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연 Jul 20. 2023

일이 망하지 내가 망하나



  타로심리상담1급 자격증을 취득하고 타로카드와 많이 가까워지나 싶었지만 사실 그 때 뿐이었다. 앞서 시절인연에 대해 언급했지만 본격적으로 친해지는 것도 다 때가 있는가 싶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도 안면만 터놓고 있다가 와락 친해지는 시기가 있지 않은가.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

자격증도 따 두었겠다, 타로카드에 대해서도 제법 익숙해졌겠다 당장이라도 누군가의 원카드리딩을 봐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었지만 타로는 또 내 인생에서 살짝 방치돼있었다.


현생에 치였기 때문이다. 업무가 매우 많았고 바빴고 또 바빴다. 일로부터 생겨나는 책임감이 커서 똘똘 뭉쳐진 중압감은 매일같이 아침마다 나를 짓눌렀다. 월요일부터 금요일은 대충살고 그저 주말만 기다리는 전형적인 직장인의 원오브뎀으로 지냈다.


맡은 업무가 생각처럼 안된다거나 상사가 한 마디를 하면 그대로 비수가 돼 내 가슴을 찔렀다. 보이지 않는 상처들이 여기저기 새겨지는데 도무지 나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애꿎은 화살은 제일 가까운 가족에게 돌아갔고 그들에게 나는 매우 신경질적인, 예민한, 늘 일이바쁜 사람이 돼 있었다.


그러다가 타로카드를 다시 잡게 되었다. 직장을 그만두었나? 그것은 아니다. 순환근무 차원에서의 지방발령을 받게되고 나서부터였다. 지방에서 근무한다고해서 업무가 확연히 줄었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확실히 숨통이 트였다.

우선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벗어나서 좋았다. 내가하는 일은 아주 외향적인 모습으로 외부에서 많은 이들을 만나야 하는 것인데 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향적인 나는 업무만으로도 치여서, 회사 내에서까지 매일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며 스몰토크를 해야 하는 환경이 버거웠다. 매일같이 소모됐다.


누군가 아무생각없이 던진 한 마디에 더 아무생각없이 오간 대답이 반나절만에 말도안되는 소문이 되기도 했고, 잘못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야할 지도 모르겠는 그런 소모전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소위 사회생활, 직장생활이기에 마냥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지방에서의 근무는 사람이 10%로 줄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의 특성상 지역에는 아주 소수인력만이 파견돼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 수가 아주 적기 때문에 그들과 성향이 맞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지옥이되겠지만 다행히 마음이 잘 맞는 이들과 구성이 됐다. 이 또한 복이라고 생각하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냈다.


마음에 여유가 도니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일로써의 자아와 진짜 내 자아를 분리할 수 있게됐다. 생각처럼 일을 매듭짓지 못하고 마무리하지 못했을 때 밀물처럼 몰려오던 자괴감이 사라졌다. 뜻대로 되지않아도, 이럴 때도 있지하고 생각하게 됐다.

더 나아가서는 일이 망하지 내가 망하나?라고 생각하면서 내일 오늘의 나보다 조금 더 발전하면 돼 하고 나를 다독였다.


아쉬워 할 시간에 보완할 점을 한 번 더 생각했고 만회할 기회를 노렸으며 속상해 할 시간에 좋아하는 커피를 한 잔 더 마시며 스스로 여유를 되찾으려 노력했다.


그 길 끝에 타로카드가 다시 놓여있었다. 근 1년 만에 재회한 것이었다.

취미라는 것이 눈에 들어오게 된 동시에 그것을 활용해서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게됐다. 

지금까지 취미나 또 다른 관심사를 갖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일에 실망하고 일에서 뿌듯함을 얻고 일로 살아가는 인생. 

아이러니하게도 일이 전부라는 마음에서 벗어나 취미나 제2의 관심사를 만들고나니 문제의 그 '일'이 더 잘됐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니 부담이 덜 돼 오히려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었고 사람들과의 마찰도 적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어쩌다 본사의 동료를 만나게 될때마다 그들이 내게 가장먼저 건네는 말이 인상이 바뀌었다는 거였다. 얼굴이 폈다면서 웃는 상이 됐다고 했는데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내 자신이 실감했다. 

아침마다 일어나는 게 가벼웠기 때문이다. 두 번 이상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약간의 불면증은 남아있었다. 직장인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굴레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 머릿 속에서 좋은생각이 차지하는 비율을 조금씩 늘려가려 애썼다. 

특히 모닝페이지를 쓰기 시작한지 한 달 조금 넘었을 때 머리가 훨씬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이렇게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거나 시도하는데 있어서 원래도 거리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더 적극적이 됐다.

급기야 사람만나는 것에도 부담을 좀 덜었다. MBTI의 극I형을 가진 나는 근본적으로 인간을 싫어하고 관심도 없고 됐었으면 피하려고 하는 편이었는데 그 시기를 떠나보내며 마치 긴 터널을 통과한 느낌이었다.


스스로 많이 바뀌었구나 하는 걸 가장 크게 느낀 사건도 있었다. 운동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피곤이 우선이라 운동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무작정 가볍게 시작하기로 했다.

집 근처 대학교 운동장에 가서 무작정 걷고 계속 돌기 시작했다. 나갈 때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혹은 혼자 열심히 트랙을 돌고 있었다. 

어느 세계에 가도 매니아나 이미 그 세계에 발을 딛은 사람들이 수 없이 많다는 점을 또 혼자 열심히 곱씹으며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을 들으며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걷다가 어떤 어린이가 멀리 찬 공이 내 발 앞에 도달했을 때 나도 모르게 그 공을 다시 발로차주었다.

애써 무시하고 지나갈 법했지만 나의 성향 자체가 180도 바뀐 순간이었다. 공을 받아든 어린이가 환하게 웃으며 답하는 얼굴을 보니 처음으로 새로운 종류의 뿌듯함을 느꼈다. 새로운 시도는 새로운 느낌을 가지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진 타로심리자격증과 타로카드 그리고 약간의 용기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물꼬가 트인 사건도 생겼다. 친한 후배의 타로점을 봐주게됐다. 연애운과 직업운, 금전운을 봐줬다.

실물의 남을 대면하며 봐준 첫 타로점이었다. 

다행히 뽑힌 타로카드들은 질문자인 후배의 마음에 드는 대답들을 해줄 수 있는 카드들이었다. 


타로카드의 의미를 해석해주면서 누군가의 질문에 현답을 해주기 위해서는 좀 더 내공을 쌓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좀 더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표현을 한다거나 아름답게 포장해서 수려하게 말해야 할 필요성도 느꼈다. 


타로는 한 편의 소설과도 같았다. 기승전결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른셋, 타로 시작하기 좋은 나이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