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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 Feb 01. 2022

계약서 사인하기 전까지

확실한 것은 없다

프리랜서 3년 차가 되었다. 그간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으며 적응했지만 여전히 완벽히 체득하지 못한 것이라면, 의연함(?!)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실망했을 때 얼른 툴툴 털고 감정과 기분을 정상궤도로 돌려놓는 일. 내가 맡게 될 줄 알았던 일이 취소되거나 드롭되었을 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설사 일이 아주 많아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는 경우에도 놓친 일에는 아쉬움이 들기 마련이다.


이런 경험을 적잖이 하면서 깨달은 것이 바로 뭐든 정말 하기 전까지는 모른다는 사실. 함께 일하는 여러 파트의 매니저 분들이나 업계 관계자 분들은 안부 차원의 이야기로 ‘조만간 무슨 무슨 건이 생길 것 같으니 그때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같은 류의 말을 자주 한다. 이보다 가볍게는 ‘적당한 일이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같은 말들.


이 말이 정말 빈 말인 경우도 있고 정말인 경우도 있지만, 정말이라고 해도 엎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이렇게 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애초에 인사치레 정도였을 수도 있겠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 자체가 수포로 돌아갔을 수도 있고, 또 나보다 나은 적임자를 찾아서일 수도 있다.

적당한 일이 있을 때 연락을 주겠다는 말은 대부분 처음 이력서를 낸 에이전시나 아직 협업을 해본 적 없는 곳과 커뮤니케이션할 때 자주 듣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적당한 일은 내가 원하는 한중 통역이 들어오면 연락을 주겠다는 게 아니라, 기존 통역사를 섭외해보고 안 될 경우 기회가 되면 연락을 주겠다는 이야기에 더 가깝다.

정확한 이유를 따지다 보면 내 감정만 더 소모하게 되고 그 일이 내게 맡겨지지 않았다는 결과는 여전하므로 어서 미련을 버리고 내가 맡은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이뿐이겠는가. 내가 맡기로 정해지기까지 한 일도 언제든 없어질 수 있다. 행사가 취소된다거나, 뭐 이 또한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따지다 보면 지친다.

작년에 모처럼 동시통역 건이 들어왔었다. 파트너까지 내가 정하라고 해서 통대 동기를 파트너로 정해 연락을 했고 페이며 일정 모두 다 정해져 있었다. 심지어 확정 메일까지. 자료만 받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랬던 일이 한 달 뒤로 미뤄지더니 결국은 취소가 됐다. 코로나로 인한 행사 취소라는 특별한 이유가 있긴 했지만.


이런 경험이 있다 보니, 언제부턴가는 내가 사인해야 하는 전자계약서가 메일로 오거나, 하다 못해 PO 같은 것을 받기 전까지는 기대할 만한 이야기를 들어도 스스로를 진정시키곤 한다. 그래야 실망도 적은 법이다. 어느 업계나 마찬가지일 듯하다. 당연한 것은 없고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힘 빠지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이런 점을 한 번 더 염두에 두고, 반대로 또 어떤 일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 늘 준비를 해놓아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새해를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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