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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진찰과 남편의 한 마디

  올해 초 질염 때문에 산부인과를 계속 다녔다. 가자마자 여러 가지 검사를 해서 두 가지 균이 나왔는데, 의사선생님 말씀이 하나는 평범한(?) 균이고, 하나는 내 몸에 원래 사는 균일 수도 있고, 남편이 가지고 있는 균이 내게 옮았을 수도 있는데, 균에 이름표가 있지를 않으니 어떤 경우인지 알 수가 없다면서, 남편도 약을 하루 먹어야 된다고 하셨다. 설명이 길고 친절하기는 하였으나, 나로서는 좀 알쏭달쏭한 면이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혹시.... 남편을 의심해야 되는 상황인가요'라고 물으니, 선생님께서는 '그런 거였으면 남편도 비뇨기과에 가라고 했을 것이다. 그건 아니다'라고 하셨다. 남편이 밖에서 옮아온 거면 성병이 아닌가 생각됐던 것이다. 좀 꺼림칙한 기분이 남긴 하여, 산부인과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남편에게 전하니 '나는 전혀 부끄러운 일이 없다.'라고 별일 아니라는 투로 이야기하고, 나도 부끄러운 게 없으니, 사건은 일단락 되는 듯했다. 남편은 무슨 균인지도 궁금해하지 않았고, 내가 남편을 의심했던 것처럼 나를 의심할 수도 있는데, 전혀 그런 것도 없었다. 


  산부인과는 몇 차례 더 갔다. 산부인과는 치과와 더불어 가기 싫은 병원이므로 치료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선생님께서는 어느 날 드디어 마지막이라며, 마지막 검사만 하고, 더는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하셨다. 성가신 일이 드디어 끝나 기분이 매우 홀가분했다. 

  그런데 마지막 검사 후 일주일 후, 사무실에 있는데 산부인과에서 문자가 왔다. '검사 결과가 나왔으니 병원에 내원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분명 선생님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왔는데, 병원에 또 오라고 하니, 여러 가지 기분 나쁜 상상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이 '남편분, 비뇨기과에 한번 가보셔야 될것 같습니다'라고 하면 어쩌나. 만약 그러면 남편하고 계속 살아야되나. 남편에게 냅다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남편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당장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사무실을 나왔다. 운전을 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일단 남편이 전화를 안받은 것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조용히 병원에 가야했다. 남편에게 병원에 간다는 것을 알리면, 남편이 병원에 전화를 해서 '우리 부부가 잘 살 수 있게 아내에게는 비밀로 해주세요.'라고 부탁해서, 내가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다. 진실을 모른 채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보니 남편의 너무나 담담하고 의심하지 않는 초반의 태도도 수상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숨기는 것이 있으니 나를 의심하지 못한 것이고, 이 문제를 재빨리 덮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 


  병원 건물에 도착하니 남편이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지 말까, 순간적으로 고민했지만, 1분 내 병원에 도착할 것이므로 남편이 수를 쓰기에는 너무 촉박한 시간이었다. 나는 건조하게 '병원에서 검사 결과 들으라고 문자가 와서 병원에 왔어'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자고 했다. 그러자 남편이 매우 급하게 한마디를 하였다. '보험 청구하게, 서류 떼' 

  이 상황에서 보험 청구가 1순위인 남편. 나의 의심은 사르르 녹았다. 나는 이 사람을 믿어도 된다. 편안한 마음으로 병원에 갔다. 남편이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은 한 마디는 매우 강한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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