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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이 아빠 May 16. 2022

 해외에서 일해보기  #1-1

# WWOOFER #오스트리아 #외국인노동자

X세대들이 대학에 가면 누구나 해보고싶었던 것이 있다. 

바로 '유럽 배낭여행' 


1996년 대학 신입생이 된 후 나도 그 누구나 해보고싶어하던 배낭여행을 떴났다. 

남자는 군필을 해야 해서 2001년 3월에 제대를 하고 두 달 뒤 5월의 이였다.  


배낭여행을 떠나자니 돈이 많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힘들게 해서 돈을 많이 모은 것도 아니고

부모님께 손 벌릴만 한 집안도 아니었다. 하지만 남들 다하는 대학생활의 로망

'배낭여행'은 가고 싶었다. 


그 시절 배낭여행의 스테레오 타입은 

- 유럽 항공권(최대한 저가)+유레일패스+호스텔 

- 서유럽 4개국 ~ 5개국 29~30일 여행

아직도 많은 젊은 배낭여행자들이 추구하는 코스이다.

아시아의 한편에서 유럽을 간다는 것이 지금보다는 더 비싸고 어려운 때라

한 번에 많은 곳을 둘러보고 싶어 하는 맘으로 야간열차에서 잠을 자고 최대한 아껴가면서

여행하는 게 트렌드였다. 


나도 거기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자금이 넉넉지 않았다. 

제대를 일 년여 앞둔 시점에서 생각을 해보고 알아보니 해외에서 일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이 해외생활을 경험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워킹홀리데이'라고 생각한다. 

워킹홀리데이가 가장 흔히 가는 방법이고 그 외에 몇 가지 더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공동 마을에서 일을 하는 '키부츠', 유기농 농장을 도와주는 '우퍼' 등이 그것이었다. 

키부츠에서 일을 하면 돈은 많이 벌 수 있지만 고된 노동으로 지친다는 말을 들었었다. 


주된 목적이 여행과 현지 체험이라는 관점에서는 워킹홀리데이나 키부츠보다는 

'우프'WWOOF' 프로그램이 적합할 것 같았다. 

현지인들과 함께 살면서 그 나라를 좀 더 깊이 알 수 있다는 장점과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4시간이라는 게 매력적이었다. 

단, 숙식을 제공받고 현지인과 함께 사는 조건으로 노동에 대한 급여는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현지에서 돈을 벌려고 가는 게 목적이 아닌 이상 돈보다는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오스트리아


그렇게 알아보던 중 우퍼를 모집하는 곳은 유럽쪽, 캐나다, 호주 이렇게 3곳에서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유럽을 가고싶어서 오스트리아쪽에 문의했고 운좋게 오트리아(Austria), 빈 근교 어느 마을에서 나를 받아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일이 이렇게 풀리는구나 희망에 차서 여행 계획을 세웠다. 

그때 계획은 오스트리아 시골에서 한 달여 생활하로 북쪽 체코 그리고 시계방향으로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를 여행할 계획이었다. 다들 가는 서유럽은 여행경비가 도저히 예산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겸사겸사 남들 안 가는데 가보고 싶다는 마음도 한몫 했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유럽배낭여행' 준비코스의 필수인 유레일 패스도, 일정별 숙소도 정하지 않고 론리플레닛 동유럽 한권이 여행준비의 대부분이였다.  군대에서 나름 영어도 익혔고(카투사로 근무했음), 더 큰 배움은 외국인들하고 대면하는데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었다. 생 양아치 같은 어린 미군부터 배운 티 팍팍 나는 나이 많은 장교까지 다양한 서양사람들하고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고 싸움도 했던 터라 해외에 나가서 생활하는데 전혀 두려움이 없던 터였다.  이점이 카투사로 복무한 가장큰 장점이였다. 여행준비도 딱히 할 필요가 없었던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2001년 5월 제대 두 달여 만에 오스트리아행 비행기를 탔다. 처음 나가는 해외여행이었다. 

중국을 거쳐 스위스를 거쳐 오스트리아로 가는 2번 경유하는 항공편이었다.  

저렴했다. 


비행기 안에서 3명의 한국 사람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었다. 다들 유럽 배낭여행을 가는 길이였고 

오스트리아로 처음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이 두 명 있었기에 무척 반가웠다, 비록 같이 다닐 동행은 아니지만. 

짧게나마 오스트리아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나더러 유럽에 많이 다녀봤냐라는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처음인데 무슨 소린가 했더니, 마치 현지를 잘 아는 것처럼 말을 해서 그렇다고 했다. 

지금 나의 직업은 스페인 여행 가이드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잘 아는 척하면서 말하는 능력이 조금 있었구나 생각하게 된다. 


저녁 9시경 비엔나에 도착해서 짐을 기다리는데 내 짐이 나오지를 않는다. 다른 두 명은 벌써 떠났고 나만 혼자 짐을 다리면서 살짝 불안함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짐이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밖에서는 민박집 사장님이 부탁한 픽업 서비스를 위해 일찍부터 나를 기다라고 계셨다.  자초지종을 말하고 비엔나의 숙소로 향했다. 

비엔나 시내 거리 저녁 풍경

처음 본 유럽의 밤은 조용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유럽은 스페인 빼고 밤에는 조용하다. 너무 익숙한 한국의 사과는 정말 다른 풍경에 낯설었다. 

유럽 배낭여행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한인민박'에 처음 도착했다. 흔히 말하는 이역만리 외국 땅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에 묵으니 말할 수 없는 오묘한 편안함과 긴장감이 공존했다.  

다른 여행객들은 다들 흔히 말하는 배낭여행 코스를 열심히 준비하고 서로서로 공유했다. 거기에 나는 참여할 수가 없었다. 참여하고 싶어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난 여기서 한달 살거고 더군다나 어느 시골마을에서 일을 할거기 때문에 그들과는 다른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분명 신기해서 이야기 꽃을 피웠을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낮선 사람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는 성격이 못된다.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보수적익 소심한 사람인데 낮선 사람들을 상대하고 말을 하는 가이드를 하고 있다.  가이드라는 가면을 쓰면 나도 모르게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이지만 그 가면을 벗고나면 대인관계에 있어 누구보다 소극적인 사람이다. 


앞으로의 유럽생활이 어떻게 될런지 궁금했다. 민박집에선 총 4박을 머물 계획이였다. 

첫날은 도착, 둘째날은 비엔나 시내를 둘러보았고 셋째날에는 비엔나 어디인가에서 열리는 전통시장(어딘지 기억도 나지않는)에 가야했다. 거기서 우프 담당자와 함께 내가 머물 농장 주인을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짐을싸 농장으로 가야했다. 


지금까지가 2003년 지금으로부터 20년 가까이나 된 나의 첫번째 유럽 여행 첫날의 기억이였다. 

세월이 흐르고 그때의 사진(그당시에는 디지털이 없었음)이 어디있는지 찾을 수 없지만 그당시의 기억을 다시금 되세겨 보고자 한다. 


다음편에는 '발터'의 집으로 이동한 뒤 진짜 시골 농장에서 격은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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