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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훈 Aug 29. 2018

나는 과녁 달린 프라이팬이 갖고 싶다.

적당히 돈 써가며 게임하고 싶은 나의 길티 플레저

날아다니는 총알을 피해 풀숲으로 몸을 숨긴다. 망원경을 통해 맞은편 나무 뒤에 숨은 적의 동태를 살핀다. 슬쩍 드러난 적의 등 뒤에 총을 쏘려는 순간 무언가 번쩍인다. 상대가 둘러메고 있던 방탄용 프라이팬에 양궁에서나 볼 수 있는 화살 과녁이 그려져있다. 방심하고 감탄하는 사이 적의 총알이 내 캐릭터의 이마에 박힌다. 게임 오버.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온라인 게임 배틀그라운드 속 이야기이다. 이 게임의 목표는 고립된 전장에서 무기를 활용해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플레이어들은 기관단총, 권총, 헬멧, 조끼 등의 장비를 이용해 서로를 공격하고 방어한다. 상대를 죽이는데 세련된 무기는 필요 없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강하고 효율적인 무기가 가장 중요하다. 그럼에도 플레이어들은 하나 둘 자신의 무기에 효율과는 거리가 먼 멋을 부리기 시작한다. 기관단총에는 금색을 덧칠하고 얼굴에는 시뻘건 스카프를 두른다. 심지어 개발과정에서 실수로 탄생한 엉덩이만 보호할 수 있는 방탄 프라이팬에는 양궁 과녁 그림을 입혀주기까지 한다. 


이 같은 게임 내의 아이템과 자신의 캐릭터를 보기 좋게 치장하기 위해서는 유료 결제를 해야 한다. 물론 게임포인트를 차곡차곡 모아 몇 가지 아이템을 구매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게임포인트로 살 수 있는 아이템은 고작해야 하트가 그려진 티셔츠 따위이다. 단돈 2000원정도만 결제해도 때깔 좋은 벨벳 라이더 재킷을 입힐 수 있는데 말이다. 금색 기관단총이 더 강한 성능을 갖게 되는 것도 아니며 원색의 스카프는 오히려 상대의 눈에 쉽게 발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플레이어들은 승리라는 게임 본연의 목표는 잠시 접어둔 채 유료로 과금을 부과해가며 게임 내의 치장을 즐기고 있다. 


이는 온라인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바일 게임에서도 적용된다. 부루마블의 주사위가 그냥 하얀 정육면체가 아닌 모서리가 조금은 둥그스름하고 반짝거렸으면 좋겠으며, 모바일 고스톱 속 화투패의 비광은 우산 대신 솜사탕을 들고 있으면 좋겠는 게 플레이어의 작은 소망이다. 

그렇다면 왜? 앞서 말했듯이 치장을 한다고 게임상의 목표 달성을 위한 효율성이 높아지지는 않지만 결국은 자기만족이다. 사실 게임상에서 가장 많이 눈에 보이는 것은 상대가 아닌 내 캐릭터 자신이다. 슈팅게임의 경우 게임상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는 즐거움이 물론 주가 되지만, 실제로는 들어볼 일 없는 기관총을 어깨에 둘러매고 전장을 누비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일 만으로 누군가에게는 더 큰 오락성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런 내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캐릭터가 누더기 팬티보다는 조금이나마 더 전장에 모습에 어울리는 치장 혹은 게임 내 아이덴티티를 극대화해줄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플레이어로서의 작은 바램이다. 


물론 과금이 자기만족과 오락성을 넘어 게임의 효율성에 영향을 미치는 순간부터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주로 일대일 대결구도의 게임에서 결제가 게임 진행에 영향을 주게 되면 큰 불상사를 낳는다. 대표적인 예시로 넥슨의 축구게임인 피파온라인의 사례가 있다. 피파온라인은 자신이 감독이 되어 경기를 할 선수들을 직접 선발하고 플레이한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는 선수들의 겉모습을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를 하는 능력 자체를 돈을 통해 상향시킨다. 돈만 있으면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나름의 투자를 통해 최고라고 만들어놓은 선수조차 더 큰돈을 투자한 다른 플레이어의 선수 앞에서는 초라해져 버린다. 게임에서의 선수 가치 100억의 호날두를 만들어 놓았어도 1000억짜리 수비수 앞에서는 슈팅 한번 제대로 날리지 못한다. 1000억 짜리 수비수를 누가 만들까 싶지만 진짜 있다. 아예 스포츠 게임만 전문적으로 하는 게임 유튜버들은 수차례씩 실제 백만 원 이상의 금액을 결제해가며 좋은 선수들을 싹쓸이해가고 최강의 팀을 만들어버린다. 무과금 유저들은 돈이 없으면 승리도 없다는 통곡의 벽 앞에서 그들의 플레이를 그저 구경만 하는 신세로 주저앉는다. 


이런 플레이어들에게 공정성을 부여하기 위해 게임회사에서는 나름의 조치를 취한다. 작은 금액으로도 좋은 가치의 플레이어를 얻을 수 있는 일종의 랜덤박스와 같은 아이템을 판매하는 것이다. 물론 유료 결제를 유도한다.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 없는 플레이어들은 승리에 대한 희망에 눈이 멀어 소액 결제로 대박을 노린다. 결국 이것도 로또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금세 깨닫고 승리도 잃고 돈도 잃는다.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친 채로 쓸쓸히 게임을 떠난다. 


얼마 전 국내 게임회사 몇 군데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과 과태료 징계를 받는 일이 있었다. 확률형 랜덤 박스의 아이템 확률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소비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해 상품의 가치를 증대시켜 지출을 유도했다는 것이 이번 제재의 큰 사유였다. 소비자 기만행위로 해석되어 넷마블의 ‘모두의 마블’ 게임은 과태료 500만 원과 과징금 4,500만 원이라는 제재가 가해졌다. 모두의 마블은 2018년 8월 기준, 구글플레이스토어 모바일게임 순위 2위의 게임이다. 이러한 대기업 게임조차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사실은 돈 많은 플레이어들로 인해 게임으로만 상처받은 플레이어들에게 게임 외적으로 배신감까지 안겨주었다. 


나는 그래서 화살 과녁이 그려진 프라이팬이면 족하다. 결국은 즐기자고 하는 게 게임 아닌가. 그런 소망에 대한 대가로 오늘 마실 커피 한 잔 값 정도를 소비하는 일은 그리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예쁜 옷 입고 죽은 캐릭터가 때깔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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