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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철 Oct 13. 2021

무의식에 의한 표절이 가능한가?

[대중음악 속 법률이야기 ①] "My Sweet Lord" 표절 사건

"무의식에 의한 표절이 가능한 것인가?" 

위 물음에 대한 답변을 위하여, 지금까지도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유명한 표절 사례로 알려져 있는 "My Sweet Lord" 표절 소송에 관하여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사건명: Bright Tunes Music Corp. v. Harrisongs Music, Ltd. (Southern District of New York, 1976)*

*Bright Tunes Music 주식회사(원고)가 Harrisongs Music 유한회사(피고)를 상대로 1971년에 美뉴욕 남부지방법원에 표절을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으로 1976년 원고 승소로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상기 사건에서는 이른바, "무의식적인 표절(Subconscious Plagiarism)"이 쟁점이 되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로 평가받고 있는 영국의 락그룹인 비틀즈(The Beatles)가 해체하게 되는 197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credit: chrisdorney – stock.adobe.com]

<사진> 비틀즈 멤버 : Paul McCartney, George Harrison, John Lennon, Ringo Starr (좌로부터)


오늘의 주인공은 비틀즈의 멤버 중에서 일명 "the quiet Beatle"이라고 불렸던 조지 해리슨입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1962년 데뷔 이후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스타덤에 오른 1964년이래로 비틀즈의 수많은 노래는 대부분 존 레논, 폴 매카트니라는 두 명의 불세출의 천재 뮤지션에 의하여 작사, 작곡되었습니다.


여기서 'Lennon-McCartney' 작사/작곡 콤비에 관하여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비틀즈 곡 중에서 예를 들어 "Yesterday", "Hey Jude"와 같은 곡들은 폴 매카트니 단독으로 창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해당 곡들의 Credit은 'Lennon-McCartney'  공동 작사/작곡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된 연유는 그들이 함께 음악을 시작하였던 고등학교 시절에 구두로 "앞으로 홀로 또는 공동으로 작업하여 발표하는 곡은 레논-매카트니 공동 작업으로 표기하자"라는 약속을 하였고, 1962년 비틀즈라는 그룹명으로 공식적인 첫 번째 앨범을 발표하게 되는 시점에는 비공식적인 약정이 정식의 계약으로 공식화가 되었기 때문입니다(서로 Joint Credit Agreement를 체결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후 비틀즈가 공식적으로 소송을 통하여 해체되었던 1970년까지는 언급한 Joint Credit Agreement가 효력을 발휘하여, 비틀즈 활동의 후반기인 1968년 이후 즉,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사이의 불화가 수면 위로 올라선 시기에 각자 독자적으로 작사/작곡한 곡들까지 계약에 따라 실상과는 다르게 'Lennon-McCartney'  공동 작사/작곡으로 표기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계약은 함부로 체결하는 것이 아니고, 꼭 체결하여야 한다면 신중히 계약 조건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 줍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존 레논-폴 매카트니 콤비에 비하여 '조용한 비틀'이라고 불렸던 조지 헤리슨은 두 천재의 그늘에 가려 활동 초반에는 창작에 있어서도 비교적 '조용히' 지냈습니다. 실제로 비틀즈 초기에는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에 의하여 양산되던 곡들에 비교할 때 '습작' 수준의 곡을 가끔 앨범에 수록하는 정도로 본인의 창작활동을 이어 갔습니다. 그럼에도 조지 해리슨은 작사/작곡 작업에 꾸준한 관심을 보였고, 1966년 발표된 <Revolver> 앨범의 오프닝곡인 "Taxman"*부터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사실상 비틀즈의 마지막 앨범인 <Abbey Road> 앨범에서는 "Something", "Here comes the sun"과 같은 곡을 선보이며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에 견주어서도 전혀 뒤지지 않는 작곡 실력을 뽐내게 되었습니다.


*"Taxman": 비틀즈가 활동하던 시기는 1964년부터 1970년까지 노동당(Labour Party) 출신의 Harold Wilson이 영국 총리로 집권하던 시기와 겹치는데, 당시 영국 국민에게는 악명 높았던 이른바 "부유세(Progressive Tax)"가 부과되었는데, 개인의 수입총액 기준으로 최대 95%까지 누진세가 부과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일반인보다 상대적으로 수입이 높았던 영국의 락스타들은 누진세의 적용을 피해 갈 수 없었는데, "Taxman"은 이와 같은 영국의 세금정책을 비판한 곡입니다. 비틀즈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영국의 또 다른 락그룹인 Kinks도 자신들의 곡인 "Sunny Afternoon"을 통에서 당시 높은 세율에 대하여 불만을 터뜨렸고, Rolling Stones는 아예 조세회피 목적으로 프랑스로 이주(도주)하여 밴드 활동을 한 바 있습니다(그들의 최고 걸작 앨범이라고 평가되는 <Exile on Main Street> 앨범도 그러한 이유로 프랑스에서 녹음되었습니다). 
  



