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읍 나무 위 오두막 하루 살이
평상시의 나의 여행은 뚜벅이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한 곳, 혹은 두 곳 정도의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방식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맛집 혹은 둘레길을 이용해서 여행의 밀도를 높인다. 운이 좋다면,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달랐다.
이번 여행지는 평창군의 평창읍이었다. 평소에 1년에 2~3번씩은 꼭 가는 곳이 평창이었지만, 평창의 남쪽 지역을 가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곳을 2023년 마지막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는 평창군에서 지역 탐방하는 프로그램에 선택되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평창의 남쪽에 눈길을 주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생각보다 너무나 할 것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산은 많이 있었지만, 등산로가 확실하게 확보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 외에 가볼 만한 관광지는 뚜벅이로 가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들이었다. 일단 대중교통들이 코로나 이후로 많이 줄었고, 평창읍과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새로운 여행 방식을 선택하 만드는 기회가 되었다.
숙소 예약 사이트들을 찾아보다가 나무 위에 오두막이 있는 펜션이 눈에 띄었다. 외국 영화에 나왔던 나무 위의 오두막 집들이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이런 집에서 생활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어린 마음이 이번 여행을 하게 된 가장 큰 동기가 되었다. 그래서 바로 호스트에게 물어보고 예약을 진행했다.
평창 터미널에 도착해, 그 주위를 가볍게 돌아봤다 그리고 평창 전통시장에서 메밀 옹심이 메밀 칼국수를 먹고, 체크인을 하기 위해서 택시를 이용했다. 내가 가려고 하는 숙소는 산의 중턱에 있기 때문에, 걸어서 간다면 상당한 체력을 담보해야 했다. 택시를 타고 20분쯤을 갔던 것 같다. 생각보다 올라가는 길이 미로 같았다. 평창에서 평생을 사신 분도 길을 잘 못 들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도착했다.
나의 나무 위 오두막은 산 중턱 그리고 숲 속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아마 내가 지금까지 방문해 본 숙소 중에서 가장 오지에 위치한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숲 내음을 가득 채운 공기와 산과 하늘이 맞닿은 뷰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간단하게 호스트님에게 인사를 하고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정말 사진에서 보듯이 나무에 걸쳐서 지어진 집이었다.
나무로 만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아담한 사이즈의 방이 나왔다. 서 있을 수 없고, 누워서 천장에 손을 뻗으면 닿을 것 만 같은 공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안락했고, 따뜻하게 데워진 온수 매트 덕분에 훈훈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창밖의 뷰도 조금 전에 봤던 뷰와 같이 아주 훌륭했다. 짐을 풀고 잠시 누워있었다. 제일 처음으로 드는 생각은 평소의 여행 버릇 때문인지 '뭘 하지?'였다.
다시 읍내로 나갈 수도 없고, 핸드폰을 보고 있자니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까지 왔는데 말이다. 그런데 계속 생각을 하다 보니 생각의 움직임이 어느 순간 멈춰 있었다. 정말 나무 위의 오두막 안에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파리의 왱왱거림 때문에 정신을 차렸는데, 1시간가량을 있었다. 무념에서 깨어나서 펜션에 핀란드 사우나가 있어 준비를 부탁드렸다. 준비 시간이 필요해 다시 햇볕을 쫴며 오두막의 문에 걸터앉아 있었다. 체감으로는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45분가량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사우나를 하기 위해서 움직일 때에는 머릿속이 평창의 가을이 끝나가는 바람 같이 시원해졌다. 그리고 다른 잡념들이 끼어들 자리가 없는 것 같은 밀도와 안정감이 형성되었다. 어떻게 보면 소중한 여행에서 약 2시간을 멍하니 보낸 건데, 제법 행복했다. 끊임없이 다양한 생각이 오가는 도시 생활과는 전혀 다른 2시간 이기도 했다. 매일 이런 시간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필요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준비되어 있는 핀란드 사우나로 갔다. 항상 영상 매체에서 핀란드 사우나라고 해서 보면 강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사우나는 산 중턱의 숲 속 한가운데 있으니, 뭔가 또 색달랐다. 강의 파란색 배경 대신에, 어두운 초록색과 지고 있는 노을의 붉은색 거기에 파란색과 보라색 어디 사이의 색깔까지... 다채로운 이 모든 것들과 순간이 새로웠다.
