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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Jan 04. 2024

야옹이가 사는 세상

내가 사는 동네에는 고양이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지금까지 칠년동안 이 아파트 단지 안에 살았는데 그동안 고양이를 본 횟수는 다섯 번 남짓이다. 흔히 그 동네의 인심은 길고양이를 대하는 주민들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길고양이들이 비교적 맘 편안히 잘 지내는 곳이면 사람 냄새나는 살기 좋은 동네이고 반대의 경우라면 살기 퍽퍽한 곳이라는 말이다. 


이 동네는 길고양이를 품지도 못할 만큼 삭막한 곳인가. 생각해 본다. 그럴지도 모른다. 아파트 단지 안은 온통 콘크리트에다가 사람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비닐에 꽁꽁 싸매어 그마저도 노란색 플라스틱 통에다가 버린다. 고양이들이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구조이다. 


하지만 반대로 길고양이들이 자주 보인다면 어떨까. 

그것은 그것대로 매우 신경쓰일 것이다. 

길고양이들의 퍽퍽한 생활이 눈에 그려져 그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플 것 같다. 


이 동네에는 고양이들이 정녕 없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딘가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나는 그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걸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며 그들의 생존과의 사투를 외면하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는 건 아닌지. 그들을 돕기 위해 뭐라도 시작하기에는 주변의 상황과 부딪혀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두려워서 그저 그들은 이 동네에는 살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나는 해야 할 일이 없다고 책임을 도외시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본다. 


성경에 보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등장한다. 강도를 만나 모든 걸 빼앗기고 두들겨 맞기까지 한 사람을 도와준 자가 지나가던 사마리아 인이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어려운 이를 도와준 사람이 곧 그의 이웃이라고 했다. 

나는 길고양이들의 이웃인가, 아닌가. 


내가 사는 이 동네에서 지난 여름 울고 있는 고양이를 본 적이 있다. 다 자란 성묘였는데 마치 데려가 달라는 듯이 울고 있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냥 집에 오라고 했다. 아기 고양이였으면 데려왔을까. 그 고양이는 그 뒤로 본 적이 없다. 부디 누군가 구조해 주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이 동네에는 고양이가 없지만 직장이 있는 동네에는 길고양이가 많다. 


차마 거론하기조차 가슴 아픈 고양이를 본 적이 있다. 온 몸이 상처 투성이였던 아이. 배에 큰 상처 자국이 있고 꼬리는 어디서 잘렸는지 뭉툭했다. 발은 절름거렸고 눈 한쪽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나는 그 아이를 보자마자 따라갔고 아이는 도와달라는 듯 저만치 앉아 있었다. 이 아이는 무조건 구해야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해 얼른 오라고 했다. 남편이 오는 동안 아이는 앉아 있고 나는 남편과 통화를 하며 아이가 제발 떠나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남편이 올 때까지 있어주기를. 


이십분 정도 지난 것 같다. 가만히 앉아 있던 아이는 차 밑으로 가더니 타이어 옆에서 배를 뒤집어 보였다. 나에게 호의를 표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머리 속에서는 아이를 구조하면 동물 병원에 데려가야 하고 집에는 두 마리 고양이가 있는데 합사가 가능할까, 실패하면 어쩌지, 등의 복잡한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그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부담주기 싫다는 듯, 자신은 괜찮다는 듯, 그 고양이는 등을 돌려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깊은 수풀이라 잡을 수 없는 곳이었다. 내 심장이 좀 더 뜨거웠다면 그 고양이를 놓치지 않았을까. 그저 꽉 껴안고 미친 사람처럼 도와줄 사람을 찾아 어떻게든 살렸을까. 내 마음은 그저 그 아이를 바라보기만 할 정도로 미지근한 온도였던 건가. 그 아이만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살리지 못한 죄. 적극적으로 돕지 못한 죄. 나는 평생 그 마음을 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 후로도 새끼 고양이를 본 적이 있지만 하악질을 한다는 이유로 구조하기를 멈췄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길고양이를 본다는 것은 반가움이자 엄청난 부담감이다.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과 도움을 주지 못하는 나와의 간극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래서 나는 어쩌면 우리 동네에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매일 안도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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