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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예희 May 10. 2017

29. 시장 찍고 포르투로

4월 27일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라고 쓰긴 했지만 생각만큼 밝지는 않길래 왜죠 하며 창밖을 내다 보니 껄껄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구먼.








코임브라에 도착한 날부터 이 곳을 떠나는 오늘까지 이렇게 비가 계속 오다 말다 하고 있으니 저에게 코임브라는 비 오는 동네로 기억되겠지만, 그래도 싫은 비는 아니에요. 비가 여행의 장애물로 느껴지는 경우도 많은데 여긴 동네 분위기에 은근히 비가 일조하기도 하고, 한참 내리다 그쳤을 때의 반짝임이 마치 선물같이 느껴집니다. 

그치만 물론 안 오면 땡큐임.









짐을 챡챡 싸 놓고 밖으로. 제 숙소는 정오에 체크아웃이라 아직 여유가 있습니다. 

저의 생명줄 아리아드네의 붉은 실 구글 지도님을 부여잡고 자자 어드메에 함 가 보자며 발동을 부앙부앙 걸어 보는데









호호 갑자기 빗줄기가 더 굵어지네? 

그리하여 근처 까페에 뛰어 들어와 단것과 커피를 주문했어요. 요 노오란 빵은 볼루 드 아로즈bolo de arroz라는 것인데, 볼루bolo는 머핀처럼 사알짝 퍽퍽한 빵이고 아로즈arroz는 쌀입니다... 라는 것은 쌀가루를 써서 굽는 것이여. 

어느 타이밍에 어느 빵집에 가든 요렇게 종이띠를 둘러 놓은 둥그렇고 자그마한 볼루 드 아로즈는 쇼케이스 안에 반드시 있을 정도로 아아아아주 흔한 빵이에요. 오 다음엔 저거 먹어봐야지 계속 생각만 했는데 오늘 드디어... 우하항...







그래서 맛은 어땠느냐, 단 맛이 강하지 않고(달긴 단데 포르투갈의 다른 달달빵들 보다는 덜 답니다) 퍽퍽하면서 구수한 것이, 왜 콘브레드 내지는 옥수수 스콘이라 불리는 그거 있잖아요? 럭비공 비슷하게 생긴 노랗고 조직 치밀한 빵요. 고거랑도 비슷한 맛입니다. 

커피 1.3유로, 빵 0.95유로 해갖고 2.25유로 되것습니다.







어이구 드디어 비가 그쳤다. 이러다 또 후둑후둑 떨어질 수도 있지만 요 잠시 드러난 파란 하늘이 너무나 곱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선 모자를 아직 한 번도 꺼내 쓰지 않았는데, 예전엔 주근깨 생길까봐 무진장 조심하고 신경썼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뭐가 어쨌는지 저쨌는지 이제는 그런 것을 좀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크으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 내내 뻔질나게 오간 길인데 오늘 아침은 어쩜 이렇게 다를까요! 가게들이... 가게들이 문을 열고 있어... 이틀 동안 닫힌 문만 바라봤는데... 근데 난 좀 있다 여길 뜨지... 껄껄껄 젠장...








말씀드리는 순간 네일샵 입간판이랑 딱 마주침. 

여러분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젤네일로 추정되는 그 무엇인가가 9유로 13유로 대충 이런 모양입니다. 13유로라고 해도 싸다 ㅎㅎ







그렇게 핸드폰 속 구글님의 자비로운 인도로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어마어마한 방향치라 여행 갔다 하면 손에 가이드북을 구깃구깃 쥐어잡고 동네 지도 나온 페이지를 500번쯤 폈다 접었다 하거나 아니면 아예 모든 것을 내려놓고 눈물을 흩뿌리며 거리를 헤매는 여인이 바로 저인에 허허 구글 지도님 덕분에 너허허무나 편해졌습니다. 세상 진짜 좋아졌어요. 노인네 같은 소리지만 진짜 그렇다고오오오

이 곳은 이름하여 메르까도 무니씨팔 드 뻬드로V mercado municipal D. Pedro V 이옵니다. 메르까도mercado는 시장, 무니씨팔municipal은 그니까 대략 지방자치 뭐 이런 뜻이니 코임브라 시에서 운영하는 시장이것지유. 입에 착착 붙어유 무니씨팔. 19세기에 형성된 시장으로 현재의 건물은 2001년에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시장은 꽤 큼직 널찍한 3층짜리 건물이고, 오후 1시에는 문을 닫는대요.








현재 스코어 월요일 오전 10시 20분이니 장 볼 사람들은 이미 한 차례 왔다 갔을 만한 시간. 아주 한적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조금 도에 지나치게 한적하다 싶기도 해요. 문을 연 가게도 많지 않구요. 

리스본의 메르까도 다 히베이라mercado da ribeira도 그랬던 걸 생각하면 이 휑한 시장이 포르투갈의 경제 상황을 보여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서툴게 속단해 봅니다.









