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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훈 Oct 25. 2018

뒷북 심하게 치는 에어팟 리뷰

늦었지만 도저히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걸.

       
출시된 지 2년이 되어가지만 드디어 나도 에어팟을 샀다. 20만 원이 넘는 돈을 소비하는 일은 언제나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소비의 대상이 이어폰이라면 더욱 그렇다. 10년 전, 고등학생 때 아이팟 나노 4세대 MP3를 25만 원을 주고 샀었다. 그전에는 아이리버를 건전지를 갈아가며 사용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쩐지 건전지 값이 더 나가는 것 같다 싶어서 크게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그때는 한 달에 5만 원 남짓한 용돈을 받아썼던 가난한 학생 시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건전지 값 아끼겠다며 기존에 갖고 있던 온갖 돈 되는 물건은 다 팔아 치워서 돈을 모았던 기억이 있다. 결국 손에 넣은 아이팟은 스트리밍의 탄생 이전까지 내게 없어서는 안되는 물건이었다. 심플하고 모던한 색감 덕분에 보는 눈이 질리지도 않았고 거의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정도로의 변화에서 느꼈던 편리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때 애플 제품은 비싼 만큼의 값어치를 한다는 신뢰가 생겼다. 
    


얼마 전 가방 속에서 보조배터리선, 노트북 충전 케이블과 함께 엉켜있는 이어폰을 1분 넘게 풀어내다가 에어팟 구매에 대한 확신이 섰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오직 가격뿐이었지만 10년 전에 생긴 신뢰 덕분에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전에 애플스토어 공식 웹사이트에서 미리 결제를 완료하고 가로수길 애플스토어에 픽업을 위해 방문했다. 이미 결제를 마친 내 소유의 물건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지갑을 두둑하게 하고 쇼핑을 나서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설렘이었다. 간단한 절차를 마친 후 건네받은 에어팟의 비닐포장을 그 자리에서 뜯고 있는데 직원이 말을 건넸다. 
     
“축하드려요” 
아, 에어팟은 그런 물건이었다. 그건 분명 비싼 가격의 물건을 갖게 돼서라기보다는 조금 거창 하긴 하지만 신세계로의 환영 같은 느낌이었다. 물건을 사면서 축하한다는 말을 듣는 것은 분명 처음이었지만 이상하게 처음 받아보는 그 축하가 어색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에어팟이 얼마나 편한지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사실 당연한 소리지만 말할 것도 없이 가장 편리한 점은 무선으로서의 자유로움이다. 선이 없기 때문에 느끼는 편리함에 대해서는 이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다른 물건들을 통해서 우리는 이미 느껴본 바 있다. 유선 전화기에서 핸드폰으로의 진화, 여름에 들고 다녔던 미니 선풍기, 무선 청소기와 무선 마우스까지. 이러한 물건들의 출시 이후에 사람들은 다시 유선으로 돌아갈수 없었다. 본체와의 연결로 인해 생겼던 공간적 제약에서의 해방되는 자유로움은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가장 편안하게 해주고 있는 분야 중 하나라는 사실을 모두가 체감하고 있다. 
     
이어폰으로의 적용에서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과 이어폰 간의 거리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음악 감상뿐 아니라 동영상 감상도 한다. 핸드폰을 앞쪽에 내려놓고 동영상을 감상할 때에도 더 이상 거리를 따지지 않아도 된다. 이어폰의 선 길이가 내가 화면에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최대치였을 뿐 아니라 고개를 갸웃하는 일조차도 마냥 자유롭지는 못했었다. 물론 고개 좀 갸웃거린다고 늘 이어폰이 빠지거나 그렇지는 않지만 적어도 고쳐 껴야 하거나, 힘 조절을 잘못해서 기껏 세워놓은 핸드폰이 앞으로 쓰러지는 경험 정도는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헤드뱅잉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유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었던 자유가 늘어난 셈이다. 노트북과도 호환되기 때문에 노트북을 통한 동영상 감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책상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의자에서 마음껏 뒤를 젖힐 수 있는 상황이 생긴 것이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 중 하나이다. 스마트폰은 스마트폰이고 이어폰은 이어폰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둘 사이의 연결이 없으니 각자가 본연 스스로 자유롭다. 가령 방에 있다가 화장실에 가면서도 음악이 끊어지는 게 싫다면 내가 필요한 것은 음악이지 핸드폰이 아니다. 주머니에 핸드폰을 챙길 것 없이 무선 이어폰은 오로지 음악만의 이동을 가능하게 만든다. 단순히 행동을 하고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는 것은 꽤 중요하다. 
     
