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청룡의 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 글의 원문은 채널예스 CHANNEL YES 칼럼 [이소연의 소비냐 존재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 해가 지나가고 있음을 가장 체감하게 하는 것은 첫눈 아래 깔린 낙엽도, 전깃줄을 붙들다 끝내 머리 위로 톡 떨어지는 차가운 물방울도 아닌 단체 카톡방에 “하양이 2개, 빨강이 1개 필요한 사람?”하고 묻는 다정한 안부다. 벌써 프리퀀시 모아 다이어리를 받을 때가 왔구나. 한 해가 또 지나가는구만.
연말이 되면 스타벅스에서는 음료를 주문할 때마다 ‘프리퀀시’라고 불리는 온라인 스티커를 준다. 일반 음료를 마시면 ‘하얀 스티커’를, 비싼 시즌 음료를 마시면 ‘빨간 스티커’를 주는데 이를 총 17장 모으면 다이어리 등 스타벅스 굿즈로 교환할 수 있다.
Meet the New year Moment(새해의 순간을 만나보세요). 묵직한 출입문에는 청룡의 해 새해를 축하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파란색 크림이 얹어진 음료와 케이크, 용의 비늘을 흉내 낸 듯한 독특한 모양의 머그잔, 호리호리한 파란 텀블러까지. 과연 굿즈 마케팅으로 매해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스타벅스다웠다.
푸른 용을 연상시키는 모든 요소를 활용해 한 땀 한 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새해 굿즈는, 연말 프리퀀시 다이어리 인기에 이어 올 한해 스타벅스 매출을 견인하며 포문을 열어주리라. 그리고 이내 학익진 전법이라도 펼치듯 벚꽃을 닮은 연분홍 봄 굿즈, 찰랑거리는 파도를 표현한 파란색 여름 굿즈, 고즈넉한 따뜻한 색감을 담은 가을 굿즈와 또다시 돌아오는 연말 다이어리 프리퀀시의 굴레 군단을 내세우며 우리의 한 해를 집어삼킬 것이다. 집 찬장을 뒹굴어 다니는 텀블러를 모른 체 하고 또다시 새로운 시즌의 굿즈 텀블러에 홀린 “와. 예쁘다.”하고 손을 뻗다 보면 우리의 한 해가 또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스타벅스는 할인 혜택으로 텀블러 사용을 독려하고 종이 플라스틱과 생분해 영수증을 사용하며 업계에서 선구적인 태도로 ‘친환경’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해마다 계절마다 새 굿즈들을 내놓는다. 의자며, 가방이며 단 한 번도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 없던 그 굿즈들을 서로 가지지 못해 안달이 나게끔 개발하고 판매한다.
육갑. 육십갑자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12지지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10천간을 조합해 만든 60개의 간지(干支)를 의미한다. 12지지는 그해의 동물을, 10천간은 그해의 색깔을 의미하며 신년을 맞이하는 의미와 기쁨을 더한다.
올해는 푸른색의 ‘갑’과 용을 의미하는 ‘진’이 만나 갑진년, 청룡의 해가 됐다. 과거 용은 물과 비를 상징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제때 비가 오는 게 가장 중요했기에 청룡의 해에는 새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한 행사가 이어졌다고 한다. 오늘날 청룡의 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 인형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파란색 옷을 갈아입고 용 포즈를 취하고, 스타벅스는 부리나케 가장 고급스러운 컬러를 뽑아내어 굿즈를 찍어내는 것 외에, 우리는 다가오는 푸른 용을 어떻게 환대할 수 있을까.
이 글의 원문은 채널예스 CHANNEL YES 칼럼 [이소연의 소비냐 존재냐]에서 볼 수 있습니다.