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의 여행. 포르투갈 시장의 신선 식재료들은 대략 이런 것들입니다. 가지와 비트와 피망, 양파와 호박과 당근









동글동글 올리브 절임. 요건 신선 식재료는 아니지만요.









그리고 푸성귀들.









감자도 아주 맛있어요! 퍼석푸석하지 않고 아주 쫀쫀하고 쫠깃한 감자입니다. 튀기는 것 보다 찌는 쪽이 훨씬 맛있는 감자.









여기도 올리브. 국물 쫙 빠지는 뜰채로 푹 퍼서 담아주는군요.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데 우허허 왠지 신기함.









울퉁불퉁 레몬도 있습니다. 국내에 수입되는 레몬은 하나같이 매끈하고 미끈한 것들이라 요런 걸 보면 오잉 뭔가 더 싕싕할 것만 같아요.









가운데엔 채소와 야채 가게가 모여 있고 벽 쪽으론 육가공품과 유제품 가게가 빙 둘러 있습니다. 

초리조chouriço와 까숄레이라cacholeira(돼지 간 왕창 넣은 거), 모르시야morcilla(요거 피순대랑 아주 비슷함), 알례이라alheira 소시지 등이 주렁주렁.







아아 치즈님









치즈는 꿰이조queijo라고 하는데(스페인에선 꿰소queso) 포르투갈 치즈랑 스페인 치즈 모두 여행을 오기 전에는 먹어볼 기회가 없었어요. 맛있고(당연한가) 가격도 저렴합니다. 사우스 코리아에 수출 좀 해줭...









그렇게 뭐 있나 휘휘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중인데









거참 시장이 휑해도 너무 휑하니 좀 민망하고 뻘쭘하고 그렇습니다.









아름답게 분리되신 닭느님이신데 어머 맨 오른쪽 다리 쟤는 뭐가 저렇게 굵은가요. 아무리 봐도 닭다리 사이즈가 아니여.









굵직굵직 썰어서 국물 요리 할때 던져 넣으면 참 맛있을 것 같은 꼬득꼬득 육가공품들. 

올리브, 치즈, 요런 육가공품 등 한국에서는 아직 비싸게 파는 것들이 특히 탐납니다. 막판에 쇼핑 알차게 해야징...







1층을 한바퀴 돌고 2층으로 올라가니









어우 짜









2층엔 바깔랴우bacalhau 가게가 좌라락 모여 있습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쓴 바깔랴우의 설명글을 다시 가져와 보겠습니다.

<꾸덕하게 말린 거대 대구의 겉에 잔뜩 묻은 허연 것은 소금이여 소금. 옛날 옛적엔 대구잡이를 한번 나갔다 하면 하안참 있다가 겨우 육지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봄에 나가면 가을에 돌아오는 식으로요. 잡은 대구를 갑판에다 쫙 깔아놓고 상하지 말라고 왕소금을 미친듯이 팍팍 뿌려 바닷바람에 말린게 요 바깔랴우의 시작이야요.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러니까 이베리아 반도에서 아주 사랑받는 식재료인데 특히 포르투갈 사람들은 단백질의 약 40% 가량을 요 바랴라우를 통해 얻는다고 합니다. 대체 얼마나 많이 먹길래! 

그렇게 사랑받는 식재료다 보니 포르투갈 사람들은 바깔랴우를 fiel amigo(믿을만한 친구) 라고 부르기도 한대요. '포르투갈인은 꿈을 먹고 살고, 바깔랴우를 먹고 생존한다' 라는 표현도 있구요. 1년 365일, 매일 다른 바깔랴우 요리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요리법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건 딱 보면 아 몸통 부분이구나 알겠는데 요 삼각형은 뭐지 하며 들여다 보고 있으니









우리 아벗님께서 삼각형을 반으로 텁 하고 접어 들어 올리시며 까라cara 라고 하십니다. 아하 대구 대가린가? 싶어 헤드? 헤드? 했더니 맞아 맞아 바깔랴우의 헤드야 라고. 여러 부위 중 이 부분이 최고라고 하시길래 어머 사우스 코리아에도 어두일미 있어요 아벗님 하며 매우 반가와 했어요.

라는 것을 실제 대화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벗님 : (다른 부위들을 짚으며) This, good.

나 : Yes yes

아벗님 : (머리 부위를 가리키며) This, GOOOOOOOD.

나 : Yes yes Korea, fish head, GOOOOOOOD








소금 왕창 바깔라우 가게가 가득하니 2층은 짭짤 비릿한 바닷내가 솔솔 납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포르투갈 여행중에 바깔랴우 요리를 그다지 많이 먹지 않았어요. 조리법이 워낙 다양하니 1일 1바깔랴우 정도는 해 줘야겠지 생각했는데 어우 제가 몇 년 전부터 입맛이 샤르르 바뀌었지 뭐것습니까. 이젠 회가 아니면 어지간해선 생선을 굳이 찾아 먹지 않게 되었어요. 특히 구이류가 영 내키지 않아졌구요. 생선뿐 아니라 고기도 그렇습니다.









거참 입맛이 또 이렇게 바뀌나 싶어 신기합니다. 하안참 전에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바깔랴우를 처음 먹어보고는 우와 요거 맛있다 쌈빡하다 되게 좋아했었거든요. 그래서 이번 포르투갈 여행을 계획하면서 바깔바깔 노래를 불렀는데 막상 와 보니 껄껄 바깔은 의구하되 입맛은 간 데 없네.









그나저나(말 돌리며) 캬아 여행 일주일째 됐다고 슬슬 표지판에 뭐라뭐라 써 있는지 눈에 들어옴. 현금 지급기 저깄고 공중전화 저깄고 화장실은 여깄고 신선청과는 저쪽 신선육은 요쪽 농산물 저쪽 빵이랑 달두왈은 그쪽 유제품은 고쪽이라고 합니다... 라고는 하지만 인포그래픽만 봐도 대충 파악이 가능하긴 함. 그래도 짧은 여행 중 요런 외국어 쬐꼼 알아가는 게 참 즐겁습니다. 

하지만 태국에선 절대 불가능했지... 팟타이가 ผัดไทย인데 나보고 어쩌라구...







맛 좀 보렴 우리 치즈 괜찮단다 라는 어멋님. 요거 아주 맛있습니다. 여행 노트에 '아------주 맛있다! 깜놀ㅜ.ㅜ' 라고 적어 놓았구만요. 새큼하고 부드러운 게 어우야 소리가 절로 나오는 맛이에요.









옆 치즈집 콧수염 아벗님 두둥









나 찍어줘 치즈랑 같이 찍어줘 라고 하시며 포즈를 취해 주신 그분이십니다.









동글동글 달걀 울퉁불퉁 레몬









한국 음식의 신 맛은 대부분 식초로 내지만, 전 감귤류로 내는 것도 좋더라구요. 레몬, 유자, 라임(비싸! 으억) 등등요. 식초랑 섞어 쓰면 맛있졍!









오우 과일 가게









어디보자 사과가 키로에 1.25유로고 거봉이가 3.49 메롱이도 3.49









2층에서 내려다 본 1층의 모습









코임브라에서 보낸 주말 그리고 월요일 오전 몇 시간. 

이 도시를 알게 되었다고도, 아예 모른다고도 하기 어려운 짧은 시간입니다.







시장 건물 밖으로 나와 살살 걸어 내려가는 중. 

어제만 해도 문을 연 가게가 거의 없었고 사람도 없었는데 이야 역시 월요일은 다르구나.







파릇파릇 싱그러운 채소 모종을 팔고 있는 이 곳이 어디냐면 오른쪽의 하얀 가운 입은 마네킹 저거 기억하십니까. 어제 보고 식겁했던 무서운 마네킹 바로 옆집임.









라는 것은 그렇습니다 악기점 바로 근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안녕하십니까 저는 파두 기타를 갖고 싶습니다 라고 씩씩하게 부르짖으니







난리남









그니까 어떤 나무를 썼는가 제작자가 누구인가 등에 따라 가격대가 매우 다양한데(당연하다) 일단 초보자용을 원하는 것이라면 이 집에는 200유로대 중반 모델이 하나 있고 거기다 케이스부터 해갖고 필요한거 이거저거 하면 대략 원화로 30만원 가량 되것습니다. 

기타줄은 이 기타 그러니까 기타라 포르투게사guitarra portuguesa용 줄이 좋지만 일반 기타줄을 써도 된다고 해요. 그리고 12줄의 기타인 만큼 운지법이라던가 코드 등도 일반 기타와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라는데 껄껄 문제는 제가 기타에 대해 요맨큼도 모른다는 것임.









고것이 너무나 아쉬운 것입니다. 만약 기타를 칠 줄 안다면 아 이런 차이가 있구나 하며 쏙쏙 알아들을 텐데 말여요. 제가 아는 것이라곤 이 기타라 포르투게사는 소리가 으엄청 첑첑첑 크게 난다는 것과 생긴게 간지난다는 것뿐...









그 간지에 눈이 뒤집혀 악기점까지 온 것 아니것습니까. 그니까 사장님 저는 일자무식이에유 장식품 사러 온거에유 인테리어의 일부가 될것이에유 그니까 싼거줘유 싼거 제일 싼거어어어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진지하게 악기에 대해 설명하시는 분들에게 딱 잘라 그런 말을 하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리하여 열심히 설명을 듣고, 생각을 좀 해 봐야겠다고 이야기하고 밖으로. 어우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네요. 3일 내내 비가 오다니 껄껄 제우스 신에게 책임을 물으리라.








이제 짐을 챙겨 기차역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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