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로서(박세미, 『내가 나일 확률』)
마주앉은 사람이 내게 끝없이 질문을 합니다 대답을 하면 할수록 내가 지워지는 줄도 모르고
뒤에 있는 사람이 내게 끝없이 용기를 줍니다 주먹을 쥘 때마다 내 두 눈이 감기는 줄도 모르고
몰려드는 구경꾼들
그들 한가운데 나는 속이 비치는
동물
그들은 각자 스케치북을 꺼내어 드로잉을 시작합니다
이제 나는 관찰 대상입니다
해안가로 떠밀려온 돌고래로서
죽은 새끼를 안은 채 영영 잠이 든 침팬지로서
가끔 사람 행세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은 나를 그린다면서 자신들을 그려놓았습니다 나는 잠시 , 내가 선택한 것이 죽음은 아니었는지 생각합니다
벽과 종이와 액자로서
태어납니다 서로에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문학동네 뉴스레터를 구독 중이다. 오늘은 백인선 시인이 큐레이팅한 시를 보내주었다. 강조한 부분은 이 시에서 마음에 든 구절이다. 상대에게 하는 질문들 -예를 들면, 어디 사세요? 나이는 어떻게 되시나요? 직업은 뭐예요? 같은-은 정말 상대가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 아니다. 질문을 함으로써 이 사람이 '내 수준'에 맞는지-혹은 내가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인지-를 가늠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질문에 답을 할수록 답변자의 모습은 지워진다.
용기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업에 종사하거나, 문과나 이과처럼 생각의 체계가 다를 때. 그 사람은 분명 한국말을 하지만 알아듣기 어려울 때. 우리는 보통 ㅎㅎ 힘내! 화이팅~! 이라는 말을 한다.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모르고, 모르고 싶을 때 화이팅이라 말한다. 이 단어를 내뱉음으로써 마음의 짐을 덜고, 상대방과의 대화를 끝낼 수 있다. 말을 할수록 단절될 수밖에 없다.
영원한 관찰 대상에서 벗어나 진짜 '나'는 어디서 찾을 수 있나. 어빙 고프먼은 "얼굴은 만남을 구성하는 사건들의 흐름 속에 퍼져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삶은 연극과 같으며, 우리는 즉흥 연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인격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현상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를 연기하며, 심지어 일기를 쓸 때도 그러기 때문에, 진정한 우리 자신이 어떠한지 결코 알 수 없다."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pp.87-89) 빛을 투과시키는 프리즘처럼, 나는 각자의 시선을 투과해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려지지만, 그 그림은 그들 자신이다.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서 자신을 찾는다. 우리는 서로에게 벗어나지 않는다. 모호한 상을 더듬거리며 매 순간 새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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