사우나는 건식과 습식을 오갔다. 사우나 내부의 온도를 높이고 싶으면 난로 위의 돌에 물을 조금 뿌리면 수증기로 바뀐다. 그리고 그 수증기의 온도가 양모 이불로 덮듯이 따스하게 나를 덮어준다. 30분간 그렇게 사우나를 즐기다, 핀란드 사우나의 꽃인 냉탕으로 향했다. 아쉽게도 냉탕은 없었지만, 차가운 물로 냉수마찰을 하니 척추 안 쪽가지 신경들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아주 짜맀했다!(그렇게 1시간 30분 총 3세트를 했다.)
마치 운동하듯이 시간을 보냈더니 허기가 졌다. 이런 여행의 마지막은 아무래도 바비큐가 아닐까? 미리 준비한 고기 700g 정도를 아주 푸짐하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러 명과 같이 먹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구워야 했고, 먹어야 했고, 마시기도 해야 했다. 중간중간 고기가 타지 않게 불 조절도 해야 했다. 오늘 유일하게 매우 바쁘게 보냈던 순간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이날 유일하게 계획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별을 보는 것. 10월 초에 강화도로 여행을 갔는데, 그 작은 강화읍의 불빛이 카메라에 담으니 달빛만큼 밝았다. 그래서 오늘 나의 기원을 담은 날씨와 높은 고도가 딱 맞아떨어져 9시가 넘어서부터는 별사진 찍기에 돌입했다.
밝은 단렌즈를 준비하고, 카메라와 핸드폰을 연결했다. 오늘의 타깃은 북두칠성. 날씨가 좋아서 아주 명확하게 나의 눈에 담겼다. 그렇다고 카메라에 담길지는 미지수이다. 설정을 아주 야무지게 세팅해 줘야만 나의 작은 가성비 카메라로 담을 수 있었다. 세팅을 바꾸고, 장노출로 30초 정도를 기다리기를 몇 번을 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제법 행복했다.
여행을 다녀오고 글을 쓰니 이번 여행은 주말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말의 일상
아침에 늦잠을 자고 돌아다니다가, 점심을 먹는다. 점심은 때때로 아침이 되기도 한다. 보통 주말을 맞이하는 금요일에는 혼자서라도 약간의 취기를 더하고 싶다. 그래서 주말의 아점은 보통 뜨끈한 국물이 있는 것이 좋다. 그렇게 집도 뒤적뒤적, 컴퓨터도 뒤적뒤적 하다보면 조금 배가 고프다. 그냥 집에 있는 토마토나 줏어 먹고 하루 견과를 좀 씹어 본다. 허기가 살짝 줄었을 즘 저녁을 생각하니 그래도 운동은 좀 다녀와야 겠다. 후끈하게 몸을 웜업하고, 열심히 쇠질을 했다. 그리고 코가 애지게 추운 길거리를 지나 집으로 돌아온다. 바로 샤워를 즐긴다. 저녁을 먹을 생각에 절로 기분이 좋아 콧노래가 슬며시 삐져나온다.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바로 저녁 제조에 들어간다. 간단하다. 고기와 버섯 그리고 토마토. 요즘 키토제닉에 빠져서 열심히 지켜보려 한다. 예능을 틀어놓고, 야무지게 입을 놀려본다. 그래야 저녁에 야식을 피할 수 있다. 다 먹고 나면 치워야하는데, 치우지 않고 싱크대 위에 올려놓는 습관은 아직 고치질 못했다. 배도 부르니 멍하니 벽지를 본다. 그러다 뒤로 돌면 샤시에 붙여놓은 고래, 센트럴파크 그리고 이터널 선샤인의 포스터를 또 멍하니 바라본다. 저기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든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잘 낭비했다는 생각에 클래스 101의 수업을 살며시 듣다가 졸려오면 잠을 청한다.
그냥 정말 돌아다니고, 먹고, 잠시 멍하다 또 먹고 내일 집에가서 뭐히지 생각하는 여행이다. 그리고 '꼭 이런 특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가지 않아도, 우리 일상도 제법 특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환경이기는 하지만, 결국 살아가는 형식의 맥락은 제법 비슷하다. 조금만 더 주위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