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늘 아침 생각했다.
영화 <부산행>에서 나오는 좀비들,
그들의 눈이 회색으로 변하는 것은 파충류를 관찰한 감독의 경험에서부터가 아닐까 하고.
나는 파충류를 키운다.
육지거북.
파충류.
등딱지가 귀엽고 예쁘지만 탈피를 하고 비늘로 몸이 덮힌 파충류이다.
으악!
그리고 온통 흰 눈을 보았다.
마치 사람의 눈동자가 없는 흰자위만 있는 것 같은 그런 눈.
흰자위로 가득한 눈을 말이다.
내가 키우는 육지거북에서.
그 거북이는 눈병에 걸린 것일까.
나도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그 거북의 눈이 그렇게 생겨버렸다.
사실 그걸 발견한 것은 어제 아침이었다.
아니 며칠 전이라고 말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눈을 보았는데 눈에 뭔가 하얀 점 같은 게 올라온 것이다.
별거 아니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어제 보니 눈의 70프로를 덮을 만큼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약 삼십프로의 검은 눈동자가 보였다.
이런......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혹시 내가 고양이를 키우면서 육지거북에게 관심이 줄어들어서 그런 일이 생긴 것일까.
그건 나도 모르겠다.
이주 전쯤, 나는 새끼 고양이를 들였다.
거금 백팔십오만원을 주고.
집안 분위기는 새끼 고양이의 생명력과 활기로 한층 더 밝아졌다.
그리고
나에게도 같이 잠 자는 동반자가 생겼다.
각방을 쓰는 남편 말고.
남편과 나는 각방 십년차.
코골이가 표면적인 이유이지만 그 내부를 까보자면
음......
마치 양파를 까는 것처럼 어지러울 것이다.
아무튼, 남편과 나의 관계는 각설하도록 하고
밤에 나와 함께 잠자는 그런 반려자가 생긴 것이다.
그 반려자는 지금 내가 컴퓨터로 글을 쓰는 동안에 바로 이 컴퓨터 옆에 있다.
믿을 수 있겠는가.
바로 이 컴퓨터 옆에 고양이가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다는 것을.
그것도 몇십분 동안.
그렇다.
나는 무릎냥이,를 얻은 행운아인 것이다.
이 아이는 내 곁에 있으면서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다.
그저 내 곁에 머물 뿐이다.
바로 내가 정확히 원하는 그런 애완동물의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실로 경탄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아이를 두고 어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으랴.
이 아이가 밤에 내 머리를 잡아당겨도 괜찮다.
이 아이가 밤에 내 다리를 물어도 괜찮다.
그리고 이 아이가 내 이불에 쉬를 싸도 괜찮다.
나는 한동안 이 아이에게 폭 빠져 있었다.
아니 지금도 이 사랑스러운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이 아이가 나를 지켜주는 요정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내가 고양이에게 사랑을 느낀 후로
당연히 기존에 키우던 육지 거북에 대한 사랑은 조금 식었다.
예전처럼 케이지에서 꺼내서 눈맞춤을 하거나 껍질을 쓰다듬어주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먹이만 열심히 줄 뿐이었다.
그것으로 할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머지 여가 시간은 고양이와 노는 데 보냈다.
그런데. 그런데,
바로 오늘 아침에
흰자위만 있는 듯한,
사실은 하얀 막으로 덮힌 육지거북의 왼쪽 눈을 보고만 것이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내 일과는 아침에 소설을 수정하거나 쓰는 것으로 시작한다.
요새는 한창 쓴 소설을 수정하고 있다.
보통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여섯시나 다섯시인데
기다렸다가 아침 일곱시에 문을 여는 스타벅스에 가서
글을 쓴다. 오, 너무 귀여워.
내 랩탑 옆에서 잠자는 고냥이.
잠깐 한눈을 팔았다.
난 행운아임에 틀림없어.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오늘은 이따가 병원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달려가야 한다.
육지거북을 위해.
그래서 오늘은 스타벅스에 가지 않았다.
대신 집에서 카누를 마셨다.
그래서 오늘의 커피는 카누가 되었다.
사진 찍어야지.
우리 고양이.
내 랩탑 옆에서 조용히 잠자는 고양이를.
나만의 고양이, 아기를.
아니 이런
내가 일어날 기미를 보이자 고냥이도 따라 일어나는 게 아닌가.
안 돼!
난 네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잠깐만 있어줄래. 플리즈
순식간에 사진기를 가져왔다
하지만 그 순간 아이는 자세를 바꾸었다.
키보드 앞에서 졸고 있다가 자세를 곧추세웠다.
그 사진이라도 남길란다.
넘나 귀여우니까.
아무튼,
이따가 육지 거북을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함으로
오늘의 커피는 별다방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집에 있는 카누였다는 거.
하나가 아닌 두 봉지를 때려 마셨다는 거.
그게 오늘 글의 주제이다.
고양이 이야기가 더 많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