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i die tomorrow
글이 다소 섬뜩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이 글은 혹시 모를 갑작스러운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인사말입니다. 아직 죽음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유언’이나 ‘유서’라는 말보다는 ‘인사말’이 좋을 듯합니다. 특별한 계기로 이런 글을 남기는 것은 아닙니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종종 생각해왔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어린 나이었기 때문에 – 물론 지금도 어리지만 – 죽음을 고민한다는 것이 자칫 좀 우스워 보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가지 당부할 점은 절대로 나의 일상이 우울하거나, 어느날 갑자기 두려움 느낀 것이 아닙니다. 특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감사한 것, 행복한 것이 훨씬 많은 삶이었고,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100살까지는 살고 싶습니다. 왜냐고요? 요즘은 늙어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우선 정말 만약에, 내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면 허례허식이 가득한 장례식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냥 많은 사람들이 나의 죽음을 알고 작게나마 아쉬운 느낌을 가진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래도 유골은 처리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수목장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나무는 소나무처럼 항상 푸른 침엽수가 좋겠고요. 3~5그루 정도 넓은 간격으로 심고, 그 밑에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긴 의자, 그리고 누군가의 묘지임을 알리는 간단한 표지 정도 있으면 충분합니다. 장례식 날짜에 맞춰 찾아오지 않아도 되고, 누구나 나무 그늘에서 잠깐 쉬어갈 수 있도록. (내가 죽어도 종종 놀러 오세요. 나무 밑에서 김밥도 먹고 캠핑도 하고.)
남기고 가는 것은 없습니다. 저축도 많이 하지 않았고요. 주택청약종합저축이나 적금 통장이 있기는 한데, 정말 얼마 안되는 돈이 있을 테니 기부를 하면 좋겠습니다. 기부할 곳은 나눔의 집이나 사이버 민간 외교사절단 ‘반크’ 정도가 어떨까요. 여의치 않다면 유가족 예정자분들께서 다른 방법으로 알아서 잘 처리해주길 바랍니다. 그 외 옷이나 책, 사용하던 물건 중에도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장기와 각막은 기증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최근에 기증 후 시신에 대한 관리와 예우가 좋지 못하다는 뉴스를 많이 접했습니다. 그래도 뭐.... 기증되면 좋은 일이니 슬프더라도 절차에 맞춰 진행해줬으면 합니다. 기일도 살다 보면 다들 바쁠 테니 굳지 지키지 않았으면 합니다. 죽은 날이 뭐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니까요.
살면서 크게 후회스러웠던 일은 없었습니다. 대부분이 내 선택이었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통제를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님께는 매우 감사드립니다. 금전적인 조건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하고 싶었던 대부분의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크게 일탈도 없었나 봅니다. 보통 청소년기의 일탈은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부모님이 바라는 것에 대한 갈등이 원인인데, 그런 것에 대한 갈등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스스로의 삶을 총평하자면 꽤 바르게 살지 않았나 싶습니다. 당연히 일탈이 아예 없던 던 것은 아닙니다. 기억에 남는 것으로는 중학생 시절 여러 명이 함께 많은 술을 마신 것(친구 부모님의 허락하에), 고등학생 때는 종례에 들어가지 않고 미리 친구들과 교문을 나와 PC방으로 향한 것 등이 있군요. 이 정도면 일탈도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태어난 날 1991년 8월 28일부터 지금(2019년 7월 29일)까지 1만 197일, 그러니까 약 27.9년을 살아왔습니다. 겪어왔던 모든 상황과 그 과정에서의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지인들과 충분한 인사를 나누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그래도 큰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렇다고 나의 죽음을 슬퍼하지 마세요. 죽음을 슬픈 일이라고 여기기보다는 하나의 변화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