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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원 Aug 17. 2023

노르웨이 금쪽이 이번에는 제대로!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

노르웨이 관련 매거진이 석사 때 <첫 번째 노르웨이> 그리고 박사 때 <두 번째 노르웨이> 이렇게 나뉘어 있는데, <첫 번째 노르웨이>의 중후반부를 보면 온갖 깨달음과 절망과 불만인 글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두 번째 노르웨이> 초반을 보면 "이번엔 뭔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써놨는데, 또 글들이 다시 예전과 비슷한 분위기로 채워지고 있다.


그래서 터키에서의 좋은 기운을 그대로 이어서 두 번째 학기부터는 노르웨이 금쪽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삶의 변화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선 첫 번째로 차를 샀다.


한국에 있을 때 노르웨이로 오기 전 5개월 정도 차를 사서 몰았던 적이 있었다. 진작에 샀었어야 했는데, 항상 노르웨이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번거롭지 않기 위해 안 사고 있었다. 그리고 첫 박사 면접을 떨어지고 나서, 이렇게 애매하게 살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되겠다 싶어서 차를 구매했었다. 그리고 그다음 박사 면접을 붙게 되어서, 5개월만 몰고 다니다가 다시 팔았지만..

(세금까지 포함해서 사고팔고 하는 과정에서 1000만 원 정도를 잃었다. 한 달에 200만 원...)


서울에 살다 보니까 별로 차에 대한 필요성도 못 느꼈고, 뭔가 어려서부터 집부터 사고 차를 사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꼭 필요하지 않으면 안 사려고 했는데, 테니스 레슨 받는 곳이 멀리 있었어서, 매번 택시 타고 다니기가 오히려 돈이 아까워서 차를 샀었다. (하지만 결국 한 달에 200만 원 낸 꼴이 됐지....)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나서는 새로 사는 애플의 제품도 아니면 특정 브랜드의 의류도 10대 때나 20대 때만큼의 만족감을 주지는 못했었는데, 차는 옛날만큼의 만족감을 주었던 상품이었다.


뭔가 어른이 된 느낌도 들고, 교통편이 안 좋아서 안 가게 됐던 장소나, 못했던 활동들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누가 차를 사는 게 이동수단을 사는 게 아니라, 노래방을 사는 거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도 은근히 재밌었다.


아무튼 그래서 노르웨이에서도 다시 어른이 되기 위해서 차를 샀다. 아직 나는 노르웨이에서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태라 출퇴근 시에 여자친구가 운전을 해준다.


그리고 이번에도 차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한국처럼 집 앞에 다이소나 GS25가 있는 게 아니어서, 뭔가 음식 외의 물건을 사려면 항상 시내나 다른 지역에 갔어야 했는데, 예전에도 말했듯이 내가 이쪽 지역 버스 타는 것을 너무 싫어해서 잘 안나가게 됐었다. 그래서 활동 범위가 갈수록 줄어들었었는데, 이번에 차를 사고, 저녁에 할 게 없으면 옆 동네에 있는 이케아에 가서 뭐 쓸데없는 물건을 산다던가, 아니면 시내에 나가서 한국 라면을 사 온다던가 하면서 자유롭게 지내고 있다. 물론, 내가 운전하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최근에는 좀 멀리 있는 해변에 갔는데, 토르 라그나로크에 보면 토르와 로키가 헬라를 처음 마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약간 그런 느낌의 장소였다.

이 장면 기억 하시나요?
이런 느낌?

노르웨이에 원래 오면 사실 자연을 봐야 하는데, 나는 자연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잘 안 다녔다. 사실 자연에 관심이 없다기보다, 원래 여행을 해도 랜드마크들은 잘 안 찾아다녔던 것 같다. 그냥 사람들 만나는 걸 더 좋아하다 보니까, 친구가 있는 곳에 가서 친구가 가자는 데로 그냥 따라다니는 편이다. 그래서 여행을 가도 그냥 그 친구 집에서 쭉 있어도 사실 큰 상관은 없다.


그런데, 차를 타고 여자친구와 강아지 찰리 이렇게 셋만 처음으로 나오니까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괜찮았다. 뭔가 차를 산 자유로움을 테스트해보고 싶었는데, 이곳에 온 게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해변가를 걸어 다니다가 신기한 광경을 봤는데, 근처에 목장이 있어서 젖소들이 엄청 많이 있었는데, 갑자기 젖소들이 줄지어서 해변가를 걸어가고 있더라.

소금물 마시면 목 더 말라!

최근에 생성형 AI로 다양한 그림 및 사진들을 만들 수가 있게 되었는데, 약간 그런 느낌이었다.


"이게 맞나?"


아무튼 그렇게 신기한 광경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차는... 옳다!


