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고 비효율적이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좋았던 옛날
에버랜드에서 인기 놀이기구를 타려면 어플에서 '스마트줄서기'라는 것을 해야 한다. 입장과 동시에 에버랜드 어플에서 줄서기를 하면 나중에 언제 오라고 알림을 준다. 그러면 그 사이에 다른 곁가지 놀이기구를 하나 타고 인기 놀이기구로 이동하면 되는 것이다.
작년엔가 이런 어플의 존재를 모르고 에버랜드를 갔다가 호되게 당한 적이 있다. 무식하고 용감했다. 그때는 레나찬스라는 것을 모아야 동물쇼도 볼 수 있어서(지금은 바뀐것 같다), 퍼레이드를 보는 것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퍼레이드만 보고, 집에 돌아왔던 슬픈 기억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였으므로, 작년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올해는 에버랜드 가기 1주일 전부터 에버랜드 공부를 시작했다. 인터넷 검색을 모두 마친 우리는 오픈 한 시간 전에 에버랜드에 도착하기로 계획을 짜고 발렛 서비스도 신청했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하여 상쾌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오픈을 기다렸다. 가끔 스마트폰 줄서기가 10~20분 일찍 오픈할 때가 있다고 하여, 그때부터는 계속 새로고침을 하면서, 대학교 수강신청 이후로 이렇게 떨리기는 처음이라며, 마치 대학생이 된 것 같은 젋어진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어플의 힘을 빌려 그날의 일정은 대성공이었다. 로스트밸리 줄서기를 성공했고, 로스트밸리를 기다리는 동안 나비도 보고, 오후에는 판다도 보고, 동물쇼도 2개나 보았다. 어플에는 줄서는 현황이 쫙 나와있어, 효율적으로 동선을 짤 수 있었다. 작년에 비하면 실로 괄목상대한 발전이었다. 아침 9시에 와서 12시간을 놀고 저녁 9시가 되어서야 나왔으니, 잘 놀고 잘 걷는 아이들의 성장을 기분좋게 느낀 하루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느 놀이기구에 사람이 얼마나 줄서 있을지 몰라 두근대는 마음으로 무얼 탈지 이야기하고 정한 목적지를 향해 무작정 내달렸던 시간이 그리웠다. 남편말로는 에버랜드 오픈 타임에는 일제히 맹속도로 뛰어가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에버랜드 직원이 북을 치며 통솔했다고 하는데, 그런 아날로그적인 시간들도 이제는 떠나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로스트밸리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나비를 열심히 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만 보고 가야된다며 닥달했고, 각종 줄 현황을 어플을 통해서 체크하느라 핸드폰을 계속 들여다봤다. 저녁이 늦어져 문을 연 식당은 어딘지도 어플을 통해 확인했다. 에버랜드에서 잘 놀려면 어플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확실히 디지털은 효율적이고 간편하며 쓸데없는 수고를 덜어준다. 하지만 어떤 놀이기구를 할지 정하는 베팅의 두근거림, 그것의 승패가 가져오는 쾌감과 회한, 아이들과의 눈맞춤, 맹목적인 줄서기 같은 날것의 감정과 행위들이 편리성 속에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