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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원 Aug 24. 2023

응, 이미 나는 나를 소중하게 대했음

아침 운동의 효과

이제 본격적으로 학기가 시작되었다.


방학중에는 캠퍼스에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없었는데, 다시 학생들이 돌아오니 이곳저곳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노르웨이는 보통 8월 중순에서 말에 가을학기가 시작되고, 많은 서양의 나라들처럼 이곳도 가을학기가 1학기다.


그리고, 학기가 시작하면 버스 타는 게 더욱 고역이 되는데, 수업들이 8시 15분에 시작하는 것들이 있어서 8시 근방으로 버스를 타면 항상 발 디딜 틈도 없이 만석이 된다. 그리고 한국처럼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고, 그 와중에 약간의 거리를 유지해서 실제 사람 수에 비해 더 좁게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는 차를 샀기 때문에, 이제는 차를 타고 출근을 한다. 학교에 도착하면 8시 정도가 되는데, 그러면 나는 바로 헬스장으로 향한다.


뭔가 운동을 하고 싶었다기보다 바로 사무실에 가기가 싫었다. 1학기 때는 근면 성실하게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고를 했는데, 이번 학기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뭔가 보이지 않는 감시자에게 "내가 성실하게 일하니 제발 안 좋은 일 없게 해 줘"라는 어필을 하려고 늘 이렇게 살아왔는데, 더 이상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일은 원래 또 집에서도 이어서 해서, 이 출퇴근 시간이 나한테 의미가 있나 싶다.


일단 여자친구는 출근을 해야 하니, 나도 차를 타고 가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왔는데, 바로 사무실 가기는 싫고 해서 헬스장으로 바로 향한다.


그리고 지금 2주 동안 매일 아침에 헬스장을 가고 있다.


예전에 I와 운동 관련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는데, 이게 아침에 운동을 하는 게 퇴근하고 하는 것보다 더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운동이 더 잘되고 효과적이고 그렇다기보다. 이제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나의 감정 상태나 실제 상황들은 변수가 별로 없지만, 퇴근을 할 때까지는 각종 변수의 의해 실제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가 있다는 관점이다.


아침에 운동을 하는 건 항상 번거로운 일이지만, 딱 그 정도다. 하지만 출근을 하고 온갖 사람과 업무에 시달리다가 퇴근을 하고 운동을 하기에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건너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꼭 안 좋은 이벤트뿐만 아니라, 갑자기 약속이 잡힐 수도 있고 해서, 이래 저래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기가 어렵다. 물론 운동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둔다면 상관없겠다만, 그 정도까지 운동에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다.


아무튼 그렇게 9시까지 운동을 하고 이제 출근을 해서 일을 시작한다. 뭐 일을 할 때는 똑같다. 일 때문에 스트레스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 아침에 운동을 했다고 해서 더 맑은 정신이 있고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하루는, 아침에 운동을 하고, 사무실에 가서 일을 하다가 평소와 마찬가지로 지루함과 나와 결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고 퇴근을 했다. 그리고 소파에 누웠는데,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뭔가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서 그냥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안돼.. 이렇게 주변에 휩쓸려서 나를 망치면 안 돼..."라고 자책을 하면서 유튜브 쇼츠를 넘기는 와중에 문득, "어? 그런데 아침에 운동을 갔다 왔었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미 나를 위해 뭔가를 했었다는 생각에 죄책감 없이 마음 편하게 빈둥거리기 시작했다.


그걸 깨달은 다음에 학교에서 또 스트레스받는 일이 생기면, "응 나는 아침에 이미 운동 갔다 옴"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집까지 그 스트레스를 끌고 오지 않기 시작했다.


뭐랄까. "나는 이미 나를 소중하게 대했거든?"이라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33살이 될 때까지 이런 생각 또는 기분이 든 적이 없었는데, 마음에 보호막이 생긴 것 같다.



한국에 있을 때는 어떤 식으로 나를 보상을 했었냐면, 퇴근하고 쿠팡이츠로 김-떡-순을 시키고 맥주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는 식으로 보상을 했었다. 물론 이것도 좋긴 한데, 뭔가 나를 소중하게 대한다는 느낌보다, 어릴 때 착한 일 했으니 사탕 하나 받아먹는 느낌의 보상이었다.


됐다.


드디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나를 소중하게 대하지 않으면, 나의 하루는 남들한테 봉사만 하다가 소모되며 끝나는 것 같다. 그리고 다음 날 또 일어나서 그 과정을 반복하고.. 퇴근 후 나를 소중하게 하기에는 이미 나는 너무 정신적으로 너덜너덜 해져있기 때문에, 출근 전 미리 당겨서 소중하게 대하기로 했다.


모두가 다 행복하게 사는 노르웨이에서 나만 불행하게 살 수는 없지.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 스스로 나의 하루를 망가트릴 때마다 속으로 이런 말을 하면서 나를 다그치고는 한다.


너 이렇게 살면 너만 병신 되는 거야!



행복을 찾아서 편 마무리.



Photo by D Jone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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