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탈리 Aug 06. 2023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나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일요일. 남편은 촬영하러 간다. 새벽 5시에 나가야 하는 그를, 오랜만에 마중하기로 했다. 그전에 남편을 재워야 한다. 남편은 완벽주의자다. 촬영하며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을 전부 생각한다. 그래야 대처할 수 있으니까.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밤 9시부터 남편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내 자러 간다며 안방 문을 닫았다. 서재에서 책을 읽었다. 한 시간이 지났다. 안방에 가보니, 남편이 핸드폰을 붙들고 있었다. 잠이 안 올 땐 이게 최고란다. 그의 손에서 핸드폰을 가져가 충전기에 꽂았다. 방의 조명을 끄고, 인사할 겸 그의 손을 잡았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그의 낮은 체온. 이 사람, 불안하구나. 그의 옆에 누웠다. 토닥토닥, 서로의 체온으로 몸이 따뜻해질 때까지. 숨결이 같아질 때까지. 남편 곁에 있었다.


 어떤 불안은 살을 맞대는 것만으로 해소된다. 아직도 기억하는 기사가 있다. 요지는 혼자 살면 외로운 때가 많고, 외로움이 자주 느껴지면 뇌가 변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친구를 자주 만나는 게 좋다고 했다. 남편에게 말했더니 진짜란다. 혼자 살 때 많이 외로웠다고 했다. 외로움, 불안 등의 감정과 엮이는 동사는 대게 차갑다. 예를 들면, 외로움에 젖다, 불안에 떨다 같은 동사들. 이 단어들을 유심히 보면, 사람에겐 따뜻함이 필요하구나.라고 느껴진다. 그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맞댄 팔이 뜨끈해서 나도 잠깐 잠이 들었다.


 남편이 움찔했다. 내 다리가 남편의 다리 위에 올라와 있었다. 워낙 자유분방하게 자는지라, 남편의 컨디션을 위해 슬며시 안방에서 나와 서재에서 잠을 청했다. 남편의 체온이 남아있던 덕인지, 오랜만에 자정 전에 잠들었다. 꿈인지도 몰랐던 꿈에선 내가 남편을 마중하고 있었다. 계속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꿈인가? 하고 바로 눈을 떴다. 꿈이었다. 방문을 벌컥 열었다. 남편이 냉장고에서 샐러드를 꺼내고 있었다. 깜짝 놀란 눈치였다. 나 때문에 깼냐고 남편이 물었다. 자기 배웅하려고 깼지. 졸린 눈으로 남편 앞에 앉았다. 그가 허겁지겁 샐러드를 먹길래 냉장고에서 아몬드 브리즈를 꺼내 건넸다. 그는 그 바쁜 와중에도 설거지까지 끝내고 나갔다. 고마운 사람. 남편이 집을 나서자, 잠이 다 깨버렸다.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마시고, 발코니에 널어놨던 빨래를 걷고, 갰다. 여름의 습기에도 적절히 말라있었다. 너무 바삭하지도, 너무 촉촉하지도 않은. 딱 좋은 촉감이었다. LG전자의 휘센 오브제 컬렉션 제습기를 산 덕분이다. 자정에 꺼지도록 설정해놓았지만, 전날 밤 10시까지도 빨래가 축축해서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제습기 물통엔 물이 80% 정도 차 있었다. 물을 비우고 물통의 입구를 열어놓았다. 갓 깨어나 강렬하게 빛나는 햇빛에 구석구석 잘 말랐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이 글을 쓰는 사이에 베란다 창문으로 비치는 하늘색이 짙은 어둠이었다, 옅은 청색이었다, 해가 뜨고, 흰색이 됐다. 새벽 5시 55분. 지금쯤 남편은 촬영장에 도착했을 것이다. 집안에, 피부에, 습기가 들러붙는다. 몸을 움직이고, 조명 아래서 글 쓰는 탓인지 덥다. 에어컨을 켜는 대신 선풍기 바람을 쐰다. 회전 버튼을 눌렀더니, 자연 바람 같다. 남편은 열이 많아선지, 미국에 오래 살아선지 에어컨 바람을 좋아한다. 그와 있을 땐 그에게 맞춘다. 시원한 건 매한가지다.


 오늘은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켜놓을 생각이다. 한낮이 되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지만. 글을 퇴고하고 살을 붙이는 사이 새벽 6시 반이 지났다. 매미가 대차게 운다. 이 시간쯤 되면 졸릴 줄 알았는데. 정신이 또렷하다. 정말 푹 잤나 보다. 계획한 대로, 스트레칭을 하고 도서관에 가고 스터디 카페도 가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인지도 vs 혜택. 마지막에 누가 웃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