비틀즈는 유대인 출신의 매니저인 Brian Epstein이 1967년에 약물과용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팀 내부의 결속력이 급격히 약화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존 레논이 오노 요코(Ono Yoko, 小野洋子)를 만나면서 팀 활동에 느슨해지자 그 틈을 탄 폴 매카트니가 밴드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균열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비틀즈 멤버 전체가 앨범 녹음 작업에 공동으로 참여한 마지막 앨범인 <Abbey Road>도 우여곡절 끝에 완성하게 되었는데, 비틀즈의 마지막 공식 앨범인 <Let It Be>를 제외한 모든 앨범의 프로듀싱을 담당했던 George Martin의 공로가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Abbey Road> 앨범은 밴드 멤버 간의 불화가 최고로 악화되었을 시기에 만들어진 앨범임에도 그 완성도도 최고치에 이르렀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credit: PUNTOSTUDIOFOTO Lda – stock.adobe.com]

<사진> 비틀즈 사실상 마지막 앨범인 <Abbey Road>의 Iconic Image를 활용한 아트웍


당시 멤버 간의 불화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단적으로 잘 나타내 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평소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이미지인 존 레논과 달리, 폴 매카트니는 비교적 온순하고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Abbey Road> 앨범 중 A-Side(A면) 3번째 곡으로 수록되어 있는 "Maxwell's Silver Hammer"의 가사를 살펴보면, 폴 메카트니도 폭발 직전에 있었다고 유추에 볼 수 있습니다. 폴 매카트니가 작사/작곡한 그 곡은 은 망치(Silver Hammer)로 연쇄살인을 일삼는 살인범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어, "We Can Work it Out"과 같이 삶의 밝은 면을 바라보는 기존의 곡들과는 사뭇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고, 나아가 당시 멤버 간의 불화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고 보입니다.




멤버 간의 불화로 결국 앞서 언급한 대로 비틀즈는 1970년에 해체되었지만, 각 멤버의 솔로 활동은 1967년경부터 본격화되었고, 1970년에는 멤버 모두 솔로 앨범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첫 신호탄은 폴 메카트니가 쏘아 올렸는데, 1967년 "The Family Way"라는 영화의 음악을 맡아 George Martin과 작업을 하였습니다. 이후 조지 헤리슨은 1968년 "Wonderwall Music"*이라는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하였고, 존 레논도 같은 해에 오노 요코와 함께 <Unfinished Music No. 1: Two Virgins>이라는 앨범을 발표합니다. 


*"Wonderwall Music": 90년대 브릿팝(Britpop) 내지 브리티쉬 락(British Rock)의 대표주자이자 비틀즈의 '적자'임을 자처한 오아시스(Oasis)는 그들의 2집 타이틀 곡을 "Wonderwall"로 명명하여 조지 헤리슨에 대한 경의를 표한 바 있습니다.


한편 1970년 비틀즈 해체 당시, 멤버 중 누가 최초로 빌보드(Billboard) 음악 차트 1위를 차지하게 될지가 대중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는데, 존 레논 또는 폴 메카트니가 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971년 새해 벽두에 '조용한 비틀'인 조지 해리슨은 비틀즈 맴버 중 최초로 "My Sweet Lord"라는 곡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현재의 Hot 100 차트) 1위에 오르는 영예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곡은 그에게 영예와 동시에 치욕을, 영광과 동시에 불행을 가져다준 노래가 되었습니다.


1971년 2월 "My Sweet Lord"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서 내려올 무렵, 1963년 역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한 히트곡인 "He's So Fine"에 대한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던 미국의 Bright Tunes Music 주식회사는 조지 해리슨을 상대로 표절(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He's So Fine"은 Ronnie Mack이라는 작곡자에 의하여 작곡되었으나, 1963년에 작곡자가 사망하여 해당 곡의 저작권은 이후 Bright Tunes Music 주식회사로 양도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우선, 표절 대상곡(원곡)인 1963년 미국의 걸그룹 'The Chiffons(시폰스)'가 발표한 "He's So Fine"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Gkhe0DW5Oc

Source: YouTube.com


다음으로 표절시비가 제기된 조지 해리슨의 "My Sweet Lord"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P9wms6oEMo

Source: YouTube.com




일반적으로 음악 저작물 사이에 표절이 발생하였는지, 즉 저작권 침해가 발생하였는지에 대한 판단을 위해서는 1) 후행하는 저작물의 저작자의 선행하는 저작물에의 접근(Access) 내지 의거(據), 2) 두 저작물 간에 실질적 유사성(Substantial Similarity)이 있는지 여부를 살펴보게 됩니다.