그리고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사실 미세먼지도 있고, 마땅히 달리기를 할 장소가 없었어서, 헬스장에서나 보통 러닝 머신을 뛰고는 했었는데, 이곳은 어딜 가도 달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달리기를 했었던 때가 이곳에서 석사를 할 때니까 5년 정도 됐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코로나도 있고 해서 거의 안 하다가 5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뛰었다. 집 옆에 호수가 있는데, 한 바퀴를 돌면 3KM다. 그래서 오랜만에 뛰었는데 19분이 나왔다. 그런데 정말 하늘이 노래져서 집 오는 길에 잠깐 앉아서 쉬었다. 그래서 5년 전에 내가 여기를 몇 분만에 뛰었는지 앱에 기록된 예전 기록을 보니 14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물론 나이가 5살 더 먹어서 줄은 걸 수도 있는데, 아마 그냥 운동 부족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예전 기록에 도달하기 위해 일주일에 3번 정도 호수를 뛰기 시작했다. 몇 번 뛰고 나서 기록을 줄이긴 했는데, 아직 최대 노력으로 뛰어도 16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그리고 Strava라는 앱을 쓰는데, 그 앱에 보면 이 코스를 뛰는 사람들의 기록도 볼 수 있다. 가장 빠른 사람의 기록을 보니 8분 14초다.

"응? 원래 다들 이 정도 뛰나?

그래서 올림픽 기록을 뒤져봤는데, 7분 29초다.

역시, 이 쪽 사람들은 일보다 취미에 목숨을 거는 게 맞는 것 같다.


아, 그리고 스타방에르는 아니지만, 옆 동네 산네스 출신의 Jakob Ingebrigtsen이라는 장거리 육상선수가 있는데 도쿄 올림픽에서 1500 미터 금메달도 땄고, 현재 시점 1500미터 세계랭킹 1등이라고 한다.

또, 엘링 홀란드도 옆동네 Bryne이라는 곳 출신이다. (정확히는 부모님 고향이 이곳이다.)


뭔가 스포츠 명가의 지역이라 그런지 일반인들도 다들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이 지역의 룰에 맞춰 게임을 하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려고 한다. 3km 목표 시간 10분!


마지막으로 마인드를 좀 고쳐보려고 노력한다.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심리 상담을 한 6개월 정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상담 선생님이 극찬을 했던 방법이 있었다. 나보고 화가 나는 상황에 어떻게 감정을 조절하냐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의 대답은

"아 요즘 자주 쓰는 기술인데, 화가 나는 순간에 그냥 멍 때립니다."


이게 뭔가 화를 가라앉히고 그러는 건 아니고, 그냥 나의 화가 말과 행동으로 표현됐을 때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 그냥 컴퓨터 화면 잠금 하듯이 멍 때리는 기술이다.  (아마 약간 ADHD 기질이 있어서, 잘 되는 기술인 것 같다.)


뭐 물론 저렇게 한다고 해서, 화가 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내 기분이 풀리는 것도 아닌데 가장 중요한 거는 지금의 화가 내 바깥에 영향을 주지 않게 하는 것이니까, 결과적으로 봤을 때는 가장 손해를 적게 하는 기술이다.


아무튼 저 기술을 상담선생님이 극찬을 해줬었다.


그래서 약간 비슷한 기술을 여기서도 쓰려고 한다.


여기서의 문제는 화 이런 것 보다 (뭐 결국엔 화가 나긴 하지만), 약간 내가 태도나 생각이 부정적으로 쉽게 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서, 날씨가 워낙 안 좋으니 바깥만 보면 일단 "하...ㅅㅂ"라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러다 밥 먹을 시간이 되면, 역시나 뭐 음식도 잘 안 맞고 별로기도 하니까, 선택지가 없음에도 뭘 먹을지 고르는 나를 보면서 또 "그럼 그렇지..." 뭐 하루하루 작은 것들에 다 부정적인 마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뭐 누구는 긍정적으로 보라고 하는데, 뭘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 까지 긍정적일 필요가 있을까.


"물이 반밖에 없다", "물이 반이나 있다." 이렇게 양자택일을 해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이 됐었는데, 요즘은 새로운 기술인 "물이 있다" 기술을 쓰고 있다.


억지로 긍정적일 필요는 없지만, 그럼에도 부정적인 건 어찌 되었건 이득보다 손해가 많을 테니 안-부정적이려고 노력을 한다.


그래서 요즘은 비가 오는 날씨를 보면, "우산을 쓸까, 우비를 입을까", 음식이 별로면 "뭐가 단백질이 더 많지" 이런 식으로 상황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부정적인 태도를 한번 시작하면 정말 한도 끝도 없이 커져서 삶의 패턴이 꼬여 버리는데, 안정적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가끔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시 옛날의 태도가 나올라고 하는데, 조심하면서 제거해가고 있다.


사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이 있기는 하다.


- 왜? 나만 이렇게 적응을 못하지?

- 나만 못하는 게 맞나?

- 다들 상당히 만족스럽게 사는데?

- 그냥 그렇게 보이는 건가?


그런데 이 궁금증이 해결된다고 생각을 해보니, 또 내 삶이 달라질 건 없더라.


굳이 생각의 중요도를 순서대로 나열해보면,

내가 생각하는 나 > 남이 생각하는 나 > 내가 생각하는 남 > 남이 생각하는 남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남이 생각하는 남'을 궁금해하고 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출제오류로 판정하려고 한다.



Photo by Darya Tryfanav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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