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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의눈 Jun 27. 2023

엄마 회사에 놀러 갈래!

사무실육아기

가끔 아이를 회사에 데리고 갈 때가 있다.

오후 3시가 넘어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미열이 있다고 전화가 오거나, 신랑이 등하원 담당인 날 갑자기 일이 생기는 날.
워킹맘은 비상사태를 위해 연차를 최대한 아껴야 한다.
그럴 땐 내가 아이랑 출근했다가 신랑이 중간에 데리고 가거나, 신랑이 회사로 데려다주면 내가 아이를 데리고 있다가 같이 퇴근하기도 한다.
아기용품 회사이다 보니 실제로 아이가 제품을 사용해봐야 하는 상황일 때 테스터 명목으로 데려온 적도 있었다.

한 번은 신랑이 아이 하원을 시켰는데 이사 때문에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 어쩔 수 없이 우리 회사로 데려다주었다.

"안녕 ㅇㅇ아, 이모 기억나?"
"ㅇㅇ아, 젤리 좋아해??"
딸아이를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오자마자 다른 직원들이 딸아이에게 간식 공세를 퍼부었다.
떠들썩한 환영식을 마치고 내 자리 옆에 촬영용 아기 의자, 책상을 대신할 보조의자, A4용지와 3색 볼펜을 갖다 주니 아이는 무척 좋아하며 신나게 그림을 그렸다.
딸아이는 워낙 낯을 안 가리는 성격이라 그런지, 예전에 몇 번 회사에 데리고 온 적이 있어서 그런지 이모삼촌들에게 제법 친한 척을 하며 애교를 떨었다.

"엄마 화장실 좀 갔다와도 돼?"
"응~"
그림 그리기에 집중한 틈을 타서 잠시 화장실에 다녀 왔더니 팀장님이 수그리고 앉아 뭔가에 집중하고 계셨다.
팀장님 손에 들려있던 것은 딸아이의 색연필과 커터칼..
팀장님은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심혈을 기울여 날렵한 연필 깎기를 선보였고, 잘 깎았나 요리조리 검사까지 한 후에 연필을 받아 드는 딸아이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모들한테 보여주고 올게!"
딸아이는 '팀장삼촌'이 깎아준 연필로 그린 그림이 만족스러웠는지, 그림을 들고 옆 부서로 쪼르르 달려갔다.

엄마한테 보여줘도 되는데 굳이..? 생각하던 찰나,
"우와!! 너무 잘 그렸다!"
"진짜 예쁘다!!"
과장 섞인 리액션이 들려왔다. 아, 그래서 굳이 저 팀으로 가서 자랑하고 싶었구나..
아까 간식을 줬던 이모들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아이를 데리고 있는 2시간 동안 업무는 거의 못하겠구나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딸아이는 이모삼촌들과 아이스크림을 먹고, 모든 부서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귀엽다는 칭찬을 듣느라 엄마를 찾지도 않았다.
아, 딱 한번 찾았다.
"엄마, 나 쉬 마려"

간식으로 두둑해진 주머니와 행복한 마음으로 엄마와 함께 퇴근한 딸아이.
그날 이후 한동안 아침에 등원준비를 할 때마다
"나 오늘 엄마 회사에 놀러 가면 안 돼?"
"엄마 회사에 놀러가고시프다"
라는 말을 했다.

엄마에게는 일하는 공간이지만 아이에게는 이모삼촌들이 간식 잔뜩 줘, 놀아줘, 귀여움을 독차지할 수 있는 곳이니 재미가 없을 리 없다.


아이의 방문을 반겨준 모든 직원들에게 마음속 깊이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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