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의눈 Jun 30. 2023

마케터도 일일교사를 할 수 있을까

디자이너 엄마였다면 좋았을걸

딸아이 어린이집에 '일일교사' 신청을 했다가 떨어졌다.

작년에도 반별 1명씩 일일교사를 모집했지만 6월부터 연차를 많이 쓰는 게 부담되어서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엄마도 우리 어린이집에 왔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날 저녁 내내 '나도 엄마가 어린이집에 왔으면'이라고 노래를 불렀다. 하루만 지나면 까먹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ㅇㅇ이 엄마가 어린이집에 와서 밥 먹는 거 도와줬어. 우리 엄마도 오면 좋겠다"
잘 놀다가도 한 번씩 불쑥불쑥 말을 꺼냈다.

오죽 부러웠으면 그랬을까. 그래! 엄마가 갈게! 약속할게!
'다음번엔 꼭 신청하리라' 마음먹고 다음번 일일교사 모집공지를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공지가 떴다.
공지사항을 보자마자 바로 신청댓글을 남겼지만 이미 다른 학부모의 댓글이 먼저 작성되어 있었다. 연차를 쓸 수 있는 날인지 날짜 체크를 한다는 게 한 발 늦어버렸다.

아쉽지만 내년을 기약하고 일일교사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는데 어제 학부모수업을 잘 진행했다며 알림장이 올라왔다.

우리 아이반의 일일교사인 다온이 엄마는 성우라고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캐릭터에 더빙 시범을 보이고, 아이들이 직접 더빙을 해보는 시간도 가진 것 같다. 딸아이 가방에는 '어린이 성우 임명장'이라는 종이와 작은 젤리 선물까지 들어있었다. 다온이 엄마는 놀이터에서 종종 마주치고 우리 집에도 놀러 온 적이 있는데, 볼 때마다 '아이랑은 저렇게 놀아주는구나'라는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육아의 고수였다. 커다란 분홍색 리본핀을 머리에 꽂고 유치원 선생님 뺨치는 텐션으로 아이들을 리드하는 모습을 보니 존경심마저 들었다.

다른 반 친구인 지윤이 엄마의 일일교사 이야기를 듣고 또 한 번 놀랐다. 지윤이 엄마는 디자이너인데, 아이들을 위해 직접 색칠도안을 만들어갔다는 것이다. 음식재료에 색칠을 하고, 오려서 합치면 요리가 되는 만들기 활동이었다.

두 학부모의 일일수업을 보며 '내가 일일교사를 안 해서 오히려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도 어린이집에 오면 좋겠어!"
"엄마도 가고 싶었는데... 다온이 엄마가 먼저 신청해서 엄마가 양보했어"
"그럼 내가 다음에 다온이 한 테 양보해 달라고 할게! 꼭 와야 돼? 약속?"
섣불리 '약속할게!'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만약 내년에는 신청에 성공한다고 해도 마케터인 내가 6세 아이들을 위해 어떤 수업을 준비할 수 있을까?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6~7살 애들 대상으로 글쓰기 강좌를 할 수도 없고.. 지윤이 엄마처럼 디자이너라면 딸아이가 좋아하는 색칠, 만들기 활동을 준비할 텐데 그런 쪽에도 재주가 없다.

딸아이가 직업에 대한 개념이 생기고, '엄마는 무슨 일을 해?'라고 물으면 어떤 대답을 해줘야 할까도 고민되기 시작했다.
유치원생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마케터의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마케터가 천성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엄마의 직업'으로서는 좀 재미없는 직업인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 회사에 놀러 갈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