 하기 때문이다.
평생을 학교만 다녔는데 아직도 새 학기만 되면 몸이 힘들다. 이 정도 겪었으면 자율신경계든 뭐든 누구라도 나서서 3월에는 조금 더 강한 몸이 되도록 준비해놔야 하는 거 아닐까? 덜 바쁠 때 체력을 비축해 뒀다가 이럴 때 급하게 몰아 쓸 수는 없는 걸까? 10년을 해 온 일인데도 겨울 방학만 지나면 다시 적응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몸뚱이가 하찮게 느껴진다.
올해는 그동안 내가 맡은 학급 중에서 가장 학생수가 적은 반을 맡았다. 그런데도 이제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지 오늘도 아이 이름을 잘 못 불렀다.
"시우야~"
"저는 지운데요."
"아 맞다. 시우랑 지우랑 이름이 비슷해서 헷갈렸어. 미안해 시우야."
"저는 지우라고요!!"
"아 맞다. 진짜 미안해."
언제쯤 체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언제쯤 나의 총명함을 되찾을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푹 쉬는데 6살 둘째도 나를 따라 한숨을 푹푹 쉰다.
"엄마, 형님 반에 가니까 해야 되는 게 너무 많아서 힘들어!"
"뭘 해야 하는데?"
"말할 때 손들고 말해야 하고, 밥 먹기 전에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해."
"5살 때는 그런 거 안 했어?"
"응, 안 했어. 형님 반 너무 어려워."
한숨의 무게에 어울리지 않게 작고 하찮은 힘듦을 안고 있는 둘째가 귀엽다. 어쩌면 나의 고충도 누군가에겐 보잘것없어 보이겠지. 얼른 커피를 마신다. 뭐라도 몸에 넣어서 에너지 게이지를 채워야 한다. 오늘도 나의 목표는 나의 새 학기 증후군을 숨기고 아이들의 새 학기 적응을 돕는 것. 시우와 지우의 얼굴을 한 번 더 떠올려본다. 오늘은 제발 헷갈리지 않길! 출근하는 발걸음에 리듬을 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