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연 Jul 17. 2023

서른셋, 타로 시작하기 좋은 나이네




 '대학에 합격할 수 있을까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타로점을 보러가서 했던 질문이다.

고3 수능시험을 망쳤다고 생각해 비관하다가 친구와 찾아낸 임시방편이기도 했다.

당시 내가 살던 동네 지하상가에 가면 손바닥만한 평수에 오묘한 빛을 내는 전구들로 장식해놓은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타로점을 봐주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고등학생이던 내게 사주 보다는 가깝고 카드놀이보다는 묵직한 느낌의 그것이었다. 카드 하나하나는 참으로 아름다웠는데 그 작은 카드로 내 인생을 점친다는 사실이 어쩐지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때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보게 되었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필연이었는지 모르지만 타로점사는 나보고 대학에 '소신지원'하라고 했고 나는 용기를 내어 그 학과에 지원해 결국 합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새로 생겨난 입학정원모집 방식을 잘 활용했던 것 같지만 그때는 타로카드가 말해준 대로 했더니 됐다가 되었다. 


그 뒤로도 몇 번 더 타로점을 봤다. 새로 사귄 남자친구와도 보고 친구와도 보고 직장동료와도 함께 봤다.

연애운도 보고 취업운도 보고 직장운도 봤다. 어찌보면 매번 타로점을 볼 때면 응당 내가 해야 할 결정과 내가 내려야 할 판단을 타로카드에 미루는 꼴이었다. 답은 이미 내 안에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타로카드도 그렇게 말해주면 마음이 놓였다. 신이 내려주는 메시지는 결국 내 내면의 목소리라는 말이라도 있지만 형식적으로나마 타로점사가 말해주는 결과를 따르겠다고 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타로카드에 대한 이미지는 개인적으로 매우 호 였으며 급기야 타로카드를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직접 가지고 놀면서 스스로의 고민을 점쳐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처음샀던 타로 배우기 학습책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고 책의 부록으로 끼워져 있던 78장의 타로카드는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두어개만 남았다. 그렇게 사둔 타로카드와 해설책은 방치한 채 또 시간이 흘렀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직장인 7년차를 맞았다. 이놈의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데 하고 생각하면서 도대체 이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숨이 턱턱 막혀올 때마다 가끔 타로 생각이 나긴 했지만 요즘말로 '현생에 치여' 보러갈 여유는 없었다. 평일에는 일하기 바쁘고 주말에는 평일에 쌓인 피로를 풀기 바빴으니까.

오히려 사주는 보러갔다. 거기가 용하다는데 보러가자던 직장동료를 따라, 친구를 따라 두어번 갔다.

용하다는 스님은 계속 내 퇴사결심을 막았고 나는 타의로, 실은 자의로, 그만두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것도 8년동안 한 번도 공백기 없이.


그러던 2022년 어느 초겨울날, 돌연 타로카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런 걸 보면 모든 것에는 시절인연이 있다고 굳게 믿는다. 사람도, 사물도, 그 어떠한 것도 그것과 만나게되는 딱 맞는 시기가 있다는 점이다.

그해 겨울이 그랬다. 유난히 추웠는데 따뜻한 방에 앉아 타로점에 대해 찾아보다가 타로심리상담사라는게 있다는 걸 알게됐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이미 이 바닥에 소위 자칭 타칭 전문가들이 수두룩 했다.

저렇게 많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는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소위 아가 수준인데 언제 명함을 내밀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또 뭔가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는 망설임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는 인터넷강의를 이용했다. 타로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이라는게 있었는데 그 자격증 취득을 위한 강의도 있었다. 다 듣고 시험을 치러 일정점수를 넘기면 자격증이 발급되는 형태였다. 민간 주관이긴 했지만 없는 것보다는 가지고 있는게 뭔가 새롭게 시작할 때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하는 것도 손해는 아니기때문에. 


나이먹고 공부하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그만큼 절실하기 때문에 확실히 효율적으로 공부하고 집중력도 높다는 점이다. 단점은 몸이 쉽게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10대나 20대까지만해도 뭘 해도 체력이 받쳐주었는데 30대가 되고나니 본업과 뭔가를 병행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체력을 요구했다.

직장인도 방학이 있으면 참 좋으련만. 그런건 다음생에나 가능한 일이겠지. 

퇴근하고 저녁먹으면 9시가 넘는데 그 때부터 짬을 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타로카드는 22장의 메이저카드와 56장의 마이너카드로 구성됐는데 이 마이너카드들을 다 외우는게 관건이었다.

지금와서 보면 카드마다 그림이 전부 다르고 가리키는 뜻이 다른게 확실하지만 초반에만 해도 다 그 그림이 그 그림 같았다. 완즈카드와 컵, 검, 동전 카드를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의지와 반복의 힘이 무섭다는 걸 깨달았다. 30대가 된 내 머리도, 이미 직장생활을 하면서 편한것에만 익숙해지고 불필요한데 머리를 쓰지 않으려는 이 빌어먹을 타성도, 계속되는 반복학습 앞에서는 말랑말랑한 근육이 됐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강의를 듣고 외우고 한 끝에 결국 시험도 통과했다. 타로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됐다. 

많은 이들이 갈망한다거나 매우 어려운 사법고시를 통과한 것도 아니었지만 내가 스스로 만들어놓은 기준에 도달해서 갖고 싶었던 것을 얻게 됐다는 그 성취감은 2022년의 최대 성과였다. 

나이가 들수록 성취감을 갖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 시작했었다. 돈을 벌고 있지만 돈은 늘 많으면 많을 수록 좋기에 벌어도 벌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고 그러다보니 또래와 비교를 하게 되고, 내가 과연 잘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 일쑤였다. 누구는 집샀다더라, 누구는 차를 바꿨다더라 하는 말에 나는 절대 흔들리지 않겠다 다짐했던 날들도 있었지만 3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가 되니 조금씩 동공이 흔들리고 있는 걸 새삼 느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나는 내가 세워놓은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살아가는 성향이라는 점이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개인주의자'라고 하지만 나는 이런 개인주의라면 내 스스로를 위해 늘 환영이다.

나를 내가 못 믿는다면, 나를 최우선으로 두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돌봐준다는 말인가.

그렇게 나는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 세운 목표를 하나 소리소문없이 이루고 그렇게 막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디려던 참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