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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Dec 06. 2022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힘

 “주말에 뭐 하세요?”

K-직장인의 금요일 루틴이죠. 매번 돌아오는 주말에, 매번 설레 하며 주말 계획을 공유합니다. 지난달엔 단풍이 핫했습니다. 이번 주는 진짜 단풍 마지막 일 것 같다고. 등산, 캠핑 스폿을 공유했습니다. 다들 산으로 떠날 때, 전 동네에 남았습니다. 왜냐고요? 저희 동네 자체가 단풍 맛집이거든요.



 겨름의 사이에 있던 11월의 셋째 주말. 오랜만에 홀로 주말을 보냈습니다. 집안일을 끝내고 나니, 오후 3시. 창 밖을 보니 집에만 있기 아까운 날씨더라고요. 산책 겸 독서하러 동네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생각보다 날씨가 온화하더라고요. 단풍도 다 들어서 예뻤고요. 목적지를 바꿔 근처 공원에 갔습니다. 그 당시 읽고 있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한 권과 맥북 에어. 그리고 커피가 담긴 보온병을 들고서요. 고요하니 좋더라고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었습니다.


 직장에선 늘 바쁘잖아요. 일이 바쁘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겠어요. 잠깐 물 마시고, 밥 먹고 왔더니 벌써 퇴근시간이 될 때가 많아요. 하지만, 일이 없는 날에도 바쁜 척을 해야 하죠. 안 그러면 눈치 보이더라고요. 지하철에서도 계속 뭔가를 하고 있어요.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아님 인스타그램을 하거나. 집에 와서도 저녁 먹고, 설거지하고, 빨래를 개고. 쉴 틈 없이 하루를 보냈는데, 한 게 없다고 말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단풍잎을 자세하게 보는 것도, 늦가을 바람을 느껴보는 것도. 평소엔 생각 못했던 일입니다. 출근하랴 집에 돌아오랴, 뭐 그리 바쁘게 살았는지.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 노부부가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점점 붉어져가는 하늘을 바라보기. 불안하고, 죄책감이 들기도 했어요. ‘얼마 남지 않은 주말인데, 글 쓰고 책도 읽어야 하는데. 이렇게 멍 때릴 수만은 없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두어 시간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태껏 시간을 어떻게 쪼개서 쓸 것인지만 생각했구나. 나 자신을 자본주의적으로 바라봤구나. 하는 것이요. 자본주의 사회에선 모든 게 돈입니다. 시간도, 제 자신도요.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 돈을 벌 수 있어요.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비 생산적인 것. 돈 벌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죠. 돈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돈 보다 더 중요한 것들도 있어요. 이를테면, ‘지금’을 충실하게 사는 기분, 노을질 때의 하늘색, 즐거운 목소리들. 돈으로 살 수 없고, 재현할 수도 없는 것들이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정신이 맑아졌어요. 이전엔 과식한 상태처럼 마음이 더부룩하고, 꽉 차있었거든요. 위장 건강을 위해 종종 간헐적 단식을 하는 것처럼, 정신에도 써먹어 볼까 봐요. 이름하야 간헐적 단’상’.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이거 해야 하는데, 저거 해야 하는데. 하며 저 자신에게 주는 업무들을요. 그럼 명상을 하면 되잖아?라고 말하신 분도 있겠죠? 전.. 명상 타입은 아닌 것 같습니다. 명상할 때도 계속 딴생각이 나거든요. 근데, 단풍 보러 간 공원에선 다른 생각이 안 났어요. 모든 감각이 주변의 풍경을 흡수해서 그런 것 같아요. 오히려 ‘지금 여기에 존재함’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단풍 속에 파묻혀 일하러 갔다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변화했어요. 그날 느낀 것이 무엇인지, 그땐 글로 쓰기 어려웠는데. 한 달이 지나서야 풀어낼 수 있게 되었네요. 그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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