재판부는 표절 판단의 2가지 요건 중에서 첫 번째 요건인 '접근(Access)' 요건과 관련하여, 1963년 "He's So Fine"이 발표되어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였고, 조지 해리슨의 본국인 영국에서도 1963년 6월 1일 자 차트에서 12위를 차지한 바 있고 그 주에 비틀즈의 곡이 1위에 있었던 사실이 인정되는바, 조지 해리슨은 당시 비틀즈의 멤버로서 "He's So Fine"이라는 곡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한편, 두 번째 요건인 실질적 유사성(Substantial Similarity) 요건과 관련하여, 우선 "He's So Fine"의 주된 멜로디는 ① 아래 그림의 1번 모티브(Motif)가 1회 선행하고, 2번 모티브가 4회 반복되는 패턴, ② 1번 모티브가 4회 반복되고 이후 2번 모티브가 4회 반복되는 패턴, ③ 2번 모티브가 상기와 같이 반복되는 가운데 4번 모티브로 변형되는 패턴을 보이는데, 



"My Sweet Lord"의 주된 멜로디는 앞서 살펴본 1번 모티브(Motif)가 4회 반복되고, 2번 모티브가 4회가 아닌 3회 반복되는 패턴을 띠고 있고, "He's So Fine"에서 2번 모티브가 4번째로 반복되는 소절에 "My Sweet Lord"는 같은 길이의 다른 멜로디로 대체가 되지만, 상기 '1번 모티브 4회-2번 모티브 3회-대체 멜로디'로 이어지는 전체 멜로디가 두 번째가 반복 시에는 4번 모티브가 들어간다는 점을 들면서,


재판부는 결과적으로 "He's So Fine"와 "My Sweet Lord"는 동일하다(Identical)는 판단을 내렸습니다(즉, 문제의 2곡 간에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판단).




조지 해리슨은 상기 재판에서 자신의 "My Sweet Lord"와 Ronnie Mack이 작곡한 "He's So Fine" 간에 이른바 표절 관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은 "My Sweet Lord"라는 곡을 쓸 당시에는 두 곡 간의 유사성을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는 항변을 하였습니다. 


이에 재판부는 유명한 "무의식적인 표절(Subconscious Plagiarism)"이라는 개념으로 조지 해리슨의 상기 항변을 배척하였습니다.


재판장은 "작곡자는 자신의 음악적 사상(악상)에 옷을 입히기(표현하기 또는 구체화) 위하여 여러 가지 음악적 재료를 가지고 여러 가지 표현 가능성을 두고 시험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작곡자는 머릿속으로 대중에게 어필하기에 적합한 특정 멜로디의 조합만을 염두하게 된다. 작곡자가 이러한 과정을 비록 의식하지는 못할지라도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과정이 그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작곡자는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특정 멜로디의 조합을 찾는 작업이 완성되면, 비로소 의식에 의하여 악보로 구체화를 시켜 레코딩을 하고 곡 발표를 하게 되는 과정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설시하였고, 


나아가 "조지 해리슨의 경우에 'He's So Fine'의 멜로디를 일부러 또는 의식하고 'My Sweet Lord'라는 곡에 사용하였다고 보이지는 않는다(두 곡 간의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되는 정도를 넘어 사실상 동일한 멜로디를 사용하고 있다고 보여 표절이 금세 들통날 것이므로). 그럼에도 두 곡은 가사만 다를 뿐이지 멜로디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되는 점, 조지 해리슨은 당시 비틀즈의 멤버로서 "He's So Fine"이라는 곡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비록 표절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졌을지언정, 표절(저작권 침해)이 발생하였다는 점은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법원의 위와 같은 판결로 인하여 조지 해리슨은 "My Sweet Lord"로부터 발생한 수익 중 $1,599,987을 손해배상액으로 원고인 Bright Tunes Music 주식회사에게 배상하게 되었습니다. 




조지 해리슨의 음악인생에 있어서 "My Sweet Lord"가 수록되었던 <All Things Must Pass> 앨범(최초 솔로 앨범)은 지금까지도 그의 최고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즉, 자신이 최초로 발표한 솔로 앨범이 최고로 평가받는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제1집을 발표하고 그 이후로 음악적으로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는 것인데, 아마도 "My Sweet Lord"에 대한 표절 시비가 그에게 창작활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 표절 시비 이후에 마음껏 역량을 펼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점은 필자를 포함한 많은 비틀즈의 팬들에게는 아쉬운 점으로 남습니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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