또 하나, 두 손이 자유롭다. 어쩌면 의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물론 기존에 선 있는 이어폰도 귀에 꼽는 것이지 손에 들고 다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손이 부족하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맞다. 하지만 분명히 우린 불편한 경험이 있었다. 단지 그런 순간이 너무 짧아서 느끼지 못했을 뿐. 그게 불편한 순간이었다는 사실을 에어팟을 사용해본 후에 알 수 있다. 가령 이런 순간이다. 귀부터 목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는 줄이 나를 크게 건드리지는 않더라도 얼쩡거리는 게 은근 거슬리는 순간이 많다. 놓치면 안 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잠시 달려야 한다면 출렁거리는 이어폰 선을 잠시 잡고 있어야만 했던 상황 같은 게 분명히 있었다. 특히 헬스장에 있는 TV달린 러닝머신을 달릴 때 소리를 듣기 위해 기계에 꽂아놓은 선이 출렁거리는 것이 너무 거슬려서 나는 TV를 소리 없이 보았다. 밖에서 러닝을 뛸 때에도 내가 뛰는 만큼 선도 펄럭이고 있었다. 심지어 에어팟을 구매한 저녁에 쌀국수를 먹으면서는 감성까지 폭발했다. 아 쌀국수를 먹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이어폰이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니. 흠 어쩌면 에어팟은 그저 감성을 극대화시키는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분명히 편리함이 시작 인건 맞다. 
     

쌀국수는 차돌쌀국수가 짱이다


선이 거슬리지 않게 되면서 자잘한 행동들이 자연스레 생략된다. 음악을 듣다가 잠시 멈춰놓을 때에도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딱히 거슬리게 나를 방해하는 선이 없기 때문에 굳이 빼놓지도 않게 된다. 그렇게 그대로 귀에 꼽은 채로 두었다가 다시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재생 버튼만 눌러서 이어폰을 뺐다 꼈다 하는 행동 없이 다시 음악을 듣는다. 사소한 행동을 생략함으로써 얻게 되는 편리함은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심리적 안정감도 있다. 나는 충전을 진행 중인 핸드폰에 이어폰을 끼고 있는 상황이 많이 찝찝했다. 배터리가 얼마 없는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충전을 하며 통화를 해야 한다든지 하는 그런 상황. 어쩐지 핸드폰을 충전시키고 있는 전류가 내 귀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 걱정에서 이제 자유로워졌다. 물론 블루투스 이어폰에서도 전자파의 영향을 받겠지만 적어도 전류를 다이렉트로 귀에 꼽는 건 아니니까 어느 정도 위안이 된다. 이 외에도 이어폰을 낀 채로 옷을 갈아입을 수 있으며, 목도리를 할 때 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사실 여태 이야기한 내용들은 에어팟의 편리함이라기보다는 선 없는 블루투스 이어폰으로서의 편리함이다. 에어팟이 다른 블루투스 이어폰에 비해 통화 음질이 깔끔하다거나 애플 제품이 갖고 있는 기술적 우수함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그저 나도 검색해보고 전달해주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디자인에 대한 부정적 평가들이 많은데 아직까진 에어팟을 낀 거울 속 내 모습에 한숨이 나온 적은 없다. 미적 아쉬움이 기능적 우수함을 넘어서지는 못할 정도의 물건이다. 사실 잘 눈에 보이지도 않아서 딱히 아쉬울 겨를도 없다. 그나마 불편한 점이 있다면 이어폰을 톡톡 두들기면 사용할 수 있는 Siri나 재생 멈춤 같은 기능들에 있어서 한 번에 되는 경우가 아직은 잘 없다. 알맞은 강도를 찾아내어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나는 10년을 안경을 썼었다. 지금은 수술을 받고 안경을 더 이상 쓰지 않지만, 무선 이어폰을 사용하면서 느끼는 생활 속의 편리함은 어쩌면 안경 쓰던 사람이 안경을 벗게 되면서 느끼는 편리함과 꽤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안경을 썼었다는 사실을 잊고 지낸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더 이상 더듬거리면서 무언가를 찾을 일이 없어졌고 라면을 먹을 때 더 이상 뿌옇게 흐려진 안경을 닦는 일이 없어졌듯이 어느새 나는 유선 이어폰을 사용하며 느꼈던 불편함에 대해서 잊고 지내게 될 것 같다. 외출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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