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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아웃라이어

묘한 위안이 되었던 책

  아웃라이어에 대해서 나는 솔직히 오해하고 있었다. 만 시간 동안 노력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이 주된 내용일줄 알았다. 최근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마음이 가득한 상태이므로,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만 시간 노력을 해보겠다는 일종의 나의 의지의 표상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책은 운과 타이밍, 태생적인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제일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 중 하나는 미국의 어느 변호사 부자의 이야기였다. 아버지도 변호사이고 아들도 변호사인데, 아버지는 한창 일을 시작할 무렵이 미국 대공황 시기라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였음에도 수가가 낮아 경제적 여유가 전혀 없었던 반면에, 아들은 운때가 잘 맞아 양질의 교육 혜택도 받을 수 있었고 변호사로서도 블루오션 공략이 더 쉬운 시기라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기가 수월했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나는 이십대에 내가 들인 노력에 비해 사회적인 보상이 너무 적었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었다. 내가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도중에 로스쿨이 도입되어, 나는 사법연수생과 로스쿨1기가 함께 나온 첫 기수였다. 게다가 연수생도 내 기수가 사상 최대인원이었던 탓에, 내가 변호사시장에 나온 해에 거의 2,000명이 한꺼번에 변호사 시장에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전년도까지만 해도 한해에 나오는 연수생 수는 많아야 1,000명 정도였을 것이다. 두 배가 넘는 수가 갑자기 나오자 연수원 수료식까지 직장을 잡지 못한 동기들도 많았고 관련 기사들도 쏟아졌다. 수료식이 코앞인데 취업을 못한 연수생들이 많다는 기사였다. 나도 석달을 인턴처럼 일하기로 하고 가까스로 전관 사무실에 취업을 했다. 그 뒤에 들어간 사내변호사도 변호사 대우가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나의 노력이 이전 기수 사람들에 비해 모자라지 않았을 것임에도 단지 운이 나빴다는 생각이 들자 솔직히 억울했다. 30대 초반에는 억울함이 컸고, 30대 중반이 되면서 시기적인 불운을 극복해나가는 동기들이 생겨나자 나에 대한 열패감을 느꼈다. 지금도 억울함과 열패감이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다. 내 안에는 여전히 그런 감정들이 있다. 하지만 40대가 되면서 조금 편해졌다. 뭐 대단한 일을 하지 않으면 어때,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자, 이런 식으로 생각이 변화하게 된 것이다. 포기도 아니고 결연한 의지도 아니고 나로서는 행복해지기 위한 타협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이런 나에게 '아웃라이어'는 묘한 위안을 주었다. 내가 느낀 젊은 날의 억울함이 나만의 것이 아니고, 또 내가 더 잘해내지 못한 것, 내가 더 앞에 서서 쟁취하지 못한 것이 나의 부족함이 아니고, 그냥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구나, 라고 생각하게 해주었다. 운명이라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1, 2월 생들 중에 운동선수가 많다는 내용도 있었는데, 대체로 출생년도 단위로 선수를 모집하기 때문에, 1, 2월 생들이 유, 청소년기의 선수 선발에서 제일 신체발달이 빠른 이들이라 이들이 선수로 선발될 확률이 높고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들이 만 시간 동안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12월생은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인데, 태어나는 시기를 고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노력과 상관없이 주어지는 조건이 있고, 그 조건이 한 사람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면 맥이 빠지는 일인데, 또 어떻게 보면 위로가 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일은 생각보다 세상에 많아. 그러니 상심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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