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언어의 중요성
통역을 하려면 외국어를 잘해야 한다
어쩌면 잘하는 수준을 넘어 아주 장악한 수준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통대에 합격하거나 졸업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오, 중국어는 완전 중국인이겠다!’ 하는 말을 한다. 기분 좋은 칭찬이다. 하지만 업계 내에서 생각해 보면 통번역사 선생님들은 일정 수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꽤 높은 수준을 이미 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외국어를 처음 접하고 습득하게 된 환경에 따라 원어민과 동일한 수준인 사람도 있고 뒤늦게 꾸준한 학습으로 최대한 공부했지만 원어민까지는 아닌 사람도 있다. 발음에서 그것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발음이 전부가 아니고 사실 내용이 훨씬 중요하지만 발음을 외국어 유창성 판단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따지는 우리나라에서는 발음 또한 최대한 원어민에 가깝게 다듬어야 한다.
그런데 발음이 원어민과 같고 일상회화가 자유자재로 된다고 해서 통역을 잘하느냐?
또 그게 그렇지가 않다. 통역이 일종의 기술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천적인 언어 재능은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하지만, 일단 통역이라는 기술은 따로 연습하고 단련해야 발전한다. 단순히 외국에 살고 원어민과 함께 생활하며 대화를 한다고 통역이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 (아, 참고로 이 글의 통역은 단순히 물건 사는 걸 도와주고 의전을 돕는 정도의 통역이 아니라 최소 비즈니스 회의 통역, 대개 국제회의 통역을 말한다.)
외국어, 즉 B언어는 대개 통역사의 모국어가 아닌 학습으로 습득한 언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역사의 B언어 실력은 일정 수준(이 역시 일반적인 생각보다 꽤 높은 수준) 이상이면 된다. 다만 외국어이기 때문에 이 수준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꽤나 힘들다. 그런 말이 있다. 외국어 공부는 경사로에서 굴러내려 오는 커다란 공을 받치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항상 힘써도 제자리를 유지하는 정돈데, 잠시만 힘을 빼면 뒤로 밀린다고 한다. 그만큼 매일 같이 공부해야 그나마 지금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 보니 평소에도 한국어 공부보다는 외국어 공부에 힘쓴다. 한국어야 어차피 매일 접할 수 있고 모국어라는 장점이 있어 굳이 따로 공부를 해야 하나 싶은 것이다. 그렇게 한국어 공부를 뒷전으로 두고 가지고 있는 밑천으로만 통역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일을 하면 할수록 느끼게 되는 것이 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통역사들 사이에서는 다들 공감하는 사실. 바로 우리는 ‘한국인’ 통역사라는 것이다. 외국어보다 한국어로 나오는 통역에 대한 기대치가 훨씬 크다. 통역사니 당연히 외국어를 잘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외국어는 조금 실수를 해도, 예를 들어 발음 실수를 해도 청자의 포용도가 생각보다 크다. 하지만 한국어 실수를 한다? 어색한 단어를 쓴다? 또는 한국어에 필러(ex. 그... 음... 어...)를 너무 쓴다? 그럼 청자는 외국어 실수를 할 때보다 통역사의 실력에 대해 더 큰 의심을 한다. TT(Target Text) 완결성으로 보아도 BA(외국어->한국어) 방향일 때의 요구치가 훨씬 높다.
공부할수록 어려운 것도 외국어보다 한국어다.
외국어 공부하듯 한국어 공부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도 애매하다. 그저 많이 읽고 많이 써보는 것뿐. 언어풀을 늘리고 자주 사용해보는 것뿐이다. 신조어와 전문 용어도 중요하지만, 영어의 숙어(? 숙어라고 하는 게 맞나?), 중국어의 다페이(搭配) 외우듯, 한국어에서도 이 명사에는 어떤 동사와 형용사가 자주 오는지 공부할 필요가 있다. 이 한국어 공부와 한국어 실력이 결정적으로 더 나은 통역 품질을 결정한다.
그러니 절대 한국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자. 통역사인 만큼 더 나은 한국어를 구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