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가교환의 법칙을 나이가 드니 새삼 느끼고 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점을.
대신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는 것. 삼십대가 되고부터 스케줄을 작성하거나 다이어리를 쓰는 일에 더욱 집착하고 있다. 이것도 어쩌면 일종의 강박증일 것이다. 뭔가를 쓰지 않거나 읽지 않으면 슬슬 불안한 증세다. 실제 영어사전에는 비슷한 단어도 등재돼 있다. 'abibliophobia 읽을거리가 떨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내가 여기에 해당한다.
하나를 채우면 하나를 비워야 마땅하거늘 뭔가를 배우거나 채워넣는 행위야 말로 늙지않는 비결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끊임없이 등가교환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인연에 있어서도 연연해하지 않게 됐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만나고 흩어지는 때가 있음을 말하는 시절인연처럼 가는 인연 붙잡지 않고 오는 인연을 막지않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사람사이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기준점에 나를 최우선으로 두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있다. 예의를 갖추되 상대방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선을 지키고 있다.
타로카드를 공부하면서 많이 내려놓게됐다. 나의 주업이자 본업, 주된 생계수단의 일이 끝나야 생겨나는 소중한 말미를 활용해 채워야하는 일인 동시에 그 외의 것들을 채워넣을 여력은 내게 없기 때문이다.
대신 타로카드를 공부하는 일은 벅차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즐거움에 가깝다. 신기하다. 카드 한 장 한 장이 상황에 따라 질문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는 것도 신기하고 타로카드가 지니고 있는 무한한 조언의 메시지가 경이롭다.
카드 속에도 하나를 채우면 하나를 내려놓는 세상의 이치가 들어있다. 이를테면 6번 소드 카드의 경우 6개의 칼이 꽂힌 배에서 뱃사공이 열심히 노를 저어 앞으로 가고 있다. 얼핏보면 부정적인 의미의 카드 같지만 오른쪽 파도의 강한 물결에 비해 왼쪽 물결은 잔잔하다. 이는 세상 속 모진 풍파에도 해결방법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속된 말로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 배에 앉아 웅크린 듯 보이는 한 여성과 어린아이도 이 파도를 헤치고 나가면 다시 잔잔한 일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나타낸다.
카드의 해석또한 더 나은 곳으로 이동하는 이동수를 의미하고 주변에서 도와주는 제3자가 나타난다거나 현재까지의 어둡고 두려웠던 부분이 해결되고 밝은 미래가 다가옴을 의미한다.
5번 컵카드도 비슷하다.
잔뜩 풀이 죽어있는 듯 보이는 한 사람이 검은 망토를 두른채 망연자실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앞에 놓인 컵 3개는 쓰러져 물이 엎어졌을지라도 그의 등뒤에 서있는 컵 2개는 아직 건재하다.
실제 그의 앞에 강물이 흐르는 것으로 보아 새로운 생명력을 나타내고 활기찬 흐름이 아직 존재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카드 또한 부정적으로 보이나 긍정적인 흐름으로 자주 읽힌다.
앞에 쓰러진 컵 보다는 뒤에 아직 남아있는 컵에 초점을 맞춰서, 새롭게 들어올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서 해석해야 한다.
음이 있으면 양도있다는 이 세상의 법칙을 알려주는 카드들이다. 그러니 세상 어떤 일에도 주눅들 필요가 없다고. 꿋꿋하게 이겨내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인연이든 재물이든 행복이든 무조건 양 손에 꽉 쥐고 있으려고 했던 날들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라도 더 꽉 쥐려고 할 수록 조금씩 새어나갔다.
어떻게든 붙잡으려던 인연은 제 발로 올 땐 언제고 점점 홀연히 사라져갔고 욕심을 부리면서 잡고있었던 인연도 말도안되는 사소한 이유로 멀어져갔다.
더 아이러니한건 내려놓으니 다시 돌아온다는 거였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니 때가 왔고 그 때의 내가 마침 준비가 돼 있다면 다시 소중한 인연으로서 손붙잡고 앞으로 나아가면 그만이었다.
인간에게 조바심은 필연적인 부분이지만 누가 이것을 먼저 과감하게 내려놓을 줄 아느냐에 따라 행복의 척도가 정해지는 것 같다. 모든 것으로부터 초연하고 여유가 생길 때 비로소 얼굴에도 여유가 돌고 그 여유가 남에게도 느껴지고 전달되는 것이다. 그러면 내려놓는다해도 다시 그것은 내 것이 되어 돌아올 것이고 그 때 더 큰 행복으